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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Feb 15. 2020

반짇고리

출퇴근 때 자전거를 이용하니 늘 아쉬운 게 물건을 넣을 수 있는 가방이었다. 자전거를 타면 두 손이 묶이니 등에 매는 가방이라야 했다. 기껏 겨울장갑이나 털모자 같은 거나 넣을 가방이니 클 필요가 없었다. 오래 전에는 '색'이라고 부르는, 천으로 된 가벼운 가방을 누구나 들고  다녔는데 요즘은 다들 모양 근사하고 두툼한 가방을 매지 도무지 그런 물건을 통 볼 수 없었다. 예전의 '색'을 사기 위해 동대문시장에 나가보았으나 그 많은 가방가게에서 '색'을 파는 데는 한 군데도 보지 못했다. 포기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수유동 재래시장에 들렀다가 가방가게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가방을 발견하고 얼씨구나 하고 사온 게 두어 달쯤 전이다.


신나고 즐겁게 그 가방을 등에 매고 자전거로 출퇴근했다. 룰루랄라였다. 어떤 짐이 있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가방에 쑥 넣으면 되니까. 서류봉투도 좋고 약봉지도 문제 없었다. 과히 부피가 크지 않은 거면 어떤 잡동사니도 그 가방에 넣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열흘쯤 전 문제가 생겼다. 색의 위, 끈을 조여매는 부분에 실밥이 터지더니 하루가 다르게 터져 나가는 부분이 커졌다. 보기가 여간 흉하지 않았다. 아침에 가방을 안식구에게 보여주면서 수선해주기를 청하고 나왔다. 실이 풀어진 부분을 보더니 난색을 표하는 게 약간 찜찜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가방을 보니 아침에 맡긴 그대로가 아닌가.  난색 표한 게 좀 찜찜했는데 아닌게아니라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옷이나 가방 수선하는 곳에 맡겨야 하는 걸로 생각하고 그냥 둔 게 틀림없었다. 아니 나 같은 바느질 문외한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왜 저걸 그리 어렵게 생각할까. 이튿날 아침 가방을 가지고 출근했다. 그리고 점심 때 근처 생활용품점에서 반짇고리를 사가지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오후 늦게 작업에 돌입했다. 내 가방은 내가 수선한다!


천 원짜리 반짇고리 통에 이렇게 들어 있었다


낮에 사온 반짇고리곽을 열어보니 오밀조밀 여러가지가 들어 있었다. 바늘 2개, 실은 다섯 색깔, 단추 2개, 눈곱만한 가위, 그리고 이름 모를 납작한 납조각... 가방을 수선하자면 실과 바늘만 있으면 된다. 바늘통에서 바늘을 꺼내고 실은 검정색으로 1미터쯤 넉넉하게 잘랐다. 이제 바늘에 실을 꿰면 그걸로 실밥 풀어진 가방을 꿰매면 된다. 그런데 생각도 못했던 복병이 나타났다. 바늘에 실이 꿰어지지 않았다. 벌써 돋보기를 쓴 지 여러 해가 된다. 가까이 있는 게 잘 안 보인다. 둘로 겹쳐 보이기도 하고. 큰일났다. 아무리 바늘구멍 속으로 실을 집어 넣어보았지만 5분, 10분이 지나도 실은 들어가지 않았다. 수십 번이 뭐야, 몇 백번은 시도했으리라. 그러나 도무지 실은 바늘구멍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허공만을 찔렀다.


그렇게 기약 없이 바늘구멍 속으로 실 집어넣기를 하는 중에 기적처럼 실이 바늘구멍에 들어갔다. 애쓴 보람이 있었다. 기쁨에 넘쳐 그 나머지는 일도 아니었다. 실밥이 풀려 나간 자리에 한땀 한땀 꿰매기 시작했다. 두 쪽 중 한 쪽을 다 꿰맸다. 반대편쪽은 실밥이 별로 풀려 나가지 않았지만 앞으로 얼마 안 가 풀릴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그쪽도 미리 대비할 겸 꿰매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새로 바늘에 실을 꿰는데 역시 좀체 바늘구멍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이번에도 10분 이상 걸린 거 같았다. 아니 처음보다 더 걸렸는지도 모른다. 포기하지 않고 바느실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계속 시도했다. 이번에도 결국은 어느 순간 실이 바늘구멍 속으로 들어가고야 말았다. 반대편쪽은 그냥 대충 꿰매고 바느질을 종결했다. 가방 수선을 손수 해낸 기쁨은 컸다. 뿌듯했다.


좀 엉성하긴 하지만 그런 대로 수선을 했다


고생해서 가방 수선한 이야기를 반짇고리 사진과 함께 평소 드나드는 몇 군데 밴드에 올렸다. 30분도 안 돼 놀라운 반응을 접했다. 반짇고리 사진 속에 바늘에 실을 쉽게 꿸 수 있는 도구가 들어있다는 지적을 해주는 게 아닌가. 한 번 실을 바늘에 꿸 때마다 15분가량 걸렸는데 10초도 안 돼 실을 꿸 수 있는 도구가 그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평소에 저게 무슨 물건이지 했던 것이 바로 그 실 꿰는 도구였다. 납작한 납조각 말이다. 손톱만한 납조각 끝에는 마름모꼴의 가는 철사가 있었다. 그걸 바늘구멍 속에 넣은 다음에 그 마름모꼴 철사 안에 실을 넣은 뒤 실은 한쪽을 손에 잡은 채 납조각을 잡아당기면 저절로 바늘에 실이 꿰지는 것이다.


바늘에 실을 꿰어주는 도구
저 마름모꼴 철사의 끝을 바늘구멍 속으로 넣기란 쉽다. 단단하니까.


바늘에 실을 꿰게 해주는 그 자그만 물건의 이름은 모른다. 그러나 그 물건을 보면서 새삼 인간의 지혜에 감탄했다. 이걸 누가 생각해냈을까. 바늘과 실 자체도 참 신통한 발명품이지만 바늘에 실 꿰는 그 도구는 더더욱 신통하다. 이제 눈이 나쁘다고 바늘에 실을 어떻게 꿰나 하고 걱정하지 않는다. 그 자그만 물건을 바늘구멍에 넣으면 끝이니까. 


바늘과 실, 그리고 바늘에 실 꿰는 보조도구가 인간의 위대한 발명품이지만 밴드에다 바느질한 이야기를 올렸더니 왜 편한 도구를 놔두고 그렇게 고생했느냐면서 그 작은 반짇고리 통에 바늘에 실을 쉽게 꿸 수 있게 해주는 도구가 있다고 알려준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난 계속 바느질할 때마다 바늘에 실 꿰느라 수십, 수백 번 허공에 실을 집어넣는 수고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밴드가 아니었다면 내가 어떻게 그런 생활의 지혜를 얻을 수 있었겠나. 새삼 인터넷에 고마움을 느낀다. 


학교 다닐 때 배운 '삼인행에 필유아사'라는 말이 떠오른다. 셋이 길을 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선생님이 있다는 뜻이다. 새삼 무릎을 치게 된다. 모르면 물어야 한다. 누군가 답을 주는 이가 있다. 천 원짜리 반짇고리를 하나 사서 또 새로운 걸 하나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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