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중 Aug 02. 2019

'또는'을 잘못 쓴 문장

민법에는 '또는'이란 말이 여러 번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이 '또는'이 바르게 사용되지 않은 사례가 있다. '또는'은 '그렇지 않으면'이라는 뜻의 부사다. 영어로는 or다. 'A 또는 B'는 A와 B 중 어느 하나란 뜻이다. 즉 A와 B 중에서 어느 하나가 선택된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또는' 앞에는 동사나 형용사의 접속어미로 '-거나'가 와야지 '-'가 올 수는 없다. 그런데 민법에는 '-고 또는'을 쓴 예가 있다. 민법 제238조는 다음과 같다.


제238조(담의 특수시설권) 인지소유자는 자기의 비용으로 담의 재료를 통상보다 양호한 것으로 할 수 있으며 그 높이를 통상보다 높게 할 수 있고 또는 방화벽 기타 특수시설을 할 수 있다.


'있고'와 '또는'은 나란히 쓰일 수 없는 말이다. '있거나 또는'이라야 한다. '있고'를 반드시 써야 한다면 '또는'은 빠져야 한다. 즉 다음 둘 중 어느 하나로 써야 한다.


(1)

인지소유자는 자기의 비용으로 담의 재료를 통상보다 양호한 것으로 할 수 있으며 그 높이를 통상보다 높게 할 수 있거나 또는 방화벽 기타 특수시설을 할 수 있다.


(2)

인지소유자는 자기의 비용으로 담의 재료를 통상보다 양호한 것으로 할 수 있으며 그 높이를 통상보다 높게 할 수 있고 방화벽 기타 특수시설을 할 수 있다.


(1)의 '있거나 또는'에서 '또는'은 없어도 된다. '-거나'가 이미 '또는'의 뜻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2)는 다음과 같이 쓸 수도 있다.


(2')

인지소유자는 자기의 비용으로 담의 재료를 통상보다 양호한 것으로 할 수 있으며 그 높이를 통상보다 높게 할 수 있고 방화벽 기타 특수시설을 할 수 있다.


(1)과 (2)는 의미가 다르다. (1)에서는 '-거나 또는' 때문에 어느 하나만이 선택되어야 한다. 그런데 (2)는 그렇지 않다. 둘 다 선택될 수 있다. 입법자의 의도는 (2)가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민법 제238조에서 '또는'은 빠져야 마땅하다. '또는' 대신에 (2')에서처럼 '방화벽 기타 특수시설을 할 수 있다'와 같이 보조사 ''를 쓸 수는 있다.




민법 제238조에서 '그 높이를 통상보다 높게 할 수 있고 또는 방화벽 기타 특수시설을 할 수 있다'는 '그 높이를 통상보다 높게 할 수 있고 방화벽 기타 특수시설을 할 수 있다' 또는 '그 높이를 통상보다 높게 할 수 있고 방화벽 기타 특수시설을 할 수 있다'로 바꾸어 써야 함을 앞에서 지적하였다. 요컨대 '~'와 '또는'은 양립할 수 없으며 '~'가 온 이상 '또는'은 빠져야 한다. 똑같은 문제가 민법 제443조에도 나타난다. 제443조는 다음과 같다.


제443조(주채무자의 면책청구) 전조의 규정에 의하여 주채무자가 보증인에게 배상하는 경우에 주채무자는 자기를 면책하게 하거나 자기에게 담보를 제공할 것을 보증인에게 청구할 수 있고 또는 배상할 금액을 공탁하거나 담보를 제공하거나 보증인을 면책하게 함으로써 그 배상의무를 면할 수 있다.


''와 '또는'은 양립할 수 없다. '있고'가 온 이상 '또는'은 없어야 마땅하고 '또는' 대신에 '그 배상의무를 면할 수 있다'를 '그 배상의무를 면할 수 있다'라고 쓰는 것이 좋다. 즉 다음과 같이 쓸 때 문장이 반듯해진다. '또는'을 잘못 사용해서는 안 된다.


제443조(주채무자의 면책청구) 전조의 규정에 의하여 주채무자가 보증인에게 배상하는 경우에 주채무자는 자기를 면책하게 하거나 자기에게 담보를 제공할 것을 보증인에게 청구할 수 있고 배상할 금액을 공탁하거나 담보를 제공하거나 보증인을 면책하게 함으로써 그 배상의무를 면할 수 있다.




민법에서 '또는'을 오용하거나 남용한 사례들을 살펴보았다. 그런 사례들은 또 있다. 다음 제385조의 '또는'은 크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낫게 다듬을 여지가 있다. 


제385조(불능으로 인한 선택채권의 특정) ①채권의 목적으로 선택할 수개의 행위 중에 처음부터 불능한 것이나 또는 후에 이행불능하게 된 것이 있으면 채권의 목적은 잔존한 것에 존재한다.


'처음부터 불능한 것이나 또는 후에 이행불능하게 된 것이 있으면'이라고 했는데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할 일이 없으므로 문제 없다고 넘어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찬찬히 뜯어 보면 자연스운 표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것이나'의 조사 '이나'와 '또는'이 의미가 같기 때문이다. '이나'와 '또는' 둘 중에서 하나만 쓸 때 자연스러운 한국어 문장이 된다. 군더더기는 없는 게 좋다. 즉 아래 둘 중 어느 하나로 쓸 때 문장이 간결하면서 좀 더 쉽게 뜻이 파악된다. 


제385조(불능으로 인한 선택채권의 특정) ①채권의 목적으로 선택할 수개의 행위 중에 처음부터 불능한 것 또는 후에 이행불능하게 된 것이 있으면 채권의 목적은 잔존한 것에 존재한다. ('이나'를 뺌)


제385조(불능으로 인한 선택채권의 특정) ①채권의 목적으로 선택할 수개의 행위 중에 처음부터 불능한 것이나 후에 이행불능하게 된 것이 있으면 채권의 목적은 잔존한 것에 존재한다. ('또는'을 뺌)


다음 제467조도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완벽한 문장 또한 아니다. 


제467조(변제의 장소) ①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변제장소를 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특정물의 인도는 채권성립당시에 그 물건이 있던 장소에서 하여야 한다.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변제장소를 정하지 아니한 때에는'이라고 했는데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변제장소를 정하지 아니한 때에는'은 아무 문제가 없는 표현이지만 '채무의 성질 변제장소를 정하지 아니한 때에는'은 자연스러운 한국어 표현이 아니다. '채무의 성질로 변제장소를 정하지 아니한'이 아니라 '채무의 성질 때문에 변제장소를 정하지 아니한'이 자연스럽다. 따라서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라고 할 것이 아니라 '채무의 성질 때문에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처럼 '때문에'를 넣어줘야 한다. 사소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본다. 법조문은 완벽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467조(변제의 장소) ①채무의 성질 때문에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변제장소를 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특정물의 인도는 채권성립당시에 그 물건이 있던 장소에서 하여야 한다.


같은 표현이 제469조에도 반복되고 있으니 역시 바로잡아야 하겠다. 마지막으로 다음 조문에서도 '또는'이 쓰이고 있는데 문법적으로 불완전하기에 반듯하게 고칠 필요가 있다. 


제721조(청산인) ①조합이 해산한 때에는 청산은 총조합원 공동으로 또는 그들이 선임한 자가 그 사무를 집행한다.


제721조는 청산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데 '총조합원 공동으로 또는 그들이 선임한 자가 그 사무를 집행한다'라고 했다. '또는' 앞에는 '총조합원 공동으로'가 왔고 '또는' 뒤에는 '그들이 선임한 자가'가 왔다. 그런데 '총조합원 공동으로'에서 '총조합원'에 조사가 붙지 않았다. 만일 '공동으로'가 없다면 '총조합원 또는 그들이 선임한 자가'라고 해도 된다. 그러나 '공동으로'가 있는 이상 '총조합원 공동으로'라고 해야 문법적으로 완전해진다. '총조합원'에 조사 ''가 붙는 것과 붙지 않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조사가 붙지 않은 '총조합원 공동으로'는 이 말이 뒤에 오는 어떤 말과 호응하는지 금방 파악되지 않는다. 글자 한 자를 아낄 이유가 없다. 법조문은 한눈에 뜻이 명확하게 파악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제721조(청산인) ①조합이 해산한 때에는 청산은 총조합원 공동으로 또는 그들이 선임한 자가 그 사무를 집행한다.




민법에는 '또는'이 여러 번 나오는데 결정적으로 '또는'을 오용한 사례는 다음 제648조와 제1051조이다. 'A 또는 B'에서 A와 B는 문법적으로 대등한 지위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래 문장을 보면 그렇지 않다.


제648조(임차지의 부속물, 과실 등에 대한 법정질권) 토지임대인이 임대차에 관한 채권에 의하여 임차지에 부속 또는 그 사용의 편익에 공용한 임차인의 소유동산 및 그 토지의 과실을 압류한 때에는 질권과 동일한 효력이 있다.


A인 '임차지에 부속'과 B인 '그 사용의 편익에 공용한'은 문법적으로 대등한가? '그 사용의 편익에 공용한'은 동사구이지만 '임차지에 부속'은 동사구도 아니고 명사구도 아니다. 즉 '임차지에 부속'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그 사용의 편익에 공용한'이 동사구인 만큼 앞에도 동사구가 와야 마땅하고 '임차지에 부속시키거나'라고 해야 동사구가 된다. 그리고 '부속시키거나'의 어미 '-거나'가 이미 '또는'의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또는'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즉 다음과 같이 써야 한다.


제648조(임차지의 부속물, 과실 등에 대한 법정질권) 토지임대인이 임대차에 관한 채권에 의하여 임차지에 부속시키거나 (또는) 그 사용의 편익에 공용한 임차인의 소유동산 및 그 토지의 과실을 압류한 때에는 질권과 동일한 효력이 있다.


다음 제1051조도 마찬가지다. 


제1051조(변제의 거절과 배당변제) 

②전항의 기간만료후에 상속인은 상속재산으로써 재산분리의 청구 또는 그 기간내에 신고한 상속채권자, 유증받은 자와 상속인이 알고 있는 상속채권자, 유증받은 자에 대하여 각 채권액 또는 수증액의 비율로 변제하여야 한다. 그러나 우선권있는 채권자의 권리를 해하지 못한다.


'재산분리의 청구 또는 그 기간내에 신고한'에서 '재산분리의 청구'는 명사구이고 '그 기간내에 신고한'은 동사구이다. 명사구와 동사구를 '또는'으로 연결할 수는 없다. 문법을 어긴 것이다. 따라서 명사구인 '재산분리의 청구'를 동사구인 '재산분리를 청구하였거나'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이때 '청구하였거나'의 어미 '-거나'가 '또는'의 의미이기 때문에 '또는'은 없어도 된다.


제1051조(변제의 거절과 배당변제) 

②전항의 기간만료후에 상속인은 상속재산으로써 재산분리를 청구하였거나 (또는) 그 기간내에 신고한 상속채권자, 유증받은 자와 상속인이 알고 있는 상속채권자, 유증받은 자에 대하여 각 채권액 또는 수증액의 비율로 변제하여야 한다.




'A 또는B'에서 A와 B는 대등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를 어긴 예가 또 있다. 다음은 민법 제202조이다.


제202조(점유자의 회복자에 대한 책임) 점유물이 점유자의 책임있는 사유로 인하여 멸실 또는 훼손한 때에는 악의의 점유자는 그 손해의 전부를 배상하여야 하며 선의의 점유자는 이익이 현존하는 한도에서 배상하여야 한다. 소유의 의사가 없는 점유자는 선의인 경우에도 손해의 전부를 배상하여야 한다.


'점유물이 점유자의 책임있는 사유로 인하여 멸실 또는 훼손한 때에는'이라고 했는데 '점유물이 점유자의 책임있는 사유로 인하여 멸실하거나 훼손한 때에는'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점유물이 멸실한 때에는'은 아무 문제가 없지만 '점유물이 훼손한 때에는'은 말이 안 된다. '멸실하다'는 '물건이나 가옥 따위가 재난에 의하여 그 가치를 잃어버릴 정도로 심하게 파손되다'라는 뜻의 자동사인 데 반해 '훼손하다'는 '헐거나 깨뜨려 못 쓰게 만들다'라는 뜻으로 타동사이기 때문이다. 타동사는 목적어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목적어가 없는 '점유물이 훼손한 때에는'은 마치 '창문이 부순 때에는'이 말이 안 되는 것과 같다. '창문을 부순 때에는'이라야 문법적이고 '창문이 부순 때에는'은 비문법적이다. '멸실하다'와 '훼손하다'가 모두 타동사이거나 모두 자동사라면 '멸실 또는 훼손한 때에는'은 문제가 없다. '멸실하다'는 자동사이고 '훼손하다'는 타동사인데 '멸실 또는 훼손한 때에는'이라고 해서 문법을 어겼다. 따라서 바르게 고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아래에서 보듯 '또는'을 쓰는 대신 '멸실하거나 훼손 때에는'이라고 하면 문법적으로 반듯해진다. 여기서 '또는'은 넣어도 되지만 '-거나'로 충분하다.  '멸실 또는 훼손한 때에는'이라고 써놓고 '멸실하거나 훼손 때에는'이라고 해석해달라고 할 수는 없다.


제202조(점유자의 회복자에 대한 책임) 점유물이 점유자의 책임있는 사유로 인하여 멸실하거나 훼손 때에는 악의의 점유자는 그 손해의 전부를 배상하여야 하며 선의의 점유자는 이익이 현존하는 한도에서 배상하여야 한다.


비슷한 예가 또 있다. 민법 제250조를 보자.  


제250조(도품, 유실물에 대한 특례) 전조의 경우에 그 동산이 도품이나 유실물인 때에는 피해자 또는 유실자는 도난 또는 유실한 날로부터 2년내에 그 물건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도품이나 유실물이 금전인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도난 또는 유실한 날로부터'는 '도난한 또는 유실한 날로부터'가 줄어든 것이다. 즉 '도난한'의 ''은 뒤에 나오는 '유실'에 ''이 있으므로 생략하였을 것이다. 문제는 '도난한'이란 말이 없다는 것이다. '도난하다'라는 동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도난당하다'라는 말이 쓰일 뿐이다. 따라서 '도난 또는 유실한 날로부터'라고 할 수는 없다. '또는'이 쓰일 자리가 아니었다. 즉 아래에서 보는 것과 같이 '도난당하거나 유실한 날로부터'라고 해야 옳다. 물론 '또는'을 넣어 '도난당하거나 또는 유실한 날로부터'라고 할 수는 있다. '도난 또는 유실한 날로부터'라고 써놓고 '도난하거나 유실한 날로부터'라고 해석해달라는 것은 지나치다. 


제250조(도품, 유실물에 대한 특례) 전조의 경우에 그 동산이 도품이나 유실물인 때에는 피해자 또는 유실자는 도난당하거나 유실한 날로부터 2년내에 그 물건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을/를' 대신 '(으)로써'를 쓴 오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