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연재
이전 부서에서도 해봤던 채용 면접은 덜 높은 것들의 염병 첨병까지 더해져 더 고역이었다. 꼭두새벽 출근해 기껏 꾸려놓은 면접장을 정시 출근한 팀장이 훑어보더니 괜히 켕기는지 블라인드 면접으로 가자고 지껄였다. 공정한 채용 어쩌고를 운운하는 팀장의 입을 불공정하게 몇 대 치고 싶었다. 소위 공정채용을위한블라인드면접장 재설치를 마치자, 이번엔 신고 온 신발이 화근이었다. 오늘은 이리저리 뛰어다닐 일이 많기도 해 겸사겸사 보이콧의 일환으로 노란색 뉴발란스를 신었다. 그에 과장은 명색의 행사인데 행색이 그게 뭐냐며 누더기를 걸친 거렁뱅이 보듯 고갤 저었다. 행사와 행색은 일부러 라임을 맞춘 건지 궁금했다.
“지간신경종이 있어서요. 구두를 못 신어요.”
죄송하지 않을 일에 죄송합니다가 튀어나오곤 했던 버릇을 의식적으로 억눌렀다. 사직서를 쓰기 시작했을 때쯤 새로 개발한, 버릇을 덮기 위한 습관이었다. 과장은 지간 뭐?하고 되물었다가 얼마 전 크룩스 사태에서 Z에게 패망한 것이 떠올랐는지 손을 휘휘 젓고 말았다. 이런 순간에 일본 해역을 신나게 헤엄치고 있을 꼴뚜기를 생각하니 뭔가 엄청난 걸 앓을 지경이었다. 전날 준비해 뒀던 면접 대상자 명단을 팀장에게 건네고 면접자 대기실을 향해 달렸다. 노란 뉴발란스를 온몸으로 정당화하려는 듯이.
가슴팍에 번호를 붙인 사람들로 우글거렸다. 면접자 대기실이라면 응당 흘러야 할 적막과 긴장감이 정확히 70%만 흘렀다. 대신 30%의 점들이 보였다. 귓불에 점이 있는 시설공단 이사장 친인척과 왼쪽 눈썹 옆에 점이 난 명퇴 국장이 함께 수다를 떨고 있었고, 그 옆에는 성미가 못되어 미간에 점이 돋은 주민자치 회장이 대화에 끼려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알 수 없는 힘으로 기간제 경력이 팀장보다도 선배인 오서방에, 너무나도 확실한 힘으로 편한 일자리만 쟁취하는 늙은 고소영까지. 그런 낯익은, 아니 익어야 할, 그리고 앞으로도 푹 익을 점들. 그 점들 중 5년 전 비리 사건으로 제명된, 몽고반점이 원화 모양이라는 혐의를 받는 전직 구의원을 1번이라고 칭해 면접장으로 보냈다.
대기 시간 동안 몇몇 점들이 알은체를 해왔다. 난 그래봐야 좋을 것 없다며 눈치를 주느라 신경이 곤두섰다. 점들은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게 중에서 내 첫 사직서를 장식했던 7번 김 전(前) 국장이 능청맞게 악수까지 청하는 통에 반사적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있는 경멸 없는 경멸을 가득 담았지만, 뭘 단단히도 착각한 김 국장은 고갤 끄덕이고는 기분 나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 그래, 그래. 그러며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눈썹 옆에 난 점이 옮을 것만 같아 몸서리치는데, 마침 6번이 퇴실했다는 알림이 와 김 국장을 서둘러 면접장으로 치워버렸다. 목덜미가 팽팽하게 땅겼다.
번호를 하나씩 늘려가다 보니 해가 어느덧 3층쯤에 걸렸다. 무심하려 했지만 세상이 꿀에 절인 것처럼 노곤해 보였다. 뉴발란스의 원래 색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나 또한 흠뻑 절었다. 그리고 멀찍이 앉아 나와 함께 절고 있는 마지막 30번 여인이 눈에 담겼다. 왠지 모르게 여인은 대기실 공기를 대수로이 만들었다. 뭔가에 절고 절여져 위로가 절실한 사람. 꼭 그래 보였다. 얼굴의 자글자글한 잔주름을 세어보면 엄마의 것과 비슷할 여인, 소박하지만 단정한 옷차림의 여인은 내가 본 바론 단 한 번도 자릴 뜨지 않고 진득하게 기다렸다. 그게 면접을 향한 마음가짐처럼 느껴져 괜히 씁쓸했다.
여인은 아마 자녀가 있을 것이다. 아들 아니면 딸 하나. 하지만 남편은 없다. 그렇기에 자녀의 모든 것이 되어줬고 자녀 또한 여인의 전부였을 것이다. 남편과 이별할 당시의 자신만큼 장성한 자녀는 바라던 대로 대학교를 졸업했고, 염원하던 대로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 바람과 염원을 위해 정작 자신의 노후는 포기했지만, 곧 포기의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여인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감사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자녀는 말할 것이다. 이곳에 자신의 미래는 없다고, 미래가 없는 곳에선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고. 그럼 여인은 음성에 불안이 묻어나지 않도록 애쓰며 답할 것이다. 그래, 너무 버티지 마. 하지만 마음속에 묻은 불안은 어찌하지 못해 이곳까지 와야 했을 것이다. 그런 여인의 휴대폰에는 아침이든 점심이든 저녁이든 자녀의 끼니를 묻는 곰살맞고 고단한 문장들이 빼곡히 적혀있을 것이다.
“30번이요.”
여인은 희미하게 웃으며 일어나 옷매무시를 정리했다. 여인이 나머지 3%가 되기를, 하지만 무결한 67%를 완성해 주기를, 동시에 바랄 수 없는 것들을 바랐다. 여인의 얼굴에서도, 손과 다리에서도, 하다못해 옷에서도 점을 찾을 수가 없었기에.
시야가 지글거렸다. 노을빛을 머금어 세피아 톤으로 흐르던 모노드라마가, 칙칙한 무성영화로 전환됐다. 어딘가에 대기하고 있던 과장과 비서국장이 투입되고, 투입된 자들 사이에 여전히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여인이 서 있었다. 대화가 들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그들의 표정, 손과 팔의 위치, 허리의 각도, 고개가 움직이는 횟수들이 자막이 되어 떠다녔다. 반토막 난 프레임에 뚝뚝 끊긴 몸짓과 표정이 한껏 과장되어 우스꽝스러웠다. 조악한 필름 속에서도 열연을 마친 배우들이 각자의 자리로 퇴장하고, 머릿속에선 엔딩 크레딧이 서서히 올라갔다. 그들의 관계가, 그리고 몰랐던 한 개의 점이.
장르는 평범한 일상, 아니 온상이었다. 뻔한 소재였다. 그럼에도 유일한 관람객인 나는 명치 부근이 꽉 옥죄였다. 혼자 배신당했다. 배신한 사람이 없는데 배신을 당했다. 그래서 더 배반적이었다. 목전의 모든 걸 부정하느라 애를 썼다. 자막은 오역이며 크레딧은 편집자의 실수일 거라고.
비서실 앞을 지나 파한 면접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따지고 보면 배신당할 자격이 없었다. 부정할 자격은 더더욱 없었다. 자격 없는 자에게 따졌다. 너는 관람객이 맞느냐고. 상영 중엔 잠시 숨어 있었던, 하지만 크레딧에 명확하게 이름을 올린 조연출 정도는 되지 않느냐고.
채점을 마친 90장의 채점표를 순서대로 차곡차곡 정리했다. 거의 먹지 않은 다과들은 과자 종류별로 상자에 담았다. 면접중이라고 붙여 놓은 종이를 회의실 문에서 떼어냈고, 면접관 명패들을 포개어 수레 속으로 집어넣었다. 다음 부서가 사용할 수 있도록 테이블들도 원래 위치로 되돌려 놨다. 조연출까진 아니고 무대연출쯤은 되겠다는 생각에 비웃음이 삐져나왔다. 불을 껐다. 어젯밤을 닮은 고요를 가만 바라봤다. 고요는 유독 선명했다.
사무실에 먼저 돌아와 있었던 팀장이 수고했다며 명단을 돌려줬다. 반으로, 또 반으로 접혀 있었다. 네, 고생하셨습니다. 고요해지자고 마음먹었다. 지금 내게는 그저 그럴 자격밖엔 없다. 일조까진 아니었다, 기껏해야 동조였다 생각하면 명단을 펼쳐보지 못할 것도 없다. 그저 점 하나를 깨닫지 못한 것뿐이었다. 어쩌면 여인에겐 내가 보지 못할 은밀한 곳에 믿는 도끼 모양의 점이 있거나, 김점례처럼 개명 전 이름에 점이 들어가거나, 병점역처럼 점 속에 살고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새로운 점 하나가 찍혀있을 명단을 잠시 옆에 두고, 새로운 사직서를 열었다. 칸을 얼마만큼 늘려야 할지를 몰라 잠시 고민하다가, 편집 용지를 A1으로 바꿔버렸다. 그러자 글자들이 무언가를 감춰줄 정도로는 줄어들었다. 무언가를 입력하더라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무언가를 열심히 입력했다. 어떤 때보다도 힘들이지 않고 명확하게, 어떤 때보다도 망설이지 않고 거침없이. 그리고 바탕화면에 저장했다.
누군가는 매일 보게 될 것이었다. 오늘, 내일, 그 내일, 어쩌면 미래에도. 그 누군가에게 고했다.
이젠 정말 그만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