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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Apr 01. 2019

사이시옷 과잉


기사 제목에 눈길이 간다.

'휘발윳값.경유값 7%밖에 차이 안 난다?'라 돼 있어서다.

'휘발'에는 'ㅅ'이 붙어 있고 ''에는 'ㅅ'이 없다.


뜨악하지 않을 수 없다.

뜨악함을 넘어 부아가 치밀려고 한다.


언젠가부터 신문 기사 제목에서 '휘발윳값'이나 '채솟값' 같은 표기를 보고 몹시 눈살이 찌푸려졌다.

휘발윳값?

채솟값?


낯설고 생소한 이런 표기가 신문 기사에 꼬박꼬박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글 맞춤법 제30항 규정 때문이다.

제30항은 합성어로서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면 사이시옷을 적도록 했다.


이 규정 자체가 무지막지하지만 '휘발유+값'에 이 규정을 적용하는 게 옳은가.

'휘발윳값', '채솟값'이 과연 합성어이냐 말이다.

합성어가 아니라면 사이시옷을 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두 단어가 합쳐져서 한 단어가 될 때 합성어라고 한다.

'꽃밭'이나 '국밥' 같은 말이 대표적인 합성어다.


그런데 어떤 단어에 '값'이라는 단어가 이어지면 그것이 한 단어인가?

즉 '휘발유'와 '값'이 이어지면 한 단어냐 말이다.


두 단어가 합쳐져서 원래의 각 단어의 단순한 합이 아닌, 뭔가 새로운 뜻의 단어가 될 때 합성어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두 단어의 연결, 즉 구일 뿐이지 단어가 아니다.


'휘발유'에 '값' 붙은 '휘발유값'이 한 단어라면, 그래서 '휘발윳값'이라고 적어야 한다면,

'등유값', '경유값', '중유값', '항공유값'도 한 단어고, 

그래서 '등윳값', '경윳값', '중윳값', '항공윳값'이라 적어야 하나?


어떤 물건 이름에 '값'이 붙는다고 정말 다 한 단어가 될까?

'채솟값'이 한 단어라면 

'시금치값', '파값', '양파값', '무값', '상추값', '배추값', '고추값', '감자값', '고구마값', '오이값', '열무값', '부추값' 등도 모두 

'시금칫값', '팟값', '양팟값', '뭇값', '상춧값', '배춧값', '고춧값', '감잣값', '고구맛값', '오잇값', '열뭇값', '부춧값'으로 적어야 할까.


시장에서 팔리는 물건은 채소에 그치지 않는다.

값이 매겨져 팔리는 물건은 수백, 수천 종도 넘는다.

아니 수만 가지도 넘을지 모른다.

그 많은 물건 이름에 '값'이 붙으면 다 단어인가?


이 많은 말들은 '값'이 붙어서 전혀 새로운 뜻이 되지 않는다.

무엇의 가격이란 뜻밖에 없다.

그것은 곧 합성어, 즉 단어가 아니라 구라는 뜻이다.

따라서 한글 맞춤법 제30항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한글 맞춤법 제30항은 합성어일 경우에 사이시옷을 붙이도록 했기 때문이다.


결국 '휘발윳값'이나 '채솟값'은 애초부터 한글 맞춤법을 잘못 적용한 결과일 뿐이다.

'휘발유 값', '채소 값'으로 적어야 할 것을 붙여서 '휘발유값', '채소값'으로 적으면서

거기에다 사이시옷 규정까지 적용해 '휘발윳값', '채솟값'이라는 표기가 나타나고 말았다.


'휘발윳값.경유값'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단단히 잘못됐음을 알 수 있다.

'휘발윳값'에는 'ㅅ'이 붙고 '경유값'에는 'ㅅ'이 안 붙을 이유가 없다.

둘 다 붙든지 둘 다 안 붙어야 한다.

둘 다 안 붙어야 함이 물론이고.


'휘발유 값'과 '경유 값'처럼 띄어 쓰는 게 원칙적으로 옳다.

그걸 붙여서 '휘발유값'과 '경유값'이라 적는 것까진 용인할 수 있겠다.

그러나 거기에 더해 '휘발'이라 적는 건 어이없는 일이다.

어이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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