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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Oct 23. 2019

말에 대한 관심

절전개소?

우리는 대체로 고유한 말과 글을 가진 데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한국말과 한글을 쓰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한국의 국력이 부쩍 커짐에 따라 한국어를 배우려는 열기가 세계 곳곳에서 뜨겁다.

이젠 텔레비전에서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외국인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렇게 한국어는 세계화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가 우리말을 어떻게 대접하는지,

과연 우리말을 이렇게 써도 되는지 의아하게 느껴지는 때가 간혹 있다.


서울지하철 9호선 동작역에서 내려서 4호선으로 갈아타러 가다 보면

참으로 기나긴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그 앞에 이렇게 써붙여져 있다.



'절전개소'?


두 줄의 에스컬레이터 중에 하나만 운행하면서 

운행하지 않는 에스컬레이터 앞에 '절전개소'라 적어 놓은 것이다.


'절전'하기 위해 하나만 운행하는 모양인데 

'개소'가 무슨 뜻인지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


'개소'는 세 단어가 있었다.

개소(個所)는 여러 곳 가운데 한 곳,

개소(開所)는 기관을 세워 처음으로 일을 시작함,

개소(開素)는 육식을 시작함이란 뜻이다.


'절전개소'의 '개소'는 이 셋 중 무엇이란 말인가.

기관을 세워 일을 시작한다는 뜻 같진 않고, 육식을 시작함은 더더욱 무관하다.


그렇다면 '여러 곳 가운데 한 곳'이란 뜻밖엔 없는데 

절전하는 여러 곳 가운데 한 곳이란 뜻인가?

그렇게도 표현하나?


'절전을 위해 운행하지 않습니다' 하면 되지 않나.

그게 길다면 그냥 '운행 않음'이나 '절전'이라고만 하면 되지 않나.

설령 아무것도 안 써 놓은들 막혀 있는데 누가 타려고 하겠나.


9호선과 4호선이 만나는 동작역을 이용하는 이용자들은 출퇴근 때 엄청나다.

나만 '절전개소'의 뜻을 모르는 것인지 그 많은 이용자들이 다 모르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주변에 물어보니 그 뜻을 안다는 사람이 없는 걸 보면

다른 사람들도 대체로 '절전개소'의 '개소'가 뭔지 모르는 것 같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안내문을 붙여 놓은 사람은 

'절전개소'를 어떤 뜻으로 생각하고 써붙여 놓았을까.


써붙여 놓는 사람이나 뜻 모를 안내문을 보고도 문제를 제기 않는 대중이나

다 우리말에 대해 무관심한 건 아닐까.

말과 글이 자랑스럽다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다중을 위한 안내문이라면 특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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