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원이 많은 우리 집은 언제부턴가 ‘각설’이 규칙으로 자리 잡았다. ‘각자 설거지’의 약자로, 본인이 사용한 숟가락, 젓가락을 포함해 국그릇과 밥그릇은 본인이 설거지한다. 엄마의 설거지를 돕는다는 명목하에 고작 내가 먹은 그릇 몇 개 닦으면서 내 마음은 왜 그리 뿌듯했나 모르겠다.
엄마가 한국으로 가신 이후, ‘각설’ 규칙은 더욱 강화되었다. 식탁에 누가 사용했는지 명확히 알 수 없는 컵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고, 함께 요리하고 남겨진 프라이팬이나 냄비 등의 조리도구들은 누가 닦는 게 맞는지 기준이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내가 한 번 하고 말지’라는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희생정신은 ‘내가 저번에 해줬는데 왜 너는 안 해줘’라는 억울함이 되어 서로를 공격했다. 고작 포크 하나, 국자 하나에 자매 간에 의가 상했다.
규칙이 강화되었다고 문제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설거지에 속하는 영역은 생각보다 넓었다. 이미 개수대에 쌓여있는 마른 식기 정리부터, 가스레인지 주변으로 말라붙은 음식물과 넘친 국물 자국들, 싱크대 주변에 널려있는 행주며, 조리도구도 닦고 정리해야 했다. 음식물 쓰레기도 처리해야 하고 물기가 고여있는 수세미 거치대도 닦고 말려야 했다. 큰 마음먹고 이 모든 걸 해치운 날에는 ’ 내가 방금 뭘 했는지 알아?‘하며 동생들에게 카톡을 보내 수고했단 말을 꼭 들었다.
문득,
내가 설거지할 테니 엄마는 가서 쉬라고 큰소리쳤던 날이 생각났다. 싱크대에 담긴 그릇들만 닦아 헹구어놓고는 큰 일을 해낸 양 생색낸 날. 내가 엄마에게 큰 쉼을 줬다고 어깨 으쓱했던 날. 엄마는 결국 주방에 다시 가보셨겠지 싶었다. ’아 이건 좀 처리하기 곤란하니 엄마에게 토스!‘ 하며 흐린 눈 하고 지나갔던 작은 일들이 모여 얼마나 큰일이 되었을까. 엄마는 어째서 ‘나는 맨날 하는데 너희는 왜 안 해?’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
…
이제는 주문처럼 외운다. 설거지의 시작은 뭐다?
마.식.정.
‘마른 식기 정리‘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