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 제195조는 물권 중에서 점유권에 관한 조항이다. 점유보조자는 보조자일 뿐 점유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타인의 지시를 받어'이다.
'받어'는 '받아'의 잘못임을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확성을 중요시하기 마련인 법조인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받어'는 민법이 제정, 시행될 때부터 '받어'였다. 그리고 6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받어'이다. 민법이 무려 서른 번이나 개정되는 동안 요지부동으로 '받어'이다. 말에 대해 이리도 관심이 없을 수 있는가.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받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한 국민의 질의에 대한 관계당국자의 답변(2011. 2. 24.)이다.
일반 국민이 '받어'를 '받아'로 수정해달라고 오탈자 수정 요청을 했다. 답변 요지는 이러하다.
첫째, 말씀하신 사항은 저희가 임의로 수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둘째, 제정되면서 '받어'로 공포가 됐고 이후로도 한번도 '받아'로 공포된 적이 없다.
첫째, 저희(법제처)가 임의로 수정할 수 없음은 맞는 말이다. 오자라도 고치는 것은 법률 개정에 해당하고 따라서 정부가 발의하든 국회가 발의하든 법률 개정을 해야 한다. 그러나 오자의 존재를 아는 이상은 국회에 요구하든 정부에 제안하든 오자를 고치려는 노력은 해야 하지 않는가. 거기에 대한 답은 없다.
둘째는 완전한 동문서답이다. 제정될 때 '받어'로 공포됐고 이후로도 한번도 고치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고칠 필요가 없다는 뜻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래 놓고서는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는 또 뭔가. 게시판에 청원한 국민을 우롱해도 분수가 있지 이럴 수는 없다. 못 고치겠다면서 무엇이 좋은 의견이라는 건가.
민법 제195조가 오자임이 분명한 증거가 있다. 1958년 2월 22일 제정된 민법의 제484조와 제1069조를 보자.
제484조 제2항과 제1069조의 제2항에 모두 '받아야'라고 돼 있다. 1958년 제정된 당시에도 표준어는 '받아야'이지 '받어야'가 아니었던 것이다. 제195조의 '받어'가 오타였을 뿐이다. 사정이 그러한데 '받어'를 고칠 수 없다니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위 게시판의 답변에 대해 왈가왈부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나라 법조계에 널리 퍼져 있는 우리말에 대한 무관심, 경시를 지적할 따름이다. 실로 경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