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에는 조사가 있다. 조사는 체언 뒤에 붙는데 조사가 붙은 말과 다른 말의 관계를 보여주는 기능을 한다. 조사가 바르게 쓰여야 문장이 문법적으로 완전해지면서 문장의 뜻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조사가 잘못 사용되면 문장의 문법성이 어그러지면서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문장이 되고 만다. 그만큼 조사 사용은 중요하다. 우리 민법은 처음 만들 때 일본 민법을 거의 그대로 한국어로 옮기다 보니 일본어 어투를 직역하다시피한 게 사실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민법 개정이 있었으나 여전히 대부분의 조항은 제정 당시 그대로이고 조사 사용 역시 일본어식 용법이 그대로 남아 있다. 민법 제29조를 보자.
'실종자의 생존한 사실'이라고 했는데 이는 마치 동요 '고향의 봄'에 나오는 가사 '나의 살던 고향은'을 연상케 한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로 시작되는 이 동요는 한국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익숙한 노래다. 그래서 '나의 살던 고향은'에 대해 너무 익숙한 나머지 의문을 느끼는 사람이 별로 없겠지만 '고향이 봄'이라는 노래를 벗어나면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는 표현을 쓸 사람은 없다. '내가 살던 고향은'이라고 한다. '실종자의 생존한 사실'도 마찬가지다. 민법 조문 안에 '실종자의 생존한 사실'이 남아 있지만 일상 생활에서는 '실종자가 생존한 사실'이나 '실종자가 생존해 있다는 사실' 등과 같이 말한다. '실종자의 생존한 사실'은 오늘날의 언어습관과는 아주 동떨어진 낡은 투의 표현이요 일본어 잔재이다. 하루 빨리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실종자의 생존한 사실'은 아래에서처럼 '실종자가 생존한 사실'로 고쳐야 한다.
민법 제91조에 있는 '존속기간의 불확정한 채권 기타 가액의 불확정한 채권'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 '존속기간이 불확정한 채권, 기타 가액이 불확정한 채권' 또는 한걸음 나아가 '존속기간이 확정되지 않은 채권, 기타 가액이 확정되지 않은 채권'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같은 문제는 민법 제227조에서도 발견된다.
'이웃 토지소유자의 시설한 공작물을'이라고 했는데 아래에서처럼 '이웃 토지소유자가 시설한 공작물을'이라야 한다. '이웃 토지소유자의 시설한 공작물을'과 같은 일본어식 표현이 민법에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에 온 국민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건만 이 괴상한 어투의 표현은 60년째 요지부동으로 남아 있다. 언제 한국어다운 표현으로 바뀔까.
'~의 책임있는 사유로 인하여'는 민법에 여러 번 나오는 문구다. 법조계에서는 그동안 의례히 써왔고 그래서 익숙해졌기에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자연스러운 한국어 표현이 아니다.
'저당권설정자의 책임있는 사유'라고 했는데 '저당권설정자의 사유'는 말이 잘 안 된다. '영희의 사유', '철수의 사유' 등과 같은 '아무개의 사유'는 어색하다. 거기에 '책임있는'이 더 붙어 '저당권설정자의 책임있는 사유'가 된다고 해서 어색함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입법자의 의도는 분명히 '그 책임이 저당권설정자에게 있는 사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저당권설정자에게 책임이 있는 사유'라고 해야 자연스러운 한국어 표현이 된다. 그렇게 해야 일상적인 한국어와도 부합한다.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은 어떤 일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늘 따지기 때문이다. 요컨대 '저당권설정자의 책임있는 사유'는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저당권설정자에게 책임이 있는 사유'로 고쳐 쓸 때 뜻이 분명해지면서 한국어다운 표현이 된다. '저당권설정자의 책임있는 사유'는 어설프고 어색한 표현인데 법률 조문이 이를 고집해야 할 이유가 없다.
민법 제202조에서도 같은 문제가 있다. 제202조는 다음과 같다.
'점유자의 책임있는 사유'는 '점유자에게 책임이 있는 사유'로 고쳐 쓸 때 편하게 읽히고 뜻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그밖에도 다음과 같은 사례들이 있는데 모두 '~에게 책임이 없는', '~에게 책임이 있는'으로 바꿀 때 뜻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즉 '의'를 '에게'로 바꾸고 '책임'은 '책임이'로 바꾸어야 한다. (고친 후의 문장을 일일이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