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의 편승 -3-

단편소설 연재

by 지공

돌아와선 안 될 곳에 돌아온 듯했다. 모든 걸 잊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가 모든 것에게 되돌아온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반쯤 남아있는 커피가 꼭 여행의 흔적 같았다. 멍하니 거울을 보며 입안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나갔다. 그러고 보니 그건 다 했어? 옆에서 칫솔을 탈탈 털던 꼴뚜기가 물었다. 이 부서에 오고 나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다. 그것도 한 사람, 아니 이젠 사람처럼 느껴지지도 않는 한 마리의 꼴뚜기에게서.


항상 그 모양이었다. 개와 고양이는 종만 다를 뿐 업무 절차가 거의 같았는데, 개 담당 꼴뚜기는 그걸 틈만 나면 이용하려 했다. 나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가 일이 마무리될 때쯤 아 맞다 그거 다 했어?라며 짐짓 갑자기 생각난 척 구걸하는 게 그의 주요 일과였다. 한번은 <쾌적한 주택가 조성을 위한 길고양이 중성화 지원 사업 추진계획> 초안을 엿보더니, 들개는 중성화를 하지 않으니 업무에 써먹을 수가 없겠다며 몹시 아쉬워했다. 꼴뚜기도 중성화가 가능할까 궁금해지던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매번 달라는 대로 공유는 해줬다. 속 보이는 놈 때문에 속 좁아 보이기 싫었다. 핏불테리어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한 달 전, 직장인 블라인드 게시판에 우리 기관과 관련된 글이 올라왔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홍보과에서 진상을 파악했을 땐 이미 일종의 밈으로 퍼진 후였는데, 턱시도를 입은 코리안숏헤어 새끼 고양이 사진 아래 ‘▲핏불테리어’라 적혀 있는 공문서 캡처본이었다. 딱 꼴뚜기다운 실수였다.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원초적이고 시시한 밈이었지만 무려 기관장이 최종 결재한 공문서라는 점에서 조롱을 사기엔 충분했고, 어느 종편 뉴스의 막간 코너에서 농락까지 당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평소에 싫어했던 종편 기자가 고양이 머리띠를 하고 맹견 울음소리를 내는 꼴이 경박하기 그지없었다. 그날 나는 그의 인스타 팔로워를 자청했다.


꼴뚜기는 물론 결재 라인에 있는 팀장, 과장, 국장까지 모조리 호출당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첫 번째는 설교의 주체가 최종 결재자인 제일 높은 놈이었다는 점, 두 번째는 일정 부분 원인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나까지 불려 갔다는 점이다. 사건 이후 꼴뚜기의 만행이 근절되리라 생각했건만,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을 개 담당 꼴뚜기는 몸소 실천했다. 그래서 서류들을 우연히라도 보지 못하게 숨기거나 파쇄기로 갈아버려야만 했다.


해당 사건의 주범이 진즉 다 말랐을 칫솔을 줄곧 털며 끈질기게 서 있었다. 내 대답을 들을 때까지 털어 댈 작정이었다. 입을 헹궈냈다. 어제 작성을 마치고 스테이플러로 찍어 숨겨둔 서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니요.”




화장실에서 돌아오니 덜 높은 팀장이 불렀다. 내일 할 계약직 채용 면접 일정표 좀 출력해 줘. 지가 출력할 것이지 프린터도 더 가까운 놈이?하고 뽑아다 건넬 일은 아니었다. 팀장이 말하는 계약직 채용 업무는 내가 아니라 아직도 칫솔을 털며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는 저 꼴뚜기의 것이었으니까.


“제가요?”


Z들 흉내를 내며 멀뚱히 서 있자, 팀장은 꼴뚜기에게서 들은 거 아니었냐며 되물었다. 들은 거라곤 칫솔 터는 소리밖에 없다고 말하려는데 꼴뚜기가 허겁지겁 가로막았다. 일본 가족여행이 잡혀서 내일부터 연차라고, 저번에 말했잖아? 안 했다. 했다 치더라도 일본에 한오백년 있을 게 아니니 면접 일정을 조율하면 될 일이었다.


“돌아와서 마무리하시면 되겠네요, 그럼.”


내 일이 아닌 것처럼, 아니 아니라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반쯤 남은 커피 옆으로 서류 뭉치 하나가 구질구질한 쪽지와 함께 슬그머니 넘어왔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잡혔어. 아까부터 뭐가 자꾸 어쩌다 보니 잡혔단 건지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오사카 왕복 티켓을 예매하고 어쩌다 보니 4박 5일 묵을 료칸을 예약하고 어쩌다 보니 도톤보리 아저씨 앞을 지나는 루트를 짜고 어쩌다 보니 4인 가족이 먹을 정통 오마카세 집을 섭외했다는 건가 지금?


피동형으로 제 염치없는 능동을 희석시키려는 미물적 사고가 가소로웠다. 그런 가소로움에 잠자코 당해줄 수 없어 서류 뭉치를 돌려주려는데, 가소로운 미물의 전화가 울렸다. 고양이처럼 귀를 쫑긋했다. 면접 대상자들에게 이미 일정을 통보한 모양이었다. 채용 면접이면 적어도 일주일 전엔 통보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게 의도적이라는 말밖에 안 된다. 그리고 나는 그 하찮은 의도를 전혀 간파하지 못했다.


분노인지 수치심인지 모를 감정이 밀려들었다. 졸지에 대직을 하게 되어서인지 우습게 봤던 미물에게 뒤통수를 맞아서인지 감정의 이유와 종류가 분명치 않아 혼란스러웠다. 자료 구걸이 여의찮으니 업무 자체를 떠넘겨버리겠다는 심산인가? 일본에서 어쩌다 보니 잡혀 꼴뚜기 튀김으로 튀겨져 버렸으면. 쪽지를 잔뜩 구겨버렸다.




덤터기 쓴 업무 서류를 읽느라 해가 다 졌다. 59분부터 옆이 부산스럽더니 초침이 0을 때리자마자 의자 빼는 소리가 났다. 담배 뭐 피우는지 톡으로 보내줘, 면세점 들르게. 꼴뚜기가 약 올리듯 속삭이고는 날렵하게 헤엄쳐 빠져나갔다. 바쁜 거 알아, 근데 어쩔 수 없지, 한 팀인데. 좀 전까지 손톱인지 발톱인지 뭔갈 깎던 팀장도 굳이 거들며 사무실을 나섰다. 어쩔 수 있는 걸 어쩔 수 없게 만든 거잖아요. 저에게만 들릴 인사와 함께 역시나 퇴근해 버린 Z라면 이렇게 따졌으려나.


칼퇴근의 경쾌함을 가득 담은 사내 방송 소리가 퇴근을 닦달했다. 야근 수당을 주지 않는 수요일 가정의 날. 닷새 중 하루만큼은 가정에 전념하라는 취지였다. 자녀는커녕 가정도 없고 일만, 그것도 내 일이 아니었던 일만 있는 사람은 뭘 어쩌라는 건지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 가정의 날인데 가정도 자녀도 없이 국가 번영에 일조하지 못하니 무급천벌을 내리는 거라고 가정당할 뿐이었다. 퇴근 종용 방송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무실이 텅 비어버렸다.


이곳의 모든 면이 혐오스러웠고, 혐오하다가 객사할 자신까지 있었다. 그럼 꼴뚜기가 전하지 못한 선물이라며 빈소에 담배 한 보루, 아니 어쩌면 한 갑 올리곤 눈물인지 먹물인지를 짜 대겠지. 그 옆에서 팀장은 바짝 깎은 손톱을 내보이며 일은 곧잘 했지만 싹수는 노랬다 인터뷰를 할지도. 여전히 분노한 노파는 향을 내리꽂으며 고양이는 언제 처단할 거냐고 닦달할 것 같고. K는 또 울고, H는 애석해하며 혀를 끌끌 차려나. Z는 안 올 듯.


나로 인해 종족 번식의 기회를 상실한 수많은 고양이가 빈소를 에워싸는 상상을 하며 내일을 준비했다. 분 단위 일정표, 면접 진행자 대본, 면접 대상자 30인 명단, 채점표 30세트, 면접관 명패, 예상 질문지, 면접장 게시대, 먹을지 안 먹을지 모를 다과. 거기에 당일 발표를 위한 채용결과보고서까지. 그리고 놀랍지도 않게 꼴뚜기는 이 모든 걸 단 하나도 해놓지 않았다.




준비를 마친 서류들을 내일 허둥대지 않도록 시간대별로 분류해 박스에 담았다. 그렇게 부글부글 끓었으면서도 이런 것까지 계산해 준비하는 내 작태가 한심하고 경이로웠다. 하지만 자괴감이 선명해지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빠뜨린 것이 감지됐다. 면접 대상자 명단을 꺼내 들었다. 30인의 성명과 생년월일, 사진을 살펴보며 몇 개의 면접 번호 옆에는 점을 찍었다. 꼭 프린터의 실수처럼 보이는, 그래서 아는 사람만 알아볼 그런 가볍고도 무거운 점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선 점을 찍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 ・, ・, ・, ・, ・, ・, ・, ・.


듬성듬성 칸을 넘나들며 찍힌 점들을 가만 내려다봤다. 어쩌면 이것들을 찍기 위해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지도 몰랐다. 점이 찍히지 않은 사람들을 다시 훑어보고 있는데, 찍어뒀던 점들이 몽땅 사라져 버렸다. 절전용 소등이었다. 일어나 사무실 문으로 다가갔다. 스위치를 누르려다, 그냥 그대로 서 있었다. 없어야 할 모든 것들이 숨어버린 암묵적 고요. 반히 바라봤다. 이내 고요는 깨져버린다. 어슴푸레, 하지만 아주 명확하게. 불을 켰다. 다시 껐다. 또 켰다. 이번엔 조금 길게 기다린 후 껐다. 그렇게 간극을 조금씩 늘려가며 반복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명암은 모호해져만 갔다. 얄궂은 어떤 것이 그 어떠한 것도 숨겨주질 않았다. 눈을 질끈 감아도 안 됐다. 그래봤자 눈알에서 5cm 위쯤에 스멀스멀 떠오를 거였다.


얼마 후 무슨 문제라도 있냐며 얼굴만 아는 당직 근무자가 올라왔다. 나처럼 불을 켰다 껐다 하면서 스위치와 전등을 연신 번갈아 봤다. 그래봤자 뭐가 문제인지 모를 거면서.


“아뇨. 문제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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