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국을 허하라, 김세중, 두바퀴출판사
지하철 2호선 강변역에 희한한 광고판이 걸려 있었다.
"산을 즐겨라! 맘껏 숨셔라!"라는 문구가 손글씨체로 씌어 있었다.
숨셔라?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숨 쉬다'라는 말은 있어도 '숨 시다'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있을 리가 없는 말이다.
하지만 '숨셔라'는 '숨시어라'가 준 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도 '숨시어라'라고 하지 않는다.
'숨 쉬어라'라고 할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줄여서 보통 '숨수ㅕ라'라고 말한다.
그런데 '숨 쉬어라'를 줄여서 '숨셔라'라고 적은 이유는 뻔하다.
'수ㅕ라'라고 쓸 수 없기 때문이다.
'ㅜㅕ'라는 글자를 현행 맞춤법에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현행 맞춤법뿐 아니라 과거 맞춤법에서도 'ㅜㅕ'라는 글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ㅑ, ㅕ, ㅛ, ㅠ, ㅒ, ㅖ, ㅘ, ㅝ, ㅙ, ㅞ, ㅟ'는 있는데 왜 'ㅜㅕ'는 없을까.
이에 대해 일반인은 물론이고 국어학자들은 별로 관심을 가져본 일이 없는 듯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ㅜㅕ'가 '쉬어', '사귀어', '바뀌어', '할퀴어' 같은
동사의 준말에서만 쓰일 뿐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동사 활용형의 준말이 아닌 경우에는 'ㅜㅕ'가 나타나지 않으니 빠뜨렸던 게 아닌가 한다.
하지만 동사의 준말에서 'ㅜㅕ'는 엄연히 쓰이고 있다.
오래 전부터 쓰여 왔다.
'사귀었다'아 같이 네 음절로 발음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사구ㅕㅆ다'처럼 세 음절로 발음하는 것이 보통이다.
'바뀌었다', '할퀴었다'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빠뜨린 것은 현재에 보충해 넣는 것이 지금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도리요 의무다.
과거에 안 썼으니 지금도 쓰면 안 된다?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세종대왕은 과거에 없던 문자 체계를 송두리째 새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다.
그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편리한 문자 생활을 누리고 있다.
그 위대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데 15세기에 세종대왕이 창제한 글자를 지금 그대로 똑같이 쓰고 있는 게 아니다.
대체로 큰 줄기는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없어진 글자도 있고 새로 생긴 글자도 있다.
음운체계가 달라지니 생긴 변화다.
조상들은 말과 글자에 끊임없는 변화와 개신을 해왔다.
불편한 것은 고치고 새로 필요하게 된 것은 기워 넣는 일을 끊임없이 했다.
그런데 어인 일인지 오늘날의 우리들은 그런 노력을 게을리하는 거 같다.
그저 과거에 안주하고만 있다.
빠진 'ㅜㅕ'를 채우는 것도 변화와 개신의 한 움직임이다.
과거에 안주할 게 아니라 부족함이 있으면 채워 넣는 게 마땅한 도리다.
변화를 두려워할 게 아니다.
최근 나온 '순대국을 허하라'(김세중, 두바퀴출판사, 전자책)는
맞춤법이 사이시옷을 과도하게 남발하여 '순댓국'을 강요하는 어리석음을 질타했다.
그 결과 국어가 시장에서 국민이 쓰는 국어(순대국)와
국어사전 편찬자와 국어교사(순댓국)만이 쓰는 국어로 쪼개지는 현실을 개탄했다.
'숨수ㅕ라'라 쓰지 않고 '숨셔라'를 쓰는 기막힌 현실도 한시바삐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과거 안주는 미덕이 아니다.
국어학자가 움직이지 않으면 대중이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