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가 있어야 하는데 없어서 비문이 된 사례들을 보았다. 그런데 목적어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없어서 비문이 된 사례도 있다. 민법 제322조는 다음과 같다.
제2항에서 '유치권자는 감정인의 평가에 의하여 유치물로 직접 변제에 충당할 것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라고 했는데 '충당할'이라는 동사는 목적어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국어사전에 보면 '충당하다'는 다음과 같이 쓰이는 것으로 돼 있다.
즉 '충당하다'는 '~을'이라는 목적어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그러나 위 민법 제322조 제2항에서는 '유치물로 직접 변제에 충당할 것을'이라고 하여 목적격 조사 '을'이 붙은 목적어가 없다. '유치물로'가 아니라 '유치물을'이라고 해야 '충당할'과 호응하면서 문장이 문법적이게 된다. '유치물로'를 꼭 살려야 한다면 뒤를 바꾸어야 한다. 즉, '유치물로 직접 변제할 것을'과 같이 써야 한다. 그렇지 않고 '충당할'을 반드시 써야겠다면 목적어를 넣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목적어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동사가 쓰였는데 목적어가 없으면 비문이다. 대충 뜻이 통한다고 넘어갈 게 아니다. 단어는 그 용법에 맞게 써야 한다.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사람에게는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하도록 명할 수 있다고 민법 제764조는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손해배상뿐 아니라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까지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명예회복은 단지 금전적 보상만으로 충분하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이 필요하다고 한 것이다.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이란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던 말을 정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이겠는데 그 한 가지로 사죄광고를 하게 하는 것이 있었지만 사죄광고는 헌법재판소의 1991년 결정에 따라 민법에서 제외되었다. 문제는 민법 제764조 문장이 문법적이냐는 것이다.
위 문장에서 주어는 '법원은'이고 서술어는 '처분을 명할 수 있다'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 있는 '손해배상에 갈음하거나'는 어디에 걸리는가. 만일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하여는 법원은 피해자의 청구에 의하여 손해배상에 갈음할 수 있다.'가 문법적이라면 위 제764조 문장은 문법적이다. 그런데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하여는 법원은 피해자의 청구에 의하여 손해배상에 갈음할 수 있다.'가 문법적인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하여는 법원은 피해자의 청구에 의하여 손해배상을 명할 수 있다.'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하여는 법원은 피해자의 청구에 의하여 손해배상에 갈음할 수 있다.'는 목적어가 빠져 있는 불완전한 문장, 즉 비문이다. 따라서 위 제764조 문장은 다음과 같이 고칠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
이렇게 고치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하여는 법원은 피해자의 청구에 의하여 손해배상을 명할 수 있거나 손해배상과 함께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명할 수 있다는 뜻이 분명히 드러난다. 대충 뜻이 통한다고 비문법적인 문장을 용인할 것인가. 아니라고 본다. 법률 조문은 명확해야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문법을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