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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의 함정

by 초이

급식 없는 학교에 다니는 넷째와 막내. 한동안은 전날 미리 도시락을 준비하고, 아침마다 부지런히 챙겨 갔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이내 대충 간식만 챙기거나, 아침을 거른 채 도시락을 싸는 일이 반복됐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각자 점심은 각자 알아서' 규칙이 무색하게 마음이 짠했다.


어느날 밤, 그 모습이 떠올라 동생들 방문을 열고 큰소리쳤다.


“내일 아침에 내 도시락 싸면서 너희 것도 싸줄게!”


미리 생각해둔 메뉴는 참치김밥. 전기밥솥으로 밥 취사만 예약해두면 될 줄 알았는데 큰 오산이었다. 밥에 깨소금 간을 하고, 캔참치는 채에 걸러 기름도 빼야하고, 계란은 얇게 부쳐야 하며, 냉동실에 얼어 있던 맛살은 녹을 생각을 안 하고, 당근은 채썰어 따로 볶아야 했다. 참치 김밥의 핵심, 분명히 있었던 깻잎은 보이지 않는다. 정신없이 준비한 속재료를 한데 모아보니 뭔가 부족해 보여 급한대로 단무지를 두 줄씩 넣었다.


등교준비를 마치고 초조한 눈으로 도시락을 기다리는 동생들. 언니를 독촉할 수도, 도시락을 포기하고 학교에 갈수도 없는 상황이다.


"딱 2분만, 진짜 다했어!"


막내가 도시락 가방만 챙겨 바로 나갈 듯, 양말과 외투까지 입고 식탁에 앉는다. 간신히 김밥 다섯 줄을 완성해, 꽁다리를 하나씩 입에 넣어주고 나도 하나 먹어본다. 퍽퍽하다. 마요네즈가 부족했는지 참치 기름을 너무 꽉 짜서인지 알 수 없다. 각자 한 줄씩 도시락에 담고, 남은 두줄은 급히 아침으로 나눠먹는다. 설거지는 고사하고 양치질할 시간도 없다. 간신히 도시락 사진 한 장 남기고, 나는 일터로 동생들은 학교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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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쉬는 날.


“내일은 언니 쉬니깐, 도시락 싸줄게!”


나는 다시 한 번 동생들에게 야심차게 외쳤다. 출근하는 날 싸주는건 어렵지만, 쉬는 날이니 무리 없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음 날 새벽 여섯 시, 알람소리를 듣자마자 전날의 경솔함이 후회로 밀려왔다. 여섯시 십오분으로 알람을 다시 맞추고 눈을 감았다.


두번째 알람이 울리자, 놀란 마음에 벌떡 몸을 일으킨다.


'늦잠인가? 동생들 벌써 갔나?'


동생 샤워소리를 듣고 아직 늦지 않았음을 확인한 뒤, 후다닥 주방으로 내려간다. 생각했던 샌드위치는 아무래도 힘들것 같아 대신 비장의 카드, 초간단 카레 볶음밥으로 급 변경. 동생들에게 이미 몇 번이나 선보여 자신있는 메뉴다.


기름 두른 팬에 파기름을 내고 계란을 스크램블한다. 몽글하게 계란이 익으면 밥을 크게 세 주걱 추가한다. 밥알이 고슬해지면, 고체 카레 한 덩이를 팬 한쪽에 올려 살살 눌러 녹인다. 금세 풀린 카레를 밥과 섞어가며 마져 볶고 후추로 마무리한다. 막상 너무 금방 끝나, 냉장고에 있던 소세지, 치즈, 김을 꺼내 소세지 문어까지 추가하는 사치도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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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쌌으니 하나씩 가져가, 팬에 남은건 아침으로 먹고!'


동생들에게 카톡을 보내고 다시 방으로 올라와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불을 끄고 커튼을 친 채 손 끝에서 솔솔 올라오는 카레향을 맡으며 눈을 감는다. 미션 완료했으니 나는 다시 꿈나라로 돌아간다. 쉬는 날이라도 도시락 준비는 만만치 않다.


두어 시간을 더 자고 일어나자, 동생들에게 고맙다는 카톡이 와 있었다. 엄치척 사진과 함께. 아, 이맛에 도시락 싸는구나싶다. 그 이후로, 몇 달간 쌓인 시행착오가 요령을 만들었다. 작은 도시락통 안에 여러 재료를 우겨 넣고, 영양 균형과 플레이팅까지 신경 쓸 여유도 생겼다.


그럼에도 중요한 교훈. 도시락 메뉴를 미리 고민하고, 전 날 재료를 준비하고, 아침 식사 준비와 함께 도시락을 싼다는건 정말이지 전쟁이다.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매일 이 전쟁을 치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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