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연재
밤바람이 스쳤다. 뺨을 타고 스미는 낯섦에 지공은 몸을 떨었다. 날마다 마주치고, 날마다 보고, 날마다 걸었던 것들이 토라진 것처럼 쌀쌀맞게 굴었다. 아버지의 담배를 책임지던 구멍가게는 꺼져 있었다. 과일은 맛있지만 채소는 잘 무르던 청과물 가게는 꺼져 있었다. 오천구백 원에 한 마리를 내어주던 닭튀김 집은 꺼져 있었다. 티 낸 적 없지만 내심 갖고 싶어 했던 휴대전화들이 진열된 대리점은 꺼져 있었다. 골목을 나오자마자 보이는 동사무소도, 은행나무 길을 걷다 보면 나오는 학교도, 후문을 돌면 있는 분식집도, 떡꼬치를 뜯어 먹으며 걷던 자그마한 산책로도 꺼져 있었다. 지공은 자신이 낯선 것인지 꺼진 것들이 낯선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자판기는 꺼진 것처럼 켜져 있었다. 길을 오가며 몇 번 보았던 것이지만 작동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서 동전을 꺼냈다. 지공은 용돈을 받아 군것질하는 기분이 들어 웃었다. 번들번들 낡아 버린 투입구에 동전을 넣었다. 먹고 모른 척할 것 같은 소리를 냈다. 아버지의 풀잎 맛 음료를 눌렀다. 다행히도 자판기가 알은체했다. 그러곤 정말 꺼져 버렸다.
캔 뚜껑을 따는 소리가 선명하게 퍼졌다. 적막을 뚫어 어떤 존재든 불러내 줄 것만 같았다. 벤치 뒤 풀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공은 손이 시려 캔을 옆에 내려놓았다. 옅은 풀 내음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겉이 살짝 언 캔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저 멀리, 왠지 익숙한 두 눈이 일렁거렸다.
고양이는 아직도 파랬다. 꼭 아버지가 짐을 부릴 때 쓰던 하얀 밧줄이 밤에 내뿜는 푸른빛을 닮았다. 파란 고양이에게선 걷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몸은 여기에 있지만 다른 어딘가를 걷는 것처럼 걸었다. 그래서 알아차리지 못했나. 고요한 걸음이 벤치 앞에서 멈췄다. 애써 지공을 보지 않으려는 듯 굴었다. 따라온 게 분명한데 제 갈 길 가는 중이라는 것처럼. 의뭉스런 파란 고양이가 벤치 끄트머리에 폴짝 뛰어올랐다. 집에서 그랬던 것과 비슷한 거리였다. 앞발을 핥는 데 여념 없지만 온 신경을 다른 곳에 집중하고 있을 거라고, 지공은 짐작했다. 하지만 지공도 짐짓 모른 척했다.
“어디 가니?”
고양이가 앞발을 내려 곧게 앉았다. 그러고는 짧게 울었다. 주둥이에서 자그마한 입김이 부서져 나왔다. 지공은 고양이 옆에 있던 풀잎 맛 음료를 도로 가져와 한 모금 마셨다. 어두운 맛이 났다. 몸은 더욱 시렸고, 고양이는 털을 부풀렸다.
화물차 주차장은 언제 보아도 막무가내였다. 바닥에 선을 대충 그어놓고 내 집이라 우기는 것처럼 볼품없었다. 그 볼품없는 곳 한쪽에 익숙한 발과 등이 있었다. 커다란 발에는 얇은 서리가 꼈고, 기다란 등에는 방수포를 뒤집어썼다. 빈 캔을 가방에 넣고 다가갔다. 먼지가 짙게 내려앉아 안이 보이질 않았다. 발과 등의 주인이 운전석에 앉아 있을 것만 같았다. 지공은 늘 그랬던 것처럼 조수석에 올라앉고 싶었다. 그럴 수 없어서 가만 쳐다만 보았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오는 내내 굳게 마음먹어서일까, 그저 나오지 않는 것일까. 지공은 뿌연 유리창 위로 그렸다.
「?」
먼지를 걷어낸 물음은 너무도 자그마해, 안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벅벅 걷어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 안에서 숨죽이고 있을 익숙함은 물음에 대한 답이 아닐 거라고, 지공은 생각했다. 걷어낸 물음표에 축축한 성에가 들어차 더욱 의문스러워졌다.
어디든 가야 했지만 길은 몰랐다. 한겨울 자정의 길은 모든 것이 꺼져 있었고, 커다랗고 자그마한 입김만이 지공의 뒤를 둥둥 따라다녔다.
“이제 가.”
너무 냉정한 건 아닐까 고민하고 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고양이는 지공을 보지도 않고 앞질러서 어디론가 가 버렸다. 돌아볼 법도 한데 파란 뒷모습은 매몰찼다. 지공은 정말 저 혼자 오해한 건가 싶었다. 머쓱해져 대합실로 들어갔다.
매표소 상자 안에는 직원이 홀로 졸고 있었다. 지공은 괜히 푸른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다가갔다. 매대에 놓인 버스 시간표 하날 집어 들었다. 수많은 칸에 글자와 숫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너무나도 빼곡해 어디에서 어디로 언제 간다는 것인지 지공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눈을 찡그린 채 한참을 보다 고개를 드니 직원의 눈꺼풀이 세 겹으로 올라가 있었다. 지공은 제일 빠른 버스를 물었고, 직원은 목적지를 되물었다.
“어디든요.”
몇 개의 골이 직원의 미간에 패었다. 다섯 시 대전행 버스라는 말에 지공은 끄덕이곤 몸을 돌렸다.
대합실 의자는 텅 비어 있었다. 소리가 꺼진 텔레비전만이 그 빈자리들을 매웠다.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애국가가 나올 때까지 꼼짝없이 기다려야 하나. 생각하던 지공에게 텁텁한 골판지 냄새가 풍겼다. 그리고 옆에 한 남자가 다가와 앉았다. 고양이보다 가까운 거리였다. 지공은 남잘 올려다봤다. 몸은 자신과 아버지를 합한 것만큼 컸고, 머리와 수염은 아무렇게나 자라 있었다. 불쾌한 행색은 아니었지만 유쾌하지도 않았다. 남자는 떴는지 감았는지 알 수 없는 눈을 텔레비전에 고정한 채 핫바를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지공도 시선을 거둬 남자처럼 눈을 고정했다. 수 분 후 남자가 물었다.
“차 기다려?”
지공은 뒤늦게 끄덕였다.
“어디든?”
남자를 다시 반히 쳐다봤다. 목덜미가 유독 짙었다.
“그래, 뭐.”
남자는 뼈만 남은 핫바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지공은 남자의 얼굴에서 의기양양해하는 기색을 얼핏 보았다.
“벌교로 갈 건데. 괜찮으면 태워다 주고?”
남자는 딱히 대답을 들으려고 한 말은 아닌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공은 벌교가 어디에 붙어 있는 것인지 몰라 고민했다. 의미 없었다. 그야말로 어디든이었다. 밖으로 멀어지는 남자의 뒤를 멍하니 보다가, 짐을 챙겨 잰걸음으로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