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중 Aug 17. 2019

동사와 어울리는 보어를 써야

동사는 "비가 온다."라고 할 때의 '온다'처럼 주어 외에 아무런 다른 말이 없이 쓰이는 경우도 있지만 "그는 동생과 닮았다."라고 할 때의 '닮다'처럼 '동생과'라는 말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이때의 '동생과'를 동사의 보어라 한다. 보어는 종류가 다양하다. 그리고 동사마다 제각기 필요한 보어가 다르다. 예를 들어 '거기에 가라고 지시했다'와 '거기에 간 것을 후회했다'는 말이 되지만 그 반대인 '거기에 간 것을 지시했다'와 '거기에 가라고 후회했다'는 말이 안 되는 데서 이를 알 수 있다. '지시하다'와 '후회하다'는 의미가 아주 다른데 동사를 쓸 때는 각 동사의 의미에 맞는 보어를 사용해야 한다. 동사에 맞지 않는 보어를 사용하면 비문이 된다. 민법 제397조와 제437조를 보자.


제397조(금전채무불이행에 대한 특칙) ①금전채무불이행의 손해배상액은 법정이율에 의한다. 그러나 법령의 제한에 위반하지 아니한 약정이율이 있으면 그 이율에 의한다.

②전항의 손해배상에 관하여는 채권자는 손해의 증명을 요하지 아니하고 채무자는 과실없음을 항변하지 못한다.


'과실없음을 항변하지 못한다'라고 했다. 여기에 동사 '항변하다'가 쓰였는데 '항변하다'는 국어사전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항변하다「동사」【…에/에게 -

「1」 대항하여 변론하다.  

그는 자신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동료의 주장에 대해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고 강하게 항변했다.

동무 아이들한테 이런 말을 들을 때 윤섭이는 치가 떨리게 분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들에게 항변할 말이 없었다.≪이기영, 신개지≫

그런 말에 청년은 얼굴을 붉히면서 무엇이라고 항변하려고 하는 것이었지만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 것 같았다.≪장용학, 위사가 보이는 풍경≫

「2」 『법률』 민사 소송법에서, 상대편의 주장이나 신청을 배제하기 위하여 대립하는 별개의 사항을 주장하다.


여기서 '…에/에게 -'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에/에게'는 생략될 수 있고 중요한 것은 '-고'이다. '-고'가 붙는 보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위 사전의 「1」용례에서도 '거짓말이라 강하게 항변했다', '무엇이라 항변하려고'와 같이 쓰였다. 그런데 민법 제397조는 '과실없다고 항변하지'가 아니라 '과실없음을 항변하지'라고 썼다. '과실없 항변하지'라고 해야 '항변하다'를 바르게 쓰는 것이다. '채무자는 과실없음을 항변하지 못한다'는 비문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바로잡아야 한다.


제397조(금전채무불이행에 대한 특칙) 

②전항의 손해배상에 관하여는 채권자는 손해의 증명을 요하지 아니하고 채무자는 과실없다고 항변하지 못한다.


민법 제437조도 마찬가지다. 


제437조(보증인의 최고, 검색의 항변) 채권자가 보증인에게 채무의 이행을 청구한 때에는 보증인은 주채무자의 변제자력이 있는 사실 및 그 집행이 용이할 것을 증명하여 먼저 주채무자에게 청구할 것과 그 재산에 대하여 집행할 것을 항변 수 있다. 그러나 보증인이 주채무자와 연대하여 채무를 부담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그 재산에 대하여 집행할 것을 항변'이라고 했는데 '그 재산에 대하여 집행하라고 항변할'이라고 해야 문법에 맞다. 법률 조문이라고 해서 동사의 일반적 용법과 달리 써야 할 아무런 까닭이 없다. 법률 조문도 한국어이고 한국어 문법에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고쳐야 한다.


제437조(보증인의 최고, 검색의 항변) 채권자가 보증인에게 채무의 이행을 청구한 때에는 보증인은 주채무자에게 변제자력이 있는 사실 및 그 집행이 용이할 것임을 증명하여 먼저 주채무자에게 청구하고 그 재산에 대하여 집행하라고 항변 수 있다. 




'거절하다'는 목적어가 필요한 동사이다. '요구를 거절하다', '청탁을 거절하다' 등에서 이를 알 수 있다. 목적어는 '요구', '청탁'과 같은 명사일 수도 있지만 '사례금을 받기를 거절했다'의 '사례금을 받기를'과 같은 동사구일 수도 있다. 그런데 '사례금을 받기를' 대신에 '사례금을 받을 것을'이라고 쓰면 어떨까. 그러나 '사례금을 받기를 거절했다'는 자연스럽지만 '사례금을 받을 것을 거절했다'는 몹시 어색하다. 이렇게 어색한 표현을 쓸 이유가 없다. 그런데 민법 제540조를 보자.


제540조(채무자의 제삼자에 대한 최고권) 전조의 경우에 채무자는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계약의 이익의 향수여부의 확답을 제삼자에게 최고할 수 있다. 채무자가 그 기간내에 확답을 받지 못한 때에는 제삼자가 계약의 이익을 받을 것을 거절 것으로 본다.


'계약의 이익을 받을 것을 거절한'이라고 했다. '사례금을 받을 것을 거절했다'가 어색한 것처럼 '계약의 이익을 받을 것을 거절한'도 똑같이 어색하다. '계약의 이익을 받기를 거절한'이라고 하면 간명해지면서 뜻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제540조(채무자의 제삼자에 대한 최고권) 채무자가 그 기간내에 확답을 받지 못한 때에는 제삼자가 계약의 이익을 받기를 거절 것으로 본다.


이제 '정하다'라는 말을 살펴보자. '정하다'는 국어사전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정-하다 「동사」

11 【…을 …으로】【 -기로

여럿 가운데 선택하거나 판단하여 결정하다.  

식단을 서양식으로 정하다.

도읍을 서울로 정하다.

친구의 딸을 며느릿감으로 정하다.

약속 장소를 그곳으로 정했다.

그 대학에 원서를 넣기로 정했다.

22 【…을】

「1」 규칙이나 법 따위의 적용 범위를 결정하다.  

우리는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기 위해 함께 의논하여 세 가지 규칙을 정했다.

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 융통성을 가진다.

「2」 뜻을 세워 굳히다.  

그는 다시는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정하다'는 목적어 '~'과 함께 쓰이는 것이 보통이지만 '~기로 정하다'로도 쓰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에서 '그 대학에 원서를 넣기로 정했다'가 해당하는 용례다. 그런데 민법 제716조는 '~기로 정하다'로 써야 할 상황에서 '~을 정하다'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거기에 ''을 썼다. 즉 '~을 것을 정하다'로 쓴 것이다.


제716조(임의탈퇴) ①조합계약으로 조합의 존속기간을 정하지 아니하거나 조합원의 종신까지 존속할 것을 정한 때에는 각 조합원은 언제든지 탈퇴할 수 있다. 그러나 부득이한 사유없이 조합의 불리한 시기에 탈퇴하지 못한다.


'조합원의 종신까지 존속할 것을 정한'이라고 했는데 '조합원의 종신까지 존속하기로 정한'이라고 하면 알기 쉽다. 그렇게 써야 위 문맥에 맞다. '그 대학에 원서를 넣을 것을 정했다'가 얼마나 어색한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어색한 구문을 씀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법조문이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다음과 같이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제716조(임의탈퇴) ①조합계약으로 조합의 존속기간을 정하지 아니하거나 조합원의 종신까지 존속하기로 정한 때에는 각 조합원은 언제든지 탈퇴할 수 있다. 


다음 예에서는 ''을 사용한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표시하다'의 목적어가 바르게 쓰였느냐가 문제다. 


제88조(채권신고의 공고) ①청산인은 취임한 날로부터 2월내에 3회 이상의 공고로 채권자에 대하여 일정한 기간내에 그 채권을 신고할 것을 최고하여야 한다. 그 기간은 2월 이상이어야 한다.

②전항의 공고에는 채권자가 기간내에 신고하지 아니하면 청산으로부터 제외될 것을 표시하여야 한다.


'청산으로부터 제외될 것을 표시하여야'라고 했는데 불완전한 구문이다. '청산으로부터 제외될 것을 표시하여야'라고 해야 문법에 맞다. 물론 ''을 쓰지 않고 '청산으로부터 제외됨을 표시하여야'라고 해도 된다. 또 '청산으로부터 제외된다고 표시하여야'라고 하는 것도 가능하다. 문법에 맞는 표현들이 있는데도 굳이 어색한 표현을 쓸 필요가 없다. 


제88조(채권신고의 공고) 

②전항의 공고에는 채권자가 기간내에 신고하지 아니하면 청산으로부터 제외될 것을 표시하여야 한다.


②전항의 공고에는 채권자가 기간내에 신고하지 아니하면 청산으로부터 제외됨을 표시하여야 한다.


②전항의 공고에는 채권자가 기간내에 신고하지 아니하면 청산으로부터 제외된다고 표시하여야 한다.




앞에서 '~고 항변하다'로 써야 할 '항변하다'를 '~을 항변하다'로, '~기로 정하다'로 써야 할 '정하다'를 '~을 정하다'로 잘못 쓰고 있는 예를 보았다. 정해진 용법대로 동사를 쓰지 않으면 문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문장을 읽어도 금세 뜻이 파악되지 않는다. 대충 뜻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법률 조문은 뜻이 명료하게 드러나야 하는데 문법에 어긋남으로써 뜻이 모호해지는 것이다. 다음 민법 제138조도 비슷하다.


제138조(무효행위의 전환) 무효인 법률행위가 다른 법률행위의 요건을 구비하고 당사자가 그 무효를 알았더라면 다른 법률행위를 하는 것을 의욕하였으리라고 인정될 때에는 다른 법률행위로서 효력을 가진다.


'다른 법률행위를 하는 것을 의욕하였으리라고 인정될 때에는'이라고 했는데 무슨 뜻인지 금세 파악되지 않는다. 여러 번 읽어야 어렴풋이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 떠오를 뿐이다. '의욕하다'는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은 동사다. 물론 국어사전에 없다고 해서 쓰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어사전도 때로 엄연히 사용되는 말을 등재하지 않는 잘못을 범한다. 마땅히 바로잡아야 함은 물론이다. '의욕하다'라는 말은 국어 말뭉치에서 발견할 수 있다. 국립국어원이 모은 말뭉치에 '의욕하다'가 꽤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사용된 예는 모두 '미래를 의욕하다', '변화를 의욕하다', '효과를 의욕하다' 등처럼 목적어로서 '명사'를 쓰고 있다. 민법 제138조처럼 '~하는 것을 의욕하다'로 쓴 예는 보이지 않는다. 요컨대 '~하는 것을 의욕하다'는 매우 낯설고 생소한 표현이다. 이해 가능하고 뜻이 분명히 드러나는 표현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즉 '~하는 것을 의욕하다'를 쓸 것이 아니라 '~려고 하다'를 쓰는 게 낫다. 그래서 '다른 법률행위를 하는 것을 의욕하였으리라고 인정될 때에는'을 아래와 같이 '다른 법률행위를 하려고 하였을 것이라고 인정될 때에는'이라고 바꿀 때 쉽게 뜻이 이해된다. 


제138조(무효행위의 전환) 무효인 법률행위가 다른 법률행위의 요건을 구비하고 당사자가 그 무효를 알았더라면 다른 법률행위를 하려고 하였을 것이라고 인정될 때에는 다른 법률행위로서 효력을 가진다.


이번에는 '단축하다'에 대해서 살펴보자. 민법에는 '단축하다'를 쓴 예가 모두 7번 나오는데 다음에 나오는 '단축하다'는 바르게 사용한 예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제280조(존속기간을 약정한 지상권) ①계약으로 지상권의 존속기간을 정하는 경우에는 그 기간은 다음 연한보다 단축하지 못한다.

1. 석조, 석회조, 연와조 또는 이와 유사한 견고한 건물이나 수목의 소유를 목적으로 하는 때에는 30년

2. 전호이외의 건물의 소유를 목적으로 하는 때에는 15년

3. 건물이외의 공작물의 소유를 목적으로 하는 때에는 5년

전항의 기간보다 단축한 기간을 정한 때에는 전항의 기간까지 연장한다.


제284조(갱신과 존속기간) 당사자가 계약을 갱신하는 경우에는 지상권의 존속기간은 갱신한 날로부터 제280조의 최단존속기간보다 단축하지 못한다. 그러나 당사자는 이보다 장기의 기간을 정할 수 있다.


'다음 연한보다 단축하지', '전항의 기간보다 단축한', '제280조의 최단존속기간보다 단축하지'라고 하였는데 아래에서 보듯이 '단축하다'는 '~을 단축하다'로 쓰이는 동사이지 '~보다 단축하다'로 쓰는 용법은 없다. 


단축-하다(短縮하다) 「동사」【…

시간이나 거리 따위를 짧게 줄이다.  

유통 경로를 단축하다.

학생들에게 수업 시간을 10분만 단축하도록 양해를 얻었다.≪신상웅, 심야의 정담≫


혹시 말뭉치에는 '~보다 단축하다'로 쓴 용례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없지는 않았다. '단축하다'가 사용된 용례가 모두 100여 개 있었는데 그 중에서 '~보다 단축하다'로 쓴 예는 단 한 개 발견되었다. 그 예는 다음과 같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이날 탄핵재판 절차에 대해 서로 다른 제안을 했다. 공화당쪽은 탄핵재판을 오는 14일 재개해 2월5일 또는 12일까지 계속할 것을 제안하고 증인들의 출석증언도 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민주당쪽은 탄핵재판 일정을 공화당 안보다 단축하자는 입장이며, 증인들의 출석증언에도 부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딱 하나 발견된 용례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한 번이라도 사용되었으니 이런 용법을 인정할 것이냐 한 번만 나타난 정도라면 바른 용법이 아니라고 볼 것이냐. 글쓴이는 후자의 입장에 동조한다. 법률 조문에서는 보편적인 용법에 따라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보다 단축하다' 대신에 '~보다 짧게 하다'라고 하는 것이 낫다. 따라서 위 민법의 제280조 제1항과 제2항, 그리고 제284조의 '단축하지'는 '짧게 하지'로, '단축한'은 '짧은'으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280조(존속기간을 약정한 지상권) ①계약으로 지상권의 존속기간을 정하는 경우에는 그 기간은 다음 연한보다 짧게 하지 못한다.

전항의 기간보다 짧은 기간을 정한 때에는 전항의 기간까지 연장한다.


제284조(갱신과 존속기간) 당사자가 계약을 갱신하는 경우에는 지상권의 존속기간은 갱신한 날로부터 제280조의 최단존속기간보다 짧게 하 못한다.

작가의 이전글 '(으)로' 대신 '에'를 쓴 오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