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에 오류가 있어서는 안 됨은 상식이다. 더구나 그것이 오타라면 더더욱 용인될 수 없다. 그런데 민법에서는 명백한 오류임에도 수십 년 동안 요지부동으로 남아 있는 것이 있다. 민법 제1034조 제1항은 다음과 같다.
제1034조는 상속 중에서 한정승인에 관한 내용이다. 한정승인은 법률 전문용어이므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는 접어두기로 하자. 위 조항의 핵심 뼈대는 다음과 같이 추릴 수 있다. "한정승인자는 상속재산으로서 변제하여야 한다." 즉 '상속재산으로서'는 '변제하여야'를 꾸미고 한정한다. 그런데 조사 '-으로서'는 지위, 신분, 자격을 가리키는 말이다. '나는 회장으로서 그 회의에 참석했다.'와 같은 문장이 조사 '-으로서'의 쓰임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위 제1034조 제1항에서 '변제하여야'는 지위, 신분, 자격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수단이나 도구를 나타내는 말을 필요로 한다. 한정승인자가 무엇을 가지고 변제하는지가 드러나야 한다. 그리고 수단이나 도구를 나타내는 조사는 '-으로서'가 아니고 '-으로써'이다. 예컨대 '죽음으로써 적에 항거했다'고 하지 '죽음으로서 적에 항거했다'고 하지 않는다. '총칼로써 합법적인 시위를 진압했다'라고 하지 '총칼로서 합법적인 시위를 진압했다'고 하지 않는다. '상속재산으로서 변제하여야'도 마찬가지다. '상속재산으로써 변제하여야'라고 해야 옳다. '써'를 빼고 '-으로'만 써서 '상속재산으로 변제하여야'라고는 할 수 있어도 '상속재산으로서 변제하여야'는 틀린 말이다. 법조문은 오류 없이 완벽해도 뜻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법인데 아예 틀린 표현이 들어 있으면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오류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법은 어차피 법조인들만 볼 뿐이니 틀려도 상관 없다는 건가. 이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