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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Sep 06. 2019

'대하여', '위하여' 남용

문법에 정면으로 어긋나 말이 안 되는 문장, 단어를 잘못 선택해 앞뒤가 모순이 되는 문장 등은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이에 반해 아래에 지적하는 예들은 문법을 정면으로 어긴 것이 아니어서 그냥 넘어가도 그만이다. 그러나 이왕이면 좀 더 자연스러운 표현을 쓰는 것이 바람직한데 그렇지 못한 표현을 써서 아쉬움이 남는 경우이다. 민법 제26조를 보자.


제26조(관리인의 담보제공, 보수) ②법원은 그 선임한 재산관리인에 대하여 부재자의 재산으로 상당한 보수를 지급할 수 있다.


'법원은 그 선임한 재산관리인에 대하여 부재자의 재산으로 상당한 보수를 지급할 수 있다'고 했는데 간추리면 '재산관리인에 대하여 보수를 지급할 수 있다'고 한 셈이다. '재산관리인에 대하여 보수를 지급할 수 있다'는 '재산관리인에게 보수를 지급할 수 있다'와 아무런 의미 차이가 없다. 의미가 똑같다. 의미가 같다면 좀 더 자연스러운 표현을 쓰는 것이 좋다. '재산관리인에게 보수를 지급할 수 있다'가 자연스럽지 '재산관리인에 대하여 보수를 지급할 수 있다'가 자연스럽지 않다. '재산관리인에 대하여 보수를 지급할 수 있다'는 '재산관리인에 대하여 그에게 보수를 지급할 수 있다'에서 '그에게'가 생략된 형태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복잡하게 표현할 이유가 없다. 간명하게 '재산관리인에게 보수를 지급할 수 있다'고 하면 된다. '지급하다'라는 동사는 '~에게'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말이다. 이렇게 '~에게'를 필요로 하는 동사로는 '지급하다' 외에 '청구하다', '변제하다' 등도 있다. 민법 제686조를 보자.


제686조(수임인의 보수청구권) ①수임인은 특별한 약정이 없으면 위임인에 대하여 보수를 청구하지 못한다.


'위임인에 대하여 보수를 청구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여기서도 '~에 대하여'가 사용되었다. '청구하다'는 '~에게 청구하다'로 쓰이는 말이다. 물론 '위임인에 대하여 보수를 청구하지'라고 해도 '위임인에게 보수를 청구하지'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위임인에 대하여 보수를 청구하지'나 '위임인에게 보수를 청구하지'나 뜻이 같다면 이왕이면 더 간명하게 '위임인에게 보수를 청구하지'라고 하는 것이 낫다. '~에 대하여'가 불필요한 곳에서까지 남용되고 있는 사례이다. 다음 제1034조와 제1036조를 보면 '~에 대하여'와 '~에게'가 같은 동사 '변제하다'에 대하여 뒤섞여 쓰이고 있다.


제1034조(배당변제) ①한정승인자는 제1032조제1항의 기간만료후에 상속재산으로서 그 기간 내에 신고한 채권자와 한정승인자가 알고 있는 채권자에 대하여 각 채권액의 비율로 변제하여야 한다. 그러나 우선권있는 채권자의 권리를 해하지 못한다.

② 제1019조제3항의 규정에 의하여 한정승인을 한 경우에는 그 상속인은 상속재산 중에서 남아있는 상속재산과 함께 이미 처분한 재산의 가액을 합하여 제1항의 변제를 하여야 한다. 다만, 한정승인을 하기 전에 상속채권자나 유증받은 자에 대하여 변제한 가액은 이미 처분한 재산의 가액에서 제외한다. <신설 2005. 3. 31.>


제1036조(수증자에의 변제) 한정승인자는 전2조의 규정에 의하여 상속채권자에 대한 변제를 완료한 후가 아니면 유증받은 자게 변제하지 못한다.


제1034조 제1항에서는 '채권자에 대하여 ... 변제하여야', 제2항에서는 '유증받은 자에 대하여 변제한'이라고 했다. 그런데 제1036조에서는 '유증받은 자에게 변제하지'라고 하였다. 같은 '변제하다'에 대하여 제1034조에서는 '~에 대하여 변제하여야', '~에 대하여 변제한'이라고 하고 제1036조에서는 '~에게 변제하지'라고 한 것이다. 이는 '~에 대하여 변제하다'와 함께 '~에게 변제하다'가 바른 용법임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두 가지 표현을 섞어 쓸 일이 아니다. 더 자연스럽고 알기 쉬운 표현으로 통일해야 마땅하다. '~에 대하여'는 민법에서 과도하게 사용되고 있다. 자연스럽지 않은 '~에 대하여'는 '~에게'로 고치는 것이 낫다.




'~에 대하여 ~을 지급하다', '~에 대하여 ~을 청구하다', '~에 대하여 ~을 변제하다' 등은 '~에게 ~을 지급하다', '~에게 ~을 청구하다', '~에게 ~을 변제하다'로 바꾸어야 국어다운 표현이 된다. 자연스럽다. '~에 대하여'는 필요한 데 써야지 필요하지 않은 데까지 남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민법에는 '대하여'뿐 아니라 '위하여'를 남용한 예도 있다. 민법 제296조를 보자.


제296조(소멸시효의 중단, 정지와 불가분성) 요역지가 수인의 공유인 경우에 그 1인에 의한 지역권소멸시효의 중단 또는 정지는 다른 공유자를 위하여 효력이 있다.


'요역지가 수인의 공유인 경우에 그 1인에 의한 지역권소멸시효의 중단 또는 정지는 다른 공유자를 위하여 효력이 있다.'라고 했다. 한 공유자에 의한 지역권소멸시효의 중단 또는 정지가 다른 공유자에게도 효력이 있다는 뜻이다. 다른 공유자에게도 효력이 있다고 표현하면 될 것을 다른 공유자를 위하여 효력이 있다고 했다. 처음 읽는 사람은 무슨 뜻인지 의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위하여'가 불필요함에도 쓰인 경우다. '다른 공유자를 위하여 효력이 있다'가 아니라 '다른 공유자에게 효력이 있다'라고 하면 표현이 간명하다. 이해하기 쉽다. 


제296조(소멸시효의 중단, 정지와 불가분성) 요역지가 수인의 공유인 경우에 그 1인에 의한 지역권소멸시효의 중단 또는 정지는 다른 공유자에게 효력이 있다.


'위하여'가 불필요함에도 쓰인 예는 또 있다. 민법 제419조를 보자.


제419조(면제의 절대적 효력) 어느 연대채무자에 대한 채무면제는 그 채무자의 부담부분에 한하여 다른 연대채무자의 이익을 위하여 효력이 있다.  


이 조문 역시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어도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렵다. 뜻을 알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그 채무자의 부담부분에 한하여 다른 연대채무자의 이익을 위하여 효력이 있다' 때문이다. 여기에 '연대채무자의 이익을 위하여 효력이 있다'라는 구절이 들어 있다. '연대채무자에게 효력이 있다'고 하면 될 것을 '연대채무자의 이익을 위하여 효력이 있다'고 하여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갑과 을이 연대채무자로서 병에게 100만원의 채무를 지고 있다. 이런 경우 갑이 100만원을 다 갚아도 되고 을이 100만원을 다 갚아도 된다. 갑과 을이 50만원씩 갚아도 된다. 그런데 채권자인 병이 연대채무자의 1인인 갑에게 채무면제를 해주었다. 그럼 다른 연대채무자인 을은 병에게 얼마만큼의 채무가 있나? 병이 갑에게 채무면제를 해 주었으므로 을은 병에게 갑의 부담 부분인 50만원을 제한 나머지 50만원만 갚아도 된다. 이것이 제419조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채무자의 부담부분에 한하여 다른 연대채무자에게 효력이 있다.'라고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게 간명하다. 


제419조(면제의 절대적 효력) 어느 연대채무자에 대한 채무면제는 그 채무자의 부담부분에 한하여 다른 연대채무자에게 효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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