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짐 -3-

단편소설 연재

by 지공

골판지 냄새는 맞바람에 더욱 의도적으로 다가왔다. 지공은 냄새가 풍겨오는 쪽을 유심히 관찰했다. 약간 거북목인 남자는 어깨가 안으로 조금 말렸지만 허리는 곧고 두꺼웠다. 걷고 있음에도 움직임이 없는 손은 부스스한 머리카락만큼이나 꺼슬꺼슬해 보였고, 바지가 겨우 감싸고 있는 다리는 꼭 받쳐 드는 것처럼 땅을 디뎠다. 짐작은 걸음을 뗄수록 점점 사실이 되었다. 지공은 생각했다. 남자는 짐꾼이라고.

남자는 한 트럭에 멈춰 서더니 뒤편으로 가 짐칸의 문이 말썽이라며 혼자 투덜거렸다. 지공은 조금 멀찍이 서서 트럭을 바라봤다. 닮았고 달랐다. 남자의 차에도 먼지는 묻어 있었다. 하지만 침묵 같은 먼지는 아니었다. 오히려 살아 움직이기에 쌓인 먼지였다. 바퀴에는 손만 대도 사그라들 서리 대신 곧 싹이라도 틔울 듯한 흙덩이가 군데군데 끼었다. 그리고 입김만 불어도 바스락거리는 방수포와는 비할 수 없이 단단한 적재 박스가 엄격하게 짜여 있었다.

딸각 소리가 지공을 깨웠고 남자가 운전석으로 뛰어올랐다. 문이 닫히는 둔탁한 소리가 지공을 다시 재웠다. 커다란 창 속으로 보이는 두 자리를 지공은 바라봤다. 어떠할까. 조수석에 오르면 어떠한 감정이 자신에게 올라탈까. 거짓된 재회에 웃게 될까 아니면 선명한 상실감에 울게 될까. 지공은 짐의 끈을 꽉 움켜잡았다. 트럭은 어떠한 말도 걸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지공은 자신이 망설이는 이유를 몰랐다. 저 자리가 낯설지 아니면 익숙할지 알 수 없었고, 그것을 안다 해도 지금 자신이 주저하는 것이 낯섦인지 익숙함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한참 만에야 지공은 차에 다가갔다. 어디든 가야 하니 어떠하든 상관없다고, 지공은 망설임을 매듭 졌다. 문을 여니 남자의 옆모습도 아무 말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불어닥치는 밤바람이 갈수록 찼다. 지공은 조수석에 올라 문을 닫았다. 히터에서는 온풍이 쏟아졌다. 조금 미지근했다. 지공은 그게 참으로도 익숙했다. 그래서 몸은 잠시나마 떨림을 멈췄다.


차가 고속도로로 들자 남자가 라디오 주파수를 맞췄다.

“서너 시간 걸릴 거야. 중간에 내려도 되고.”

“아니에요. 중간이 어딘지 몰라서요.”

남자가 그러든지 하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러곤 한 손으로 글러브박스를 열었다. 이리저리 헤집더니 뭔가를 끄집어내 지공에게 넘겼다.

“배고프면 먹으라고?”

초코바였다. 지공은 꾸벅하고 받았다. 껍질을 벗겨 한 입 베어 물었다. 한 입도 자유로워지지 않는다고, 지공은 초코바의 이름에 대고 꾸짖었다.

“가출이냐?”

두 입째에 남자가 물었다.

“네…. 그런 셈이죠.”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지 셈은 또 뭐야?”

지공은 남은 초코바를 통째로 입에 넣었다.

“그래 뭐.”

지공은 남자의 말버릇을 곱씹어봤다. 그래 뭐. 그 말에서 꼭 아버지가 말했던 단단함이 느껴졌다. 그래 뭐 하고 넘길 수 있게 되는 것, 무엇이든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 것. 지공은 남자를 다시 뜯어보았다. 새삼 단단해 보였다. 살갗에 겹겹이 껍질을 두른 것처럼, 어떠한 짐도 단숨에 들어 올릴 것처럼.

“근데. 그렇게 사람 홀라당 믿지는 마라.”

“아저씨 목덜미요.”

지공은 희미한 목젖을 꿀떡해 초코바를 마저 삼키고는 말했다. 남자가 잠깐 고갤 돌렸다.

“목덜미?”

“목덜미가 까만 사람은요, 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잖아요.”

지공은 초코바 껍질을 안주머니에 넣고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창에 반사되어 비친 남자는 알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두툼한 손으로 목덜미를 쓸었다. 엔진의 진동과 미지근한 온풍에 지공은 온몸이 나른해졌다.




—공아.

—도울래. 응?

—안 된다고 했어.

아버진 깊게 한숨을 쉰다.

—잘할 수 있어. 곧 있음 키도 아부지만 하고.

—혼나 볼래?

아버지가 아랫입술을 깨문다. 어린 나를 겁줄 때처럼.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겁을 집어 먹진 않는다. 나는 맞선다. 아버진 말없이 짐을 옮기기 시작한다. 무언의 허락.

짐을 들어본다. 다시 한번. 꿈쩍 않는다. 아버지는 코웃음 치며 옆에 놓인 똑같은 짐을 단숨에 들어 올린다. 그리고 짐칸에서 내려가 버린다. 나는 뒷모습을 멀뚱히 본다. 몸을 돌려 다시 시도해 본다. 하지만 짐은 어림없다고 한다. 한참을 대치한다. 얼굴은 새빨개지고 손가락은 하얘진다. 아버지가 다시 옆에 와 선다. 내가 아닌 짐을 내려다보며.

—안 되냐?

나는 말이 없다.

—응? 공아.

—응. 꿈쩍을 안 하네.

아버지가 쭈그려 앉는다.

—짐이란 건 말야, 공아.

한마디 한마디 내뱉으며 나의 종아리와 허벅지, 허리, 어깨를 차례로 쓰다듬는다.

—손으로 안 되믄 요 장딴지, 그래도 안 되믄 허벅지, 그래도 안 되믄 허리랑 어깨.

간지러운 느낌에 몸을 꼬물거린다.

—그냥…그르케 온몸 갈아서 용을 써야 움직이는 것들이 있지.

—이것처럼?

—그래. 이놈처럼.

아버진 이놈 위에 엉덩이를 대고 앉는다.

—그른데, 몸이 적응을 해요 또. 첨에는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다가도 들다 보믄 아무것도 아닌 게 돼 버려.

—단단해지는 것처럼?

나는 씨익 하고 웃지만, 아버진 웃지 않는다.

—그러다가 귀신같이 알고는, 더 엄청난 놈이 찾아와. 어디 나도 한번 들어 봐라 하믄서. 웃기지?

아버지는 웃지도 않으면서 웃기냐고 묻는다.

—그게, 짐이라는 거야.

아버지는 이놈을 다시 들어 보라 한다. 나는 훈수에 맞춰 몸을 움직인다. 그렇게 겨우 들어 올린다. 아버지처럼 가뿐히는 아니더라도, 어찌어찌 걸을 수는 있다. 아버지가 옆에 놓인 짐을 들고 앞서 걸어 나간다. 같은 짐을 들고, 같은 길을 걷는다. 아버지가 내려놓은 곳 바로 옆에, 나의 것도 내려놓는다. 상자들을 벽 삼아 기대어 주저앉는다. 아버지가 물을 건넨다.

—공아.

아버지가 트럭의 텅 빈 짐칸을 바라보고 있다.

—힘이 들어도.

아버지가 내 이마의 땀을 훑어 낸다.

—지금처럼 그냥 옮기다 보믄 말이다.

나도 아버지의 까맣게 탄 목덜미를 훑는다.

—언젠가 끝이 오는 거야.

—응.

아버지가 웃는다. 아버지의 눈이 닿은 곳을 바라본다. 그게 정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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