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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l 29. 2019

목적어 없는 비문

주어가 있어야 하는데 없어서 비문이 된 사례들을 보았다. 그런데 목적어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없어서 비문이 된 사례도 있다. 민법 제322조는 다음과 같다.


제322조(경매, 간이변제충당) 

①유치권자는 채권의 변제를 받기 위하여 유치물을 경매할 수 있다.

②정당한 이유있는 때에는 유치권자는 감정인의 평가에 의하여 유치물 직접 변제에 충당할 것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유치권자는 미리 채무자에게 통지하여야 한다.


제2항에서 '유치권자는 감정인의 평가에 의하여 유치물 직접 변제에 충당할 것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라고 했는데 '충당할'이라는 동사는 목적어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국어사전에 보면 '충당하다'는 다음과 같이 쓰이는 것으로 돼 있다.


충당하다【…을 …에】【 …을 …으로】

모자라는 것을 채워 메우다.


즉 '충당하다'는 '~을'이라는 목적어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그러나 위 민법 제322조 제2항에서는 '유치물 직접 변제 충당할 것을'이라고 하여 목적격 조사 ''이 붙은 목적어가 없다. '유치물'가 아니라 '유치물'이라고 해야 '충당할'과 호응하면서 문장이 문법적이게 된다. '유치물로'를 꼭 살려야 한다면 뒤를 바꾸어야 한다. 즉, '유치물로 직접 변제할 것을'과 같이 써야 한다. 그렇지 않고 '충당할'을 반드시 써야겠다면 목적어를 넣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목적어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동사가 쓰였는데 목적어가 없으면 비문이다. 대충 뜻이 통한다고 넘어갈 게 아니다. 단어는 그 용법에 맞게 써야 한다.


②정당한 이유있는 때에는 유치권자는 감정인의 평가에 의하여 유치물 직접 변제에 충당할 것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사람에게는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하도록 명할 수 있다고 민법 제764조는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손해배상뿐 아니라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까지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명예회복은 단지 금전적 보상만으로 충분하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이 필요하다고 한 것이다.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이란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던 말을 정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이겠는데 그 한 가지로 사죄광고를 하게 하는 것이 있었지만 사죄광고는 헌법재판소의 1991년 결정에 따라 민법에서 제외되었다. 문제는 민법 제764조 문장이 문법적이냐는 것이다.


제764조(명예훼손의 경우의 특칙)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하여는 법원은 피해자의 청구에 의하여 손해배상에 갈음하거나 손해배상과 함께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명할 수 있다.


위 문장에서 주어는 '법원은'이고 서술어는 '처분을 명할 수 있다'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 있는 '손해배상에 갈음하거나'는 어디에 걸리는가. 만일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하여는 법원은 피해자의 청구에 의하여 손해배상에 갈음할 수 있다.'가 문법적이라면 위 제764조 문장은 문법적이다. 그런데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하여는 법원은 피해자의 청구에 의하여 손해배상에 갈음할 수 있다.'가 문법적인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하여는 법원은 피해자의 청구에 의하여 손해배상을 명할 수 있다.'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하여는 법원은 피해자의 청구에 의하여 손해배상에 갈음할 수 있다.'는 목적어가 빠져 있는 불완전한 문장, 즉 비문이다. 따라서 위 제764조 문장은 다음과 같이 고칠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


제764조(명예훼손의 경우의 특칙)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하여는 법원은 피해자의 청구에 의하여 손해배상 또는 손해배상과 함께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명할 수 있다.


이렇게 고치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하여는 법원은 피해자의 청구에 의하여 손해배상을 명할 수 있거나 손해배상과 함께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명할 수 있다는 뜻이 분명히 드러난다. 대충 뜻이 통한다고 비문법적인 문장을 용인할 것인가. 아니라고 본다. 법률 조문은 명확해야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문법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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