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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Nov 27. 2024

우리 집 수건 57장

미국 집은 수건을 큰방 안에 있는 화장실과 작은방 앞 복도 수납장 두 곳에 나눠 보관 중이다. 자연스럽게 큰 방을 쓰는 사람들은 그쪽 화장실과 수건을, 그리고 작은방을 쓰는 동생들은 복도에 있는 화장실과 수납장 속 수건을 사용한다. 일단 인원수가 많고, 웬만해서는 수건을 쉽게 버리지 않는 우리 가족 특성상 우리 집엔 수건이 늘 많았다. 색이나 두께가 다양하고 크기도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르다. 사용한 지 오래된 수건은 뻣뻣하고 거칠한 느낌이 나기도 하고, 비교적 새것에 속하는 수건은 도톰하니 부드러운 촉감이 남아있다.


재밌는 건 가족 각자 선호하는 수건이 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새로운 수건을 선호하는 건 아니다. 나의 경우는 샤워 후 몸의 물기를 먼저 닦고 직사각형 모양의 수건으로 머리를 둘둘 말아 올리는 걸 좋아한다. 머리를 올린 채 얼굴과 몸에 로션을 바르는 게 습관이 됐다. 그래서 일반적인 직사각형 수건보다 좀 더 정사각형의 가까운 수건은 선호하지 않아 마지막까지 미뤘다가 사용한다.


추위를 많이 타는 막내는 또 다르다. 막내는 온몸을 넉넉하게 덮는 큰 사이즈의  대형 수건을 선호한다. 바닷가 갈 때를 제외하고는 큰 타월을 사용하지 않는 난, 종종 막내에게 큰 수건 불편하지 않냐고 물어보고 싶은 충동을 참는다. 혹은 한 번쓰고 빨기 아깝다고 잔소리하고 싶은 충동을 참는다.


넷째의 경우엔 본인이 좋아하는 수건을 수납장 구석에 찜하듯 숨겨놓고 사용한다. 좋아하는 수건의 뚜렷한 기준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본인만 느낄 수 있는 촉감의 차이인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모두가 확고한 수건 취향이 있는 건 아니다. 엄마나 셋째는 그냥 있는 대로, 잡히는 대로 사용한다. 덕분에 많은 양의 수건이 그나마 골고루 돌아가며 사용되고, 세탁되고 있다.


엄마가 가시고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빨래는 다른 집안일에 비해 논쟁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 포함 총 세 명이 주기적으로 빨아야 하는 유니폼을 입는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한 명이 세탁기를 돌리면 또 다른 한 명이 건조기에 넣고, 또 누군가가 꺼내서 개는 식의 분할 작업이 가능한 게 두 번째 이유였다. 두 바구니 가득 쌓인 빨래더미와 텅 빈 바구니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는 점도 큰 역할을 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 ‘누군가 빨래를 했구나’ 알아보고 고마움을 바로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최소한 한 명은 심적, 체력적,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데, 일주일 가량 넷 모두가 정신없이 바쁜 시기였다. 샤워를 하려고 보니 속옷도 수건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내 허벅지까지 오는 크고 깊은 빨래바구니와 그의 절반 정도 되는 사이즈의 사각 바구니 속에 빨래들이 꾹꾹 눌린 채 담겨있었다. 건조기를 열여보니 건조기에도 차마 개켜지지 못한 옷가지가 한가득이었다.


급한 대로 건조기에서 수건 한 장, 팬티 한 장을 꺼내 씻고 나왔다. 바구니 두 개를 다 쏟아 대충 짙은색, 흐린 색으로 분리하고 흐린 색부터 세탁기에 넣고 돌린다. 건조기에서 며칠을 보냈을 빨래들을 꺼내 소파에 쌓아두고는 티비를 켠다. 넷플릭스에서 좋아하는 시리즈물을 하나 틀고 느릿느릿 빨래 개기를 시작한다. 수건으로 시작해 두꺼운 옷가지들부터, 얇고 작은 티셔츠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속옷과 양말을 갠다. 내가 구분할 수 있는 옷들은 주인별로 분리해 소파 앞 테이블에 늘어놓는다. 구분이 가장 어려운 속옷은 그냥 한데 모아둔다. 엄마가 빨래를 개실 땐 늘 마지막은 팬티 주인 찾기로 끝났다. 팬티 안쪽에 달린 손톱만한 사이즈 태그에 딸들 이니셜을 적어 넣기도 하셨다. 우린 서랍 속 찾는 속옷이 없으면 당연하다는 듯 엄마에게 묻곤했다.


“엄마 제 살색 면팬티 못보셨어요? 바지에 자국 안보이는거요.”


드라마 한 편이 끝나니 세탁 완료 소리가 들린다. 다 돌아간 빨래를 건조기에 넣고 드라마 한 편을 더 시작한다. 건조 시간이 절반쯤 남았을 때, 짙은색 빨래도 세탁기에 넣고 돌린다. 딩-하고 울리는 건조 종료음에 다시 옷 한 더미를 끌어안고 소파에 앉는다.


마지막 빨래까지 건조기에서 꺼내 개고 나니 테이블뿐 아니라 소파도 개킨 옷과 수건으로 가득 찬다. 티비보면서 빨래 개기는 즐겨해도, 갠 옷을 제자리에 배달해 주기란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지만 게으름 조금 극복해볼까 하는 맘으로 수건까진 정리하기로 한다. 양손을 이용해 한번에 들 수 있는 개수는 많아야 8개. 큰 바구니에 차곡차곡 다 담아 한 번에 올라가기로 한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많기도 하다. 우리 집 수건 총 57장.


빨래와 드라마로 세 시간 반이 금세 지나갔다.

알차게 보낸 것 같기도, 아쉽기도 한, 쉬는 날 오후가 지나간다.


오늘도 동생들에게 메시지를 남긴다.

‘오늘 집 오면 각자 빨래 갖고 올라가기’


샤워 후 사용할 수건 한 장도,

역시 당연한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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