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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Nov 20. 2019

어리석은 일은 그만둬야

돼지고기값은 단어가 아니다

연합뉴스



한겨레신문


아프리카돼지열병 때문에 돼지고기 관련 뉴스가 자주 오른다.

그런데 이를 다룬 기사를 보면 '돼지고', '돼지고'이 혼용되고 있다. 

어찌 같은 뜻의 말이 서로 다르게 쓰이는지 의문을 품어봄직하다.


국어사전에 '돼지고깃값'을 찾아보면 그런 단어는 없다.

'돼지고기값'도 또한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돼지고깃값', '돼지고기값' 같은 말이 신문 기사에 등장할까.

국어사전에 없는 말이 국어 문장 속에서 '단어로' 쓰이고 있는 것은 그 이유가 무엇일까.


'돼지고깃값'의 '돼지고기' 끝에 붙은 'ㅅ'을 사이시옷이라고 부른다.

사이시옷은 명사와 명사가 결합해서 합성어가 생겨날 때 앞 명사의 끝에 붙는다.

그런 예로는 '시냇가', '햇볕',  '고깃집', '보릿고개' 등 참 많은 명사가 국어에 있다.


이런 예들로 보아 명사와 명사가 결합해서 새로운 명사가 만들어질 때 

뒤에 오는 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면 앞에 오는 말의 끝에 사이시옷을 붙이는 것이 보통이고

그래서 다음과 같은 한글 맞춤법 조항이 성립되었다. (1988년 문교부 고시)

국어학자들이 그렇게 만들었다.


제30항: 사이시옷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받치어 적는다.

1. 순우리말로 된 합성어로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난 경우

(1)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는 것

 고랫재, 귓밥, 나룻배, ......

(이하 생략)


앞에서 예로 든 '시냇가', '햇볕', '고깃집', '보릿고개' 등은 물론이고

제30항의 예시어로 든 '고랫재', '귓밥', '나룻배' 등도 국어사전에 단어로 올라 있다.

그러나 '돼지고깃값'은 국어사전에 올라 있지 않다.


국어사전에 올라 있지 않음에도 '돼지고깃값'이라고 쓰는 것은

사람들이 이 말에 한글 맞춤법 제30항을 적용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돼지고깃값'이 한글 맞춤법 제30항의 적용 대상인지 한번 살펴보자.

한글 맞춤법에는 합성어일 때 사이시옷을 적는다고 했다.


합성어란 무엇인가?

단어와 단어가 결합해서 생겨난 단어가 합성어다.


그런데 단어와 단어가 연결된다고 해서 다 단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 목숨'이 단어인가?

'개 목숨'이 단어인가?

두 단어가 연결되었지만 단어가 아니다.

그냥 두 단어의 연결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단어가 아니기 때문에 붙여서 '사람목숨', '개목숨'이라고 쓰지 않는다.

물론 국어사전에도 '사람목숨', '개목숨'이 올라 있지 않다.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돼지고기'와 '값'도 연결되었다고 해서 '돼지고기값'이 한 단어가 아니다.

즉 '돼지고기값'은 합성어가 아니다.

따라서 '돼지고기 값'이라고 쓰는 것이 옳다.

'사람 목숨', '개 목숨'이라고 하지 '사람목숨', '개목숨'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


'돼지고깃값'이라는 표현이 신문 기사에 마구 등장하는 것은

한글 맞춤법 제30항을 부당하게 적용했기 때문이다.

적용해서는 안 될 데다 적용하는 바람에 '돼지고깃값'이라는 해괴한 표기가 나타났다.


'돼지고기 값'이 맞다.

붙여서 '돼지고기값'이라고 쓸 수는 있을지언정 '돼지고깃값'은 어이없는 일이다.

맞춤법에 대한 맹신 때문에 빚어진 참사가 아닐 수 없다.


신문에서 언제 '돼지고깃값', '휘발윳값' 따위를 보지 않아도 될지 모르겠다.

어리석은 일은 제발 그만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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