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연재
그럼에도 이 모든 것들이 나의 거듭된 편승의 대가란 사실은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잠재울 수 없는 자괴감을 툭툭 던지곤 했다. 그럴 때면 7년 전의 나를 설득하고 만류하고 애원하고 안 되면 패고 그러다 또 호소하고 탄원하고 애걸하고 복걸하고 그래도 안 들으면 다시 흠씬 두들겨 패고 싶어진다. 정신 좀 차려. 이곳은 아니야. 하지만 시간의 비가역 아래에선 과거를 향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현명한 자라면 미래를 향해야 한다. 그렇다면 국가보상이라도 청구해 새로운 미래로 향할 목돈이라도 마련하라는 건가. 아니 이곳의 실체를 감쪽같이 속였으니 국가의 기망행위로 인한 손해이므로 보상이 아닌 배상이려나?
보상이냐 배상이냐로 골몰하고 있는데 고함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걸러지지 않은 분노 본연의 소리, 업무 개시를 알리는 것 치고는 가혹하기만 한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8층 조심.」 아래층 H의 경고가 모니터에서 반짝거렸다. 입술이 허예지도록 깨물었다. 우리 부서는 아니기를. 아니 나만은 아니기를. 이왕이면 꼴뚜기를 닮은 옆 자리 선배 놈에게 닿기를. 빌고 비는 사이 분노가 사무실에 들어서며 첫 번째 바람을 깨부쉈고, 이윽고 고하는 천벌에 두 번째, 세 번째 것마저 박살 나 버렸다. 이 육실할 놈의 살찐이!
살찐이란 길고양이를 뜻하는 경상도 방언이래. 언젠가 꼴뚜기가 말했다. 길고양이 담당이면 그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마치 승진 비법이라도 전수해 주는 양했다. 오늘의 천벌을 예견한 꼴뚜기도, 그걸 기억해 낸 나에게도 짜증이 일었다.
전동 휠체어를 대동한 천벌은 세 시간 동안이나 이어졌다. 하지만 뒤로 보이는 시계는 겨우 삼십 분이 지났다고 말했다. 세 시간인지 삼십 분인지 동안 분노에게선 욕지거리를 뒤집어쓴 방언 기도문 같은 게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제법 다채로웠지만 돌고 돌아 같은 말이었다. 불쌍한 노인네의 소중한 일상을 방해하는 길고양일 남김없이 말살하라. 전혀 불쌍하지 않았고 일상이 소중하지도 않았다. 맞는 말이라곤 본인이 노인네라는 것뿐이었다. 분노한 노파는 무려 12호실 원룸 건물의 주인이었고, 일상이라 봤자 이곳 1층부터 9층까지 온 부서를 순회하며 나와 같은 죄인들을 잡아다 족치는 게 전부였다. 가끔 기력이 좋은 날엔 지하 1층의 은행원들까지 죄인에 포함되곤 했다.
퇴치제를 드릴 테니 한 번 써보시겠어요, 선생님? 길고양이도 소중한 생명입니다. 골목 전체가 할머니 것이 아니잖아요. 아니, 애초에 지구는 우리 인간의 것이 아니에요! 고양이 역성을 들어서인지 선생님에서 할머니로 격하시켜서인지 노파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꼭 고양이처럼 하악질을 하며 불똥을 마구잡이로 던져 댔다. 정 그렇게 나온다면 네 놈이 준 퇴치제를 이 사태의 원흉인 캣맘에게 뿌려버리겠노라고. 고양이가 기피하는 캣맘이라니, 너무나도 비극적이어서 쏜살같이 퇴치제를 빼앗아버렸다. 그러자 노파는 곳간을 몰수당한 몰락 양반처럼 까무러쳤다. 개판이었다. 개판이니 개 담당인 꼴뚜기를 소환해야 할 판이었다.
눈을 내리깔고 퇴치제의 뒷면만 읽어댔다. 깨알 같은 글자들 속에 이 천벌에서 회개할 방법이 하나 정도는 있을 거야.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팀장이 달려 나와 노파를 달래기 시작했다. 나를 회개시켜 주기 위함은 아니었다. 노파가 택한 불후의 전략 때문이었다. 제일 높은 놈 나와. 민원은 해결되지 않을지언정, 제일 높은 놈은 못 만날지언정 덜 높은 놈에게서 융숭한 대접 정도는 받아낼 수 있는, 매번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만국 통용의 전략. 미래 AI 공무원들에게 써도 먹힐 게 분명했다. 덜 높은 팀장이 노파를 탕비실로 안내하며 내게 눈을 흘겼다.
전동 휠체어 소리가 점점 멀어졌고, 나 또한 이곳에서 점점 아니 철저하게 멀어지고 싶었다.
“전 약속이 있어서요.”
오늘의 점심 메뉴는 보이콧이었다. 오늘만큼은 꼭 그래야 했다. 팀이 돌아가며 과장에게 점심을 사 먹이는 과장데이, 이때 하는 보이콧이야말로 최상의 만족도를 안겨줬다. 이 선제적 점심 약속 말고도 겨울철에 하는 맨투맨 시위나 여름철 박스 티셔츠 입기 운동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그걸 보이콧이라고 여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며 H의 비웃음을 사곤 했다. 해골이 수십 개 수놓아진 먹색 후드 스웨트를 입거나, 버건디색의 버켄스탁 아리조나를 신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며 K가 거들기도 했다. 나는 보이콧의 일차적인 목적은 행위자의 심적 위안이고, 그러니 내가 하는 정도만으로도 훌륭한 보이콧이 될 수 있다며 반박했다. K는 마지못해 끄덕였고 H는 끝끝내 콧방귀만 뀌었다.
「어부사시가로 와.」점심을 함께 하기로 한 둘에게 진짜 메뉴를 묻자, 생선구이 전문점으로 오라며 저들끼리 키득거렸다. 고양이 담당인 나를 놀릴 때 쓰는 식당 중 하나였다. 오전의 교전들을 잠시나마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만드는, 아는 사람들끼리만 할 수 있는 자학적 위로. 싫지 않았다. 나도 실없이 웃었다. 예전 같았으면, 다 먹고 생선 가시는 네가 포장해 가면 되겠다 라거나 간 김에 생선 수조 위생 점검 좀 해 라며 음식물팀 H와 위생지도팀 K에 응수해 줬겠지만 각각 재무과와 행정과로 옮기는 바람에 그럴 수 없게 된 게 분할 뿐이었다. 계단을 내려가던 중 직원들은 잘 가지 않는 파스타집을 보내와 부리나케 건물을 빠져나왔다.
“구청장과 함께하는 MZ직원 소통 한마당을 대신할 이름 좀 생각해 봐…둘 다!” K가 울상이 되어 애걸복걸했다. 행정과 후생복지팀으로 간 이후로 K는 직원들의 복지가 향상되는 대가로 본인이 갈려 나가고 있음을 늘 한탄했다. 물론 직원들의 복지가 높아졌다는 말에는 나도 H도 수긍하지 않았다. 봉골레 파스타에서 껍데기를 유심히 골라내던 H가 이젠 지치지도 않는다는 듯 그릇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어떻게 처음부터 끝까지 당사자가 싫어하는 말만 골라서 넣은 거지? 누가 지은 거야?”
그 말에 K는 얼굴이 부지불식간에 5년 정도 늙어서는 답했다. “내가.” 안쓰러웠지만 H의 감상을 부인할 순 없었다. 직원이 사장을 좋아할 리 만무했고, 함께라는 단어에는 경기를 일으킬 뿐이었고, MZ라는 말은 당사자들이 가장 질색팔색하는 말이었고, 소통에서 하고 싶은 말은 제발 내버려 둬였으며, 한마당은 놀라울 정도로 구닥다리여서 절대 가고 싶지 않았다. 무슨 생각 머리로 지은 거냐며 연신 투덜거리는 H에게 “곧 지방선거니까.”라고 넌지시 일렀다. 그러자 H는 아 하고 봉골레를 쑤셔 넣었다. 핵심은 늘 맨 앞의 말이었지 함께, MZ, 소통, 심지어는 그들이 좋아하는 한마당도 아니었다. 그 말들은 구청장에 붙은 조사만큼도 중요하지 않았다.
“절대 우릴 동원할 생각 마.”라며 포크를 휘두르는 H는 공과 사가 분명하면서도 늘 불분명했다. 동원해야 할 일이 있어 애원할 때마다 칼같이 거절했다가도, 막상 당일이 되면 못 이기는 척 얼굴을 비췄다. 그런 그녀가 재무과 지출팀에는 적임이라고 생각했다. 무능한 직원들의 지출 서류를 검토하는 일에는 사람을 향한 냉소와 동정이 모두 요구됐다.
“내가 재무과 와서 깨달은 건데,” H가 으름장을 놓던 눈빛을 거두며 말했다. “이곳 사람들은 돈을 쓰기만 한다는 거야. 돈을 벌어온 적이 없으니까 저런 기형적인 행사에다 돈을 써대는 거지.” 그러면서 포크로 샐러드의 방울토마토를 꾹 눌러 터뜨렸다. 펑펑. 돈을 쓰기만 하는 존재. 난 K가 건넨 제 몫의 식전 빵을 잡아 뜯으며 그 말을 곱씹어봤다. “집안 축내기만 하는 기고만장 첫째 아니면 우쭈쭈 막내?” 내 말에 외동딸인 H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사기업과 이곳의 가장 다른 점이긴 했다. 이곳에선 돈 벌 고민은 할 필요가, 아니 해서는 안 됐다. 이미 있는 돈을 언제, 어디에, 어떻게 쓸지에 대해서만 고민했다. 고민이라 하기에도 뭣한 게 그것들은 보통 ‘되도록 빨리’, ‘반드시 티 나는 곳에’, ‘그저 규정에만 맞게’로 귀결됐기에 한낱 피상에 가까웠다. 이곳에서 돈이란 벌어오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었고, 존재하니까 써야만 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왜 존재해야 하느냐 물으면 써야 하니까, 왜 써야 하느냐 물으면 존재하니까. 모두가 이 순환논리 속에서 유영했고, 그러다 보면 중요해야 할 어떤 것들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오로지 논리가 어기적어기적 작동되는 것, 그 자체에만 몰두하게 된다.
지독한 순환논리. 그건 이곳에 너무도 깊숙이 뿌리를 내린지라, 돈을 쓸 때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목격되는 일종의 자연현상이었다. 인사 발령 시즌이면 온갖 염원이 팽배했다. 전 다른 부서로 가야 해요, 좀 더 일이 없고 머리가 아프지 않을 곳으로요. 그 이유는 좀 더 일이 없고 싶고 머리가 아프고 싶지 않아서예요! 염원을 묵살하는 게 능사는 아니었다. 저 이 업무 못 하겠어요. 그것은 왜냐하면 제가 이 업무를 못하기 때문이죠. 그러면 며칠 후 다른 누군가가 불려 가 이런 말을 들어야 했다. 미안하지만 자네가 이 업무까지 맡아줘야겠어. 왜냐고? 자네라면 맡을 거기 때문이지. 업무가 시작돼도 마찬가지였다. 이봐, 이 사업은 반드시 해야 해, 효용성이 없다 해도 말이야. 왜냐니? 반드시 해야 하는 사업이라서지. 업무를 마쳐도 달라질 건 없었다. 회식 땐 술을 빼지 말고 먹어. 왜냐하면 술을 마시는 게 회식이기 때문이란다, 짠?
왜를 던질 때마다 왜가 되돌아오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더 이상 왜를 던지지 않게 된다.
“돈을 쓰기만 하는 존재라니, 그거 모두의 꿈이잖아.” 아까부터 풀이 죽은 얼굴로 티슈를 산산조각 내던 K가 소리쳤다. “근데 어째서 우린 행복하지가 않은 거야?” 그건 이곳이 철저하게 남의 행복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기 때문이야. 모두가 알기에 굳이 내뱉지는 않았다.
원치 않는 사람들과의 식사가 계속되다 보면 원하는 사람들끼리의 식사 시간은 마치 점점 줄어드는 식빵 안쪽처럼 여겨지곤 한다. 전자와는 말을 섞지 않기 위해 휴대폰을 보지만 후자와는 얘깃거릴 하나라도 더 꺼내려고 휴대폰을 보고, 전자와는 혹시 카페까지 이어지나 노심초사하지만 후자와는 밥을 다 먹기도 전에 벼르고 있었던 카페에 대해 이야기한다. 끝날 시간이 되면 ‘언제 또 같이 먹지’하고 생각한다는 면에선 공통점도 있다. 한쪽은 한숨으로, 한쪽은 아쉬움으로.
“누굴까?” 카페에서 아쉬움을 포장해 돌아가는 길에 K가 물었고, 뜬금없어 쳐다보자 H가 덧붙였다. “셋 중 제일 먼저 배신하는 사람.” 우리 같은 피라미 공무원 셋이 모이면 그중 한 명은 반드시 그만두게 되어있다. 최근 뉴스의 통계가 그랬고 경험상으로도 얼추 맞아떨어진다. 그럼, 정말 누굴까. 울고불고하다 나가떨어질 K? 우리조차 모르게 제 살길 갈고닦고 있을 것만 같은 H? 아니면 이곳의 이해되지 않음에 지쳐 스스로 이해되지 않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나? 모르겠다.
둘은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버티고 있긴 할까. 난 언제부턴가 둘 앞에서는 딱 위로받을 만큼만 그래서 한 번 더 버텨낼 수 있을 만큼만 힘들어했다. 나의 기저에 짙게 깔려 있는 이곳과 이곳 사람들에 대한 음습하면서도 명확한 험담들을, 둘 앞에서는 절대 꺼내지 않았다. 둘을 못 믿어서가 아니었다. 그것들은 전적으로 내가 갖고 있어야 할 것들이었다. 아끼는 사람에게 섞여 들어가는 것조차 꺼려질 만큼 몹쓸 감정들. 그것들에 대한 적절한 은밀은 내가 둘을 위로하는 나름의 방법이었다. 만일 셋 모두가 서로를 배신하게 되는 날이 오면, 그래서 더 이상 배신이 아니게 되는 날이 오면, 비로소 ‘나 그때 그랬어.’라고 씁쓸하게 풀어놓을 순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날이 올까. 이곳을 그만두는 것이 ‘그냥. 그래야만 했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선택이 되는 날이? 앞으로 하게 될 수많은 선택들 중에 있기는 한 걸까. 아니, 요즘 나는 선택이란 걸 하긴 하는 건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미친 듯이 허우적거렸던 그때의 나는 본능적으로 선택을 하고 있었던 거라고. “그때 있잖아. 우리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셋 다 버둥거렸을 때,” 그러던 나를, 벗어나기 위한 선택에 필사적이었던 두 다리를 내 두 손으로 꽉 붙들어 맸던 거라고. “쟨 울고, 넌 욕하고. 난, 난 어땠더라?”
둘은 뭔가를 떠올리곤 웃었다. 달콤함을 가장한 씁쓸함, 꼭 카카오닙스 같은 미소였다. “제일 심각했지. 오빤 울면서 욕했으니까.” 정말 그랬던 것 같아서 따라 웃었다. 만일 계속 울면서 끊임없이 욕했다면, 그걸 멈추지 않았더라면, 이곳은 나에게서 어디까지 밀려났을까.
“어쩌면 그때 그걸 멈추지 말았어야 했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