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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l 30. 2019

오자

민법 제195조는 물권 중에서 점유권에 관한 조항이다. 점유보조자는 보조자일 뿐 점유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타인의 지시를 받어'이다. 


제195조(점유보조자) 가사상, 영업상 기타 유사한 관계에 의하여 타인의 지시를 받어 물건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를 하는 때에는 그 타인만을 점유자로 한다.


'받어'는 '받아'의 잘못임을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확성을 중요시하기 마련인 법조인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받어'는 민법이 제정, 시행될 때부터 '받어'였다. 그리고 6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받어'이다. 민법이 무려 서른 번이나 개정되는 동안 요지부동으로 '받어'이다. 말에 대해 이리도 관심이 없을 수 있는가.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받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한 국민의 질의에 대한 관계당국자의 답변(2011. 2. 24.)이다.


일반 국민이 '받어'를 '받아'로 수정해달라고 오탈자 수정 요청을 했다. 답변 요지는 이러하다.


첫째, 말씀하신 사항은 저희가 임의로 수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둘째, 제정되면서 '받어'로 공포가 됐고 이후로도 한번도 '받아'로 공포된 적이 없다.


첫째, 저희(법제처)가 임의로 수정할 수 없음은 맞는 말이다. 오자라도 고치는 것은 법률 개정에 해당하고 따라서 정부가 발의하든 국회가 발의하든 법률 개정을 해야 한다. 그러나 오자의 존재를 아는 이상은 국회에 요구하든 정부에 제안하든 오자를 고치려는 노력은 해야 하지 않는가. 거기에 대한 답은 없다.


둘째는 완전한 동문서답이다. 제정될 때 '받어'로 공포됐고 이후로도 한번도 고치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고칠 필요가 없다는 뜻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래 놓고서는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는 또 뭔가. 게시판에 청원한 국민을 우롱해도 분수가 있지 이럴 수는 없다. 못 고치겠다면서 무엇이 좋은 의견이라는 건가.


민법 제195조가 오자임이 분명한 증거가 있다. 1958년 2월 22일 제정된 민법의 제484조와 제1069조를 보자.


제484조 (대위변제와 채권증서, 담보물) ①채권전부의 대위변제를 받은 채권자는 그 채권에 관한 증서 및 점유한 담보물을 대위자에게 교부하여야 한다.

②채권의 일부에 대한 대위변제가 있는 때에는 채권자는 채권증서에 그 대위를 기입하고 자기가 점유한 담보물의 보존에 관하여 대위자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


제1069조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 ①비밀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필자의 성명을 기입한 증서를 엄봉날인하고 이를 2인이상의 증인의 면전에 제출하여 자기의 유언서임을 표시한 후 그 봉서표면에 제출 연월일을 기재하고 유언자와 증인이 각자 서명 또는 기명날인 하여야 한다.

②전항의 방식에 의한 유언봉서는 그 표면에 기재된 날로부터 5일내에 공증인 또는 법원서기에게 제출하여 그 봉인상에 확정일자인을 받아야 한다.


제484조 제2항과 제1069조의 제2항에 모두 ''라고 돼 있다. 1958년 제정된 당시에도 표준어는 ''이지 ''가 아니었던 것이다. 제195조의 '받어'가 오타였을 뿐이다. 사정이 그러한데 '받어'를 고칠 수 없다니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위 게시판의 답변에 대해 왈가왈부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나라 법조계에 널리 퍼져 있는 우리말에 대한 무관심, 경시를 지적할 따름이다. 실로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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