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이겨야 할 생각들에 대하여
나는 올해 승진 연차다.
아기를 가진 것을 알고 꽤 오랫동안, 또 꽤 많은 시간을 들여 생각했다. 올해 승진 연차라는 것에 대해서.
남들 보기엔 유연할 것 같은 광고회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계열사로써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보수적인 분위기를 지난 2년간 너무도 살갗으로 느껴왔던지라 수많은 상황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중에도 내가 가장 만나기 싫은 시나리오는 '애키우느라 내년엔 자리에 없을 거니까 승진 누락'이었다.
임신사실을 공표함과 동시에 연초에 '승진'만 바라보고 의욕적으로 내 이름 밑에 달아왔던 일들이 '임산부 보호'라는 지붕 아래에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고, 팀원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았을지언정 받는 사람 입장에선 너무나 고마운 회사차원의 배려(; 코로나 시기 임산부 재택근무 같은것들)가 나를 찾아왔다. 누군가에겐 역차별로 느껴져 마음 상하는 일이 생길까,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돌려가며 제게 주시는 배려들에 대해서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는 티를 내려고 노력도 했던것 같다.
그러나 나의 노력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이 은연중에 내 뱉는 말들은 어쩐지 귀로 들어왔다가 마음에 남아 밤잠과 아침잠을 설치게 한다.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대리님은 나갈거잖아"라던가, "대충해~ 어차피 곧 그만둘거잖아"같은 이야기. (참고로 나는 휴직을 하는 거지 퇴사를 하는게 아니다) 또는 내가 없으면 자기가 팀을 리드 해야한다며 평가 기간에 내년에 있을 나의 휴직을 앞세워 좋은 평가를 받고자 하는 동료의 이야기 같은 것들이다.
언짢음을 감추지 않고 "내가 퇴사를 해?" 라고 하면 "아 아니야, 말실수야" 라고 답은 하지만 글쎄, 그렇게 어영부영 지나가고 나서도 사실은 그 사람이 마음 속 깊숙하게 '쟤는 나갈 사람' 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걸 떨쳐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아무리 곧은 마음으로 보려고 해도, 아기를 낳아본 여성이 말을 하면 마치 자기도 당했던 일이라 너도 당연히 겪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고, 비슷한 연차 남성이 그런 얘기를 하면 '요새끼 보게^^ 앞질러 간다고 생각하나본데?' 라는 생각이 기어이 많은 다른 생각들을 이기고 들고야 마는 것이다.
나는 올 해 아기를 가지게 될 것을 모르고 의욕적으로 일했다. 워낙에 욕심이 많은 성격이기도 하지만, 같은 일을 하던 사람이 2명이나 그만 두고, 1명은 포지션이 변경되면서 5명이서 하던 업무를 2명이 하게 되었던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기도 했다. 작년, 팀의 승진대상자 중 40%가 승진에 실패하는 것을 봤기에 나는 승진에 누락되지 않기를 바랬고 그걸 이루기 위해서 여러 부분을 감내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느 새 임신 6개월에 접어드는 12월이 됐고, 이번 달 말이면 승진 결과가 발표난다.
다행히도 나는 이번에는 2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면담 내용이나 현재 승진 대상자의 수를 봤을 때 내가 승진에 누락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온 내가 아기를 가졌다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배제를 당하는 이런 상황을 앞으로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그 마저도 감사하게 생각하며 겪게 될까?
'걔는 나갈거잖아요' 라는 말을 두고두고 곱씹으며 '한번만 더 말실수 해봐라'하는 생각과 함께 칼날을 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