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짐 -1-

단편소설 연재

by 지공

지공은 아버지의 담뱃갑을 열어봤다. 잔뜩 구겨진 갑 안에서 두 개비가 헐렁거렸다. 왠지 잔뜩 쭈그린 자신과 아버지 같았다. 일부러 웃었다. 너도 떠나보내 주마. 비스듬히 쓰러진 걸 입에 물었다. 불을 붙였다. 몇 번의 시도에 입으로 빨면서 붙여야 한다는 걸 알았다. 불이 붙자 모진 것이 예고 없이 쳐들어왔다. 썼다. 아니, 아팠다. 간신히 후 하고 연기를 내뱉었지만, 그것은 지공의 몸속에 들러붙기만 했다.


낙엽처럼 쌓인 고지서들을 발로 치우고 문을 열었다. 흔적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다. 들어가고 싶기도 했고, 들어가고 싶지 않기도 했다. 저 속에 누웠다 일어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될까, 아니면 온몸으로 느끼게 될까. 지공은 알 수 없었다.

끊겼을 수도꼭지에서 마지막 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꼭 이별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지공은 목구멍을 세게 조여 참았다. 기력이 다할 만큼 조이고 또 조였다. 그러다 원치 않게 호흡이 트였고, 손에 든 짐을 놓쳐버렸다. 창백한 짐이 방바닥에 나뒹굴었다. 지공은 바닥에 손을 짚은 채 사방으로 흩어진 아버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그 위로 몸을 뉘었다.

가느다란 석양 줄기가 얼굴 위로 간지럽게 기어다녔다. 밑에 깔려 있는 아버지가 더 흩어져 버릴까 가만 누워 있었다. 고개만 옆으로 돌렸다. 열려 있는 현관문은 무심했다. 모든 걸 지켜주던 이는 이제 없다고 말했다. 한참을 바라보던 부재 속에서 자그마한 것이 삐쭉 보였다. 구경하듯 앉아 꼬리를 살랑거리는 고양이를, 지공도 반히 쳐다봤다. 한참을 보다, 그 파란 눈에 비쳤을 제 모습에 질끈 눈을 감았다.

“가!”

고양이는 한두 발짝 뒷걸음질 쳤다. 지공은 고갤 돌려 버렸다. 양손에 아버지를 한 움큼씩 쥐어 봤다. 여전히 무거웠다. 눈물이 꾹 감은 눈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느닷없이 터진 것은 양손의 무게만큼 거세졌다. 숨이 따라오질 못했다. 끅끅거렸다. 참아서 미안했다고, 참지 못해 미안하다고. 지공은 잠에 들 때까지 그제야 울었다.




—꽁아.

—나 바퀴 떼기 싫은데….

—인마, 이걸 언제까지 달고 다닐 거냐?

아버지가 바닥에 있던 스패너를 쥔다. 노을에 스패너가 발갛게 탄다. 잔뜩 풀 죽은 어린 나를 다시 부른다.

—꽁아.

짓궂은 얼굴이다.

—으응, 아부지.

—너 이게 뭔 줄 아냐, 응?

—망치잖어 아부지.

—망치가 아니고 짜샤. 몽키스패너.

아버지가 흐흐 하고 웃는다.

—몽키? 몽키는 원숭이인데…. 바나나는 빠나나구.

—그래 인마, 원숭이!

어린 나도 깔깔거릴 준비를 한다.

—봐봐라! 똑 닮았지, 응?

아버지가 욱끼끼 하며 어린 몸 여기저기를 이 잡듯이 쪼아댄다. 어린 나는 까르르 하며 몸을 꼰다.

—꽁아. 백 밤 더 자믄 몇 살이라고?

어린 두 어깨에 얹힌 두 손이 거칠고, 어린 두 눈에 담겨오는 두 눈이 따습다. 어린 내가 대답한다.

—열한 살이지.

—자, 손가락 쫙 펴 봐.

아버진 어깨에서 거둔 두 손을 눈앞에 활짝 펼쳐 보인다. 어린 나도 따라 펼친다.

—몇 개냐?

—열 개지.

—그러니까 인마. 곧 있음 네 나이는 손가락으로는 못 센다 이 말이야.

—응.

—인제부터 나이는 여기로 먹는 거야.

옷 속으로 손이 쑤욱 들어온다. 어린 심장의 열기에 거친 뜨거움이 흠뻑 스며든다.

—이젠 떡국만으로는 안 돼.

—그럼?

—단단해져야 해. 그게 여기로 한 살을 먹는 방법이지.

어린 나는 아버지를 쳐다보기만 한다.

—그건 말이다…꽁이 네가 제일 무서워하는 게 뭣이더냐?

생각만으로도 몸서리치며 무언갈 두어 개 말한다.

—그것들이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거. 그걸 단단해진다고 하는 거야.

아버지의 손이 어린 심장을 쓰다듬는다. 그 위로 어린 것을 포개어 본다.

—백 밤을 자고, 또 천 밤을 자고. 그렇게 단단해지다 보믄, 어디든 갈 수 있지. 이 아부지처럼.

—어디든?

—어디든.

어느새 두 발이 되어 있는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는다. 저 멀리 어딘가에, 두 주먹을 꽉 움켜쥐고 누워있는 내가 보인다. 어린 나는 묻는다. 너는 왜, 천 밤을 더 잤는데도 단단해지질 않았어?


지공은 눈을 떴다. 눈가가 버석거렸다. 손등으로 비비니 아버지의 흔적 같은 것이 묻어 나왔다. 벽에는 달빛이 묻어 있었다. 석양 줄기도, 고양이도 없었다. 어디서부터가 꿈인 걸까. 하지만 등 뒤로 아버지가 바스락거렸다. 몸을 일으켜 양손으로 바닥을 쓸었다. 머리카락과 옷도 쓸어내렸다. 도자기 파편을 모아 톡톡 털어냈다. 싱크대 서랍에서 비닐봉지를 꺼내 한 주먹씩 옮겨 부었다. 문득 시선이 느껴져 돌아보니 고양이가 멀찍이 앉아 있었다. 겨우 달빛 한 조각에 파랗게 젖어서는 방 안 요리조리 고갯짓했다.

“안 갔어?”

대답은 없었다. 싱거워진 지공은 옆 가방 하나를 꺼내 짐을 싸기 시작했다. 비닐봉지 입구를 단단히 묶었다. 아버지의 매듭이었다. 가방의 제일 두툼하고 억센 주머니에 넣었다. 책상 서랍에 모아뒀던 용돈을 꺼내 교복 바지 주머니에 챙겼다가, 다시 꺼내 재킷 안주머니로, 잠시 생각하다 아버지를 넣은 곳에 넣었다.

지공은 망설였다. 활짝 열린 현관문 앞에 서서 굳게 닫힌 방문을 돌아봤다. 가방이 어깨에서 흘러내렸다. 부러 고쳐 맸다. 짐이랄 것도 없는 그 짐이 지공의 어깨를 짓눌렀다. 애써 말을 뱉었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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