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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Aug 11. 2019

주격조사 없이 쓰인 주어

정당한 이유있는 때에는?

국어 문장에서 조사를 바로 사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문장이 문법적이게 된다. 그런데 생략해서는 안 될 조사를 생략함으로써 문장이 문법에서 벗어나는 예가 민법에는 여럿 있다. 


제322조(경매, 간이변제충당) ①유치권자는 채권의 변제를 받기 위하여 유치물을 경매할 수 있다.

정당한 이유있는 때에는 유치권자는 감정인의 평가에 의하여 유치물로 직접 변제에 충당할 것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유치권자는 미리 채무자에게 통지하여야 한다.


민법 제322조제2항은 '정당한 이유있는 때에는'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정당한 이유있는'은 정상적인 한국어 표현이 아니다. 명사 '이유'에 붙어야 할 조사 ''가 없다. 누구나 ''가 생략된 줄을 알기는 하겠지만 굳이 자연스럽지 않은 표현을 쓸 이유가 없다. 조사를 생략하면 간결하고 압축적으로 보여서 조사를 생략한 걸까. 대체 까닭을 알 수 없다. 법률 조문의 문장은 편하게 읽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상적이지 않은, 튀는 표현을 쓰지 말아야 한다. 즉 다음과 같이 주격조사를 넣어야 한다. 


제322조(경매, 간이변제충당)

정당한 이유 있는 때에는 유치권자는 감정인의 평가에 의하여 유치물로 직접 변제에 충당할 것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유치권자는 미리 채무자에게 통지하여야 한다.


이렇게 민법에는 주격조사를 부당하게 생략한 사례가 꽤 있다. 다음과 같은 조문들이 그러하다.   


제661조(부득이한 사유와 해지권) 고용기간의 약정이 있는 경우에도 부득이한 사유있는 때에는 각 당사자는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유가 당사자 일방의 과실로 인하여 생긴 때에는 상대방에 대하여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제679조(현상광고의 철회) ①광고에 그 지정한 행위의 완료기간을 정한 때에는 그 기간만료전에 광고를 철회하지 못한다.

②광고에 행위의 완료기간을 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행위를 완료한  있기 전에는 그 광고와 동일한 방법으로 광고를 철회할 수 있다.

③전광고와 동일한 방법으로 철회할 수 없는 때에는 그와 유사한 방법으로 철회할 수 있다. 이 철회는 철회한 것을 안 자에 대하여만 그 효력이 있다.


제709조(업무집행자의 대리권추정) 조합의 업무를 집행하는 조합원은 그 업무집행의 대리권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제816조(혼인취소의 사유) 혼인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의 경우에는 법원에 그 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  

1. 혼인이 제807조 내지 제809조 또는 제810조의 규정에 위반한 때

2. 혼인당시 당사자 일방에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사유있음을 알지 못한 때

3.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때


즉, 위 제661조, 제679조, 제709조, 제816조의 '부득이한 사유있는 때에는', '그 행위를 완료한 자 있기 전에는', '대리권있는', '중대사유있음을'은 각각 '부득이한 사유 있는 때에는', '그 행위를 완료한 자 있기 전에는', '대리권 있는', '중대 사유 있음을'로 바꾸어야 한다. 그런데 다음 제758조 제3항은 특히 문제가 심각하다.


제758조(공작물등의 점유자, 소유자의 책임) ①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의 하자로 인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공작물점유자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점유자가 손해의 방지에 필요한 주의를 해태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소유자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②전항의 규정은 수목의 재식 또는 보존에 하자있는 경우에 준용한다.

③전2항의 경우에 점유자 또는 소유자는 그 손해의 원인에 대한 책임있는 자에 대하여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 손해의 원인에 대한 책임있는'이라고 했는데 '그 손해의 원인에 대한'이 꾸미는 말은 '책임'이지 '책임있는'이 아니다. '그 손해의 원인에 대한'이 '책임'을 꾸미는 이상 '책임'에 조사가 붙어야 한다. 즉 '그 손해의 원인에 대한 책임 있는'이라고 해야만 비로소 '그 손해의 원인이 되는'이 '책임'을 꾸밀 수 있다. '그 손해의 원인에 대한 책임있는'이라고 해서는 '그 손해의 원인이 되는'이 '책임'을 꾸밀 수 없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제758조(공작물등의 점유자, 소유자의 책임)

③전2항의 경우에 점유자 또는 소유자는 그 손해의 원인에 대한 책임 있는 자에 대하여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다음 제706조 제2항에서도 역시 주격조사가 부당하게 생략되었다.


제706조(사무집행의 방법) ①조합계약으로 업무집행자를 정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조합원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써 이를 선임한다.

②조합의 업무집행은 조합원의 과반수로써 결정한다. 업무집행자 수인인 때에는 그 과반수로써 결정한다.

③조합의 통상사무는 전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각 조합원 또는 각 업무집행자가 전행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무의 완료전에 다른 조합원 또는 다른 업무집행자의 이의가 있는 때에는 즉시 중지하여야 한다.


'업무집행자 수인인 때에는'에서 '업무집행자'는 아래에서처럼 주격조사 ''가 붙어야 마땅하다. '업무집행자 수인인 때에는'과 같은 비정상적인 표현이 법률 조문에 남아 있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법률 조문은 국어 문법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있지 않고는 이럴 수가 없다. 법률 조문이야말로 가장 문법을 잘 지켜야 한다. 


제706조(사무집행의 방법)

②조합의 업무집행은 조합원의 과반수로써 결정한다. 업무집행자 수인인 때에는 그 과반수로써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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