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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Sep 09. 2019

문법에 맞는 구성이라야

민법 조문 중에는 정문인지 비문인지 아리송한 문장이 간혹 발견된다. '외(外)'라는 말을 쓴 조문들이 그러하다. 제185조를 보자.


제185조(물권의 종류) 물권은 법률 또는 관습법에 의하는 외에는 임의로 창설하지 못한다.


"물권은 법률 또는 관습법에 의하는 외에는 임의로 창설하지 못한다."라고 했는데 뜻을 이해하는 데는 별로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 조항이 무슨 뜻인지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권은 오로지 법률 또는 관습법에 있는 것만 인정된다는 뜻이다. 문제는 문장이 문법에 맞느냐이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해 보인다. 맞는 것 같아 보이는 것은 제185조 말고도 제271조, 제275조, 제302조, 제354조, 제705조 등에서 '~하는 외에는'이 반복적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민법 조문뿐 아니라 말뭉치 검색을 해보면 '~하는 외에는'이라고 한 사례가 더러 나타난다. 즉 '~하는 외에는'이 여기저기서 쓰이고 있음은 이 표현이 문법적인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한편으로 '~하는 외에는'은 문법적으로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문법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비문이라는 뜻이다. 국어사전에 '외(外)'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외(外) [Ⅱ] 「의존 명사」

일정한 범위나 한계를 벗어남을 나타내는 말.  

그 외에 다른 것은 필요 없다.

필기도구 외에는 모두 책상 위에서 치우시오.

병실에 가족 외의 사람은 출입을 제한합니다.


'필기도구 외', '가족 외' 등의 용례를 볼 때 '' 앞에는 일정한 범위나 한계를 가리키는 말이 옴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법률 또는 관습법에 의하는 외'에서는 일정한 범위나 한계를 가리키는 말이 없다. 빠져 있다. '필기도구 외', '가족 외'와 같은 방식으로 ''를 사용하려면 '법률 또는 관습법에 의하는 경우 외', '법률 또는 관습법에 의하는  외'처럼 써야 하지만 '경우'나 '' 같은 말이 빠져 있는 것이다. 이렇게 ''라는 말을 사용해도 좋은지 의문스럽다. 문법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변할 수도 있는 것이므로 '법률 또는 관습법에 의하는 외에는'을 문법에 맞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즉 ''가 관형절의 수식을 받을 수 있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가 관형절의 수식을 받을수 있느냐는 곰곰이 따져보아야 할 문제라 생각된다. 사람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겠지만 '법률 또는 관습법에 의하는 외에는'은 어딘가 불완전해 보인다. 정상적인 표현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바꾸어 표현하는 것이 낫다고 여겨진다.


제185조(물권의 종류) 물권은 법률 또는 관습법에 의하는  외에는 임의로 창설하지 못한다.


제185조뿐이 아니다. 민법에 '~하는 외'를 쓴 조문은 다음과 같이 더 있는데 모두 '

~하는 외에' 대신 '~하는  외에'라고 할 때 더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표현이 된다고 생각한다. 즉, '' 앞에 ''이나 '경우' 같은 말을 보충해주어야 할 것이다.


제271조(물건의 합유) 

②합유에 관하여는 전항의 규정 또는 계약에 의하는 외에 다음 3조의 규정에 의한다.


제275조(물건의 총유)

②총유에 관하여는 사단의 정관 기타 계약에 의하는 외에 다음 2조의 규정에 의한다.


제302조(특수지역권) 어느 지역의 주민이 집합체의 관계로 각자가 타인의 토지에서 초목, 야생물 및 토사의 채취, 방목 기타의 수익을 하는 권리가 있는 경우에는 관습에 의하는 외 본장의 규정을 준용한다.


제354조(동전) 질권자는 전조의 규정에 의하는 외 민사집행법에 정한 집행방법에 의하여 질권을 실행할 수 있다.


제705조(금전출자지체의 책임) 금전을 출자의 목적으로 한 조합원이 출자시기를 지체한 때에는 연체이자를 지급하는 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민법에는 무슨 뜻인지 알 것 같기는 하지만 표현이 매끄럽지 못한 예가 또 있다. 제695조는 다음과 같다.


제695조(무상수치인의 주의의무) 보수없이 임치를 받은 자는 임치물을 자기재산과 동일한 주의로 보관하여야 한다.


"보수없이 임치를 받은 자는 임치물을 자기재산과 동일한 주의로 보관하여야 한다."라고 했다. '자기재산과 동일한 주의로'가 문제다. 입법의 취지는 임치를 받은 자는 임치물을 자기 재산을 보관할 때와 똑같은 주의를 기울여 보관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쉽게 말해 임치물을 마치 자기 재산인 것처럼 주의를 기울여 보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695조에 '자기재산과 동일한 주의로'라고 했으니 '자기재산'이 곧 '주의'인 것처럼 되었다. 재산은 재산이지 주의일 수 없다. 말을 줄여서 짧게 하다 보니 이상한 표현이 되고 말았다. 짧게 하더라도 말은 되게 해야 한다. '자기재산과 동일한 주의로'는 말이 안 된다. '자기 재산을 대할 때와 동일한 주의로'가 알기 쉽고 일반적인 표현이다. 제 1048조도 마찬가지다.


제1048조(분리후의 상속인의 관리의무) ①상속인이 단순승인을 한 후에도 재산분리의 명령이 있는 때에는 상속재산에 대하여 자기의 고유재산과 동일한 주의로 관리하여야 한다.


제695조와 제1048조는 각각 다음과 같이 고칠 때 자연스러운 표현이 된다.


제695조(무상수치인의 주의의무) 보수없이 임치를 받은 자는 임치물을 자기재산을 대할 때와 동일한 주의로 보관하여야 한다.


제1048조(분리후의 상속인의 관리의무) ①상속인이 단순승인을 한 후에도 재산분리의 명령이 있는 때에는 상속재산에 대하여 자기의 고유재산을 대할 때와 동일한 주의로 관리하여야 한다.


다음 제922조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제922조(친권자의 주의의무) 친권자가 그 자에 대한 법률행위의 대리권 또는 재산관리권을 행사함에는 자기의 재산에 관한 행위와 동일한 주의를 하여야 한다.


'자기의 재산에 관한 행위와 동일한 주의를'이라고 하였는데 '행위'가 '주의'인 것처럼 표현이 돼 있다. 그러나 행위가 주의일 수는 없다. 따라서 '자기의 재산에 관한 행위와 동일한 주의'는 바른 표현이 아니다. 아래에서처럼 '자기의 재산에 관한 행위를 할 때와 동일한 주의를'이라고 할 때 어색함은 사라진다.


제922조(친권자의 주의의무) 친권자가 그 자에 대한 법률행위의 대리권 또는 재산관리권을 행사함에는 자기의 재산에 관한 행위를 할 때와 동일한 주의를 하여야 한다.


그런데 민법에는 '동일한 주의'를 제대로 쓴 예도 있다. 제1022조가 그러하다.


제1022조(상속재산의 관리) 상속인은 그 고유재산에 대하는 것과 동일한 주의로 상속재산을 관리하여야 한다. 그러나 단순승인 또는 포기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그 고유재산에 대하는 과 동일한 주의로'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은 '주의'를 대신한 것이고 '그 고유재산에 대하는 주의와 동일한 주의로'라는 뜻이니 문제가 없다. 다만 '고유재산 대하는'은 '고유재산 대하는'이라고 해야 한다. 물론 위의 제695조, 제1048조, 제922조에서와 마찬가지로 '그 고유재산을 대할 때와 동일한 주의로'라고 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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