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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Nov 16. 2019

지하철에서

과유불급, 중용 ...

지하철은 편리하고 쾌적하다.

약속시간을 어김없이 지키게 해준다.


'지옥철'이니 '푸시맨'이니 하는 말도 요즘은 듣기 힘들어졌다.

출퇴근 때는 여전히 복잡하지만 정도가 전에 비하면 한결 덜하다.

복잡하면 타길 포기하고 다음 차를 기다리는 승객들의 성숙한 모습이 이젠 익숙하다.


지하철 승무원의 서비스 정신도 예전과는 달라 보인다.

동작역을 출발해 이촌역을 향해 달릴 때 다리 구간에 접어들면서 방송이 나온다.


방송 내용은 천편일률적이 아니다.

날마다 다른 거 같다.

오늘은 이랬다.


"택시는 모범택시가 있어도 지하철은 모범지하철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모범기관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을 편안히 모시겠습니다."


정확히 옮기진 못했지만 대강 이런 내용의 멘트가 흘러나올 때

'전엔 저런 방송이 없었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삭막한 도회지 생활 속에서 저런 여유롭고 따스함이 느껴지는 말을 들을 수 있다니 흐뭇하다.


지하철 승무원들의 서비스가 예전과는 다름을 느낀다.

지하철 하면 늘 임금 인상과 근로 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노조의 파업 같은 거만 떠올랐는데 

그런 선입견과는 딴판이다.


한 정거장이 지났다.

또 방송이 흘러 나왔다.


"어제는 비가 왔습니다. 지하철에 두고 내린 우산이 3개 있습니다.

우산 안 찾아가시는 분 우산 새로 사실 건가요? 

우산 새로 살 돈이면 친구와 막걸리와 파전을 사먹을 수 있겠네요.

어서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놓고 간 우산을 왜 안 찾아가느냐는 약간의 핀잔이 느껴지는 내용이었다.

아니면 친구와 막걸리와 파전을 먹으며 정을 나누는 게 얼마나 좋은가 하는 말 같기도 했다.

그러려니 했다.


한 정거장이 또 지났다.

또 방송이 흘러 나왔다.

이번엔 그야말로 이 방송을 왜 하나 싶은 내용이었다.

"비 오는 날은 커피 향이 더욱 진하게 느껴지지요. 

비 오는 날엔 그냥 커피보다는 마끼아또 같은 걸 마시는 게 더 좋겠습니다."


우산을 찾아가라는 거야 손님을 배려하는 마음이니 고마운 말이지만

비 오는 날 커피는 마끼아또가 좋겠다는 말은 좀 뜬금없어 보였다.


말이 너무 없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좀 심심하게 느껴진다.

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고 나를 혹시 싫어하는 게 아닌가도 싶다.


반대로 조용히 있고 싶은데 자꾸 말을 붙이면 성가시고 짜증마저 난다.

적당한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는다.

과유블급이란 말도 이런 데서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중용도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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