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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공 Jul 24. 2024

글을 쓰게 된 건에 대하여

아직 뭘 한 건 없소. 내가 아는 그대들이라면 염탐 마시오.

퇴사했다.  그렇게 됐다.

무료한 곳인 만큼 타인에 대한 소문도 빠른 곳이었다. 그래서 의원면직서를 내자마자 삽시간에 소문이 퍼질 거로 생각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소문이 퍼지기 전 그 기간이 꼭 마음을 돌릴 유예기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언젠간 돌 소문이었다. 그러기 전에 가까운 사람들에겐 먼저 알렸다. 예상했다는 사람, 놀라는 사람, 말리는 사람. 그리고 쏟아지는 수많은 물음들.


가장 많았던 물음은 였다. 분명 왜가 없는 곳이었다. 하라면 소극적으로 하고 하지 말라면 적극적으로 안 해야 하는 곳. 거기에 왜를 달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곳. 하지만 그런 곳에서 떠나겠다고 하자 쏟아지는 왜?들. 내가 답할 수 있는 물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저 웃었다. 그냥 그렇게 됐다고. 생각해 보니 그게 사실이기도 했다. 그냥 그래야만 하는 순간. 퇴사가 나에겐 그랬다. 그것 말고는 떠오르질 않았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됐다고, 언젠간 그렇게 될 일이었다고 웃고 말았다.


후회는 않는다. 만약 내가 후회라는 걸 한다면, 그건 7년 전에 내렸던 선택 혹은 7년간이나 이어졌던 수많은 단념들일 것이다.


그냥 살아지는 삶.

이대로 가다간 그냥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나에게 몰두하기로 결심했다. 돌이켜 보면 순 포기 투성인 인생이었다. 어찌어찌 대학교에 가 놓고 자퇴했고, 또 어찌어찌 공무원이 되어 좀 버티려나 싶더니 10년을 못 채우고 나와 버렸다. 자괴감보단 의문이 먼저 들었다. 그저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갔을 뿐인, 그저 그런 편승을 멈췄기로서니 그걸 정말 포기라고 불러야 하나? 합리화하려는 게 아니라, '나는 무언가를 포기할 자격이라도 있었나' 싶은 거다. 살면서 그 어떤 것도 열렬히 원한 바 없었기에, 포기할 수 있는 대상도 없는 것 아닌가.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내가 처음으로 누려보는 온전히 나를 위해 쏟는 시간일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런 시간을 누려본 적이 없었다. 나의 모든 노력의 이면에는 항상 다른 누군가가 있었거나, 사회적으로 그랬어야만 하는 당위 같은 것들이 짙게 깔려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묻지 않아도 아는 것들은 애써 외면했다. 그냥 그렇게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도 별 탈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줄 알았다.


그 모든 침묵과 외면의 대가는 한순간에 내면에서 터져버렸고, 그 예고 없는 파열에 그 어느 때보다도 깊게 방황해야만 했다. 나는 왜 그동안 아무런 의문도 갖지 않았을까. 나는 왜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을까. 나는 왜 나를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던 걸까. 나는 왜?


그래서 을 쓰기 시작했다.

단단히 토라져버린지라 나에게 직접 말을 걸 수는 없다. 내가 나를 아는데, 이런 상황에서 자꾸 말을 건네 봐야 화만 돋우게 될 것이 뻔하다. 지금은 그냥 내버려 두는 편이 낫다. 그래서 그냥 글을 쓴다. 35년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의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내기 위해서, 그리고 그 답들 속에서 보다 나은 나를 찾기 위해서, 내가 나에게 다시 손을 내밀 때를 위해서 말이다.



2024/07/24 브런치로부터.

소설을 퇴고하고 있는데, 서랍에 있는 글을 발행해 달라는 알람을 받았다. 뭔 말인가 해 메일함을 열어보니 저 메일이 와 있었다. 어제 점심쯤에 작가 신청을 했었던 터라, 브런치 직원들의 빠른 처리에 한 번 놀랐고, 그 처리라는 것이 수락이라는 것에 두 번 놀랐다. 문득 궁금증이 먼저 일었다. 왜요? 정말 왜였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저지르듯이 신청하긴 했지만, 신청할 때도 신청하고 나서도 당연히 안 될 줄 알았다. 어제 보낸 신청서는 내가 쓴 글이지만 내가 봐도 뭔가가 수상하고 딱 봐도 노잼인 남자가 쓴 글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냥 실수인가? 나도 공무원으로 일 하면서 절대 해서는 안 될 실수를 여러 번 저지르곤 했다. 저 메일은 그런 종류의 것인가? 그렇다면 브런치 담당자가 실수를 깨닫기 전까지만이라도 글을 올려보련다.  


얼떨떨해 장난처럼 말하긴 했지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뭐 책이 발간된 것도 아니고 뭘 수상하는 것도 아니지만, 누군가에겐 그저 사소한 일이겠지만, 지금 나에겐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수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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