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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Dec 06. 2024

퇴근 후 마주한 풍경

사흘 비행을 마치고 퇴근하는 날. 공항에서 나와 직원 주차장 전용 셔틀에 몸을 싣는다. 늦은 오후라 퇴근하는 사람들이 유독 많다. 앉을자리를 찾지 못해 구석 기둥에 몸을 기댄 채 잠시 눈을 감는다.


운전석에 앉자마자 앓는 소리가 나온다. 엉킨 바이오리듬과 밤비행으로 눈은 뻑뻑하고 허리와 팔목이 뻐근하다. 따신 물 샤워와 집밥이 간절하다. 안 막히면 50분이면 충분한데, 예상 도착시간이 1시간 20분 뒤라고 뜬다. 러시아워다.


‘언닌 이제 출발. 막혀서 좀 걸린다 ㅠㅠ’


동생들에게 문자를 보낸 뒤 신나는 노래를 튼 채 출발한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셋째에게 전화가 온다.


“언니 배고파? 얼마큼 고파? 도착하면 바로 밥 먹을 수 있어?”


왜인지 한 껏 신난 목소리로 묻는다. 요약하자면 셋이 장을 봐와서 마라 떡볶이를 만들었는데, 내 건 오자마자 먹을 수 있게 따로 만들어주겠다는 이야기였다. 진짜 맛있다고 언니도 좋아할 거라고 흥분해서 말하는 넷째와 막내 목소리도 연달아 들렸다. 엄청 배고프다고 맛있겠다고 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마라떡볶이라니 너무 맛있겠다‘라고 생각하며 떡볶이 먹을 생각에 반짝 난 힘으로 운전해 집에 도착했다.


언니 왔다고 소리치며 게라지 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니 매콤 달콤한 냄새가 난다. 동생 셋이 떡볶이가 든 냄비를 올려둔 식탁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장 먼저 들어온 건 굉장히 신난 듯한 셋의 표정. ’오늘 떡볶이는 진짜 대박이야‘라는 뿌듯함과 행복함이 뒤섞인 얼굴이었고, 그다음으로 들어온 건 어질러져있는 주방과 거실이었다. 식탁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우편물과 전단지, 필기구와 노트들. 의자며 소파에 잔뜩 걸려있는 옷가지들과 가방.


“아 집이 이게 뭐야. 가방이 왜 이렇게 많이 나와있어”


내 입에서 짜증 가득 섞인 말이 툭 나왔다. 동생들이 우물쭈물 변명하듯 가방을 치워 자리를 내주고 타이밍 잘 맞췄다며 냄비 뚜껑을 열어준다. 너무 배고팠다고 고맙다고 말하고 떡볶이를 먹으면 될 일인데 내 입은 멈추질 않고 잔소리를 계속 뱉어낸다. 비행 가기 전 꺼내뒀던 우편물이 어떻게 아직도 식탁에 쌓여있으며, 책상도 있으면서 왜 식탁에서 공부를 하느냐, 외투랑 가방만이라도 바로바로 정리할 수 없는지 등등… 한 참 이야기 하고 보니 분위기가 싸해진 게 느껴진다. 떡볶이 한 입 먹고 우물우물 씹으면서 생각하니 급 후회가 밀려온다. 좀 전까지 셋이 즐겁게 있었을 텐데, 언니가 좋아하겠지 하며 요리했을 텐데…


그리고 아주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아빠는 늘 바쁘셨다. 집에선 엄마와 우리끼리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아빠는 집이 정리되지 않은 모습을 싫어했는데, 그래서 아빠가 오시기 직전 후다닥 집을 정리할 때가 종종 있었다. 아빠 차가 주차장 입구를 지나면 ’ 차량이 들어옵니다’ 같은 세대 알림이 인터폰에 울렸고 약 3분 후 아빠가 집에 들어오셨다. 그 3분 동안 우리는 눈에 바로 띄는 거실과 주방을 초스피드로 정리했다. 크게 늘어져있는 짐들만 치우고 식탁만 깨끗해도 집은 정리된 느낌을 줬다. 한 번은 아빠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집이 왜 이렇게 더렵냐고 한마디 했다. 그때 나는 아빠는 꼭 그렇게 분위기 깨는 말을 해야 하나라고 생각했다. 아빠가 같이 치우면 되지, 좋은 이야기 먼저 하고 나중에 잔소리하면 되지 등등의 생각을 했다. (결국 그렇게 말해도 우리 집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정리정돈을 잘하는 사람은 아빠였다. 아빠가 우리에게 청소로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를 주진 않았다.)


이 생각이 지나가고 두 가지 마음이 들었는데, 하나는 ‘아 그때 아빠 맘이 이랬구나’였고 또 하나는 ‘나 지금 그때 아빠 같다’였다. 두 번째 떡을 입에 넣고 씹다가, 방으로 올라가지도 그렇다고 편하게 앉아있지도 못하는 동생들에게 용기 내 말했다. 예전에 아빠를 보면서 퇴근하고 와서 왜 그렇게 집안 분위기를 망치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내가 딱 그 모습인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나만 힘들게 일하고 왔다는 이기적인 생각에서 나온 마음인 것 같다고. 사실 너희도 각자 공부하고 일하면서 힘들었을 텐데 말이다.


쿨하게 내 사과를 받아준 동생들은 금세 마라 떡볶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새로 발견한 마라소스인데 이게 진짜라느니, 분모자랑 어묵이 들어가서 더 맛있다느니 하는 소소한 이야기들.


우린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다 집에 모인다. 각자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가족은, 집은, 긴장함 없이 편한 곳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서로 이야기하고 이해해야 한다. 서로의 필요를 표현하고 양보해야 한다. 사랑하니깐 가능하다. 물론 쉽진 않다.


엄마가 출국하기 전 집을 나서면서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지수야, 집이 좀 더러워도 괜찮아“


엄마는 어쩌면 이런 상황을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내 기억 속 아빠의 마음도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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