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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an 12. 2021

혹한기 제주도 4박5일

2021.1.6.~1.10.

2021년 1월 6일부터 10일까지 4박 5일 제주도에서 보내고 왔다. 원래 2박 3일 예정으로 떠났는데 돌아오는 날인 1월 8일 오후에 밤 비행기가 결항되었으니 취소하든지 변경하라는 문자가 날아들었다. 낭패가 났다. 9일 비행기 표는 모두 매진되었고 10일 비행기 표가 일부 남아 있어 간신히 예매할 수 있었다. 덕분에 이틀이나 더 머물 수 있었다.


1월 6일 아침 6시 4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무척 애를 먹었다. 출발 20분 전에는 타야 하는데 시간을 맞추기가 만만치 않았다. 새벽부터 설쳐서 간신히 시간에 댈 수 있었다. 제주도 왕복 29,000원짜리 표는 이렇게 시간대가 불편했다. 구름을 뚫고 비행기는 예정 시간에 제주공항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날씨가 흐렸다. 그러나 일기예보가 나오기를 다음날은 폭설이 내린다 했다. 일행 네 명은 순식간에 뜻을 모았다. 지금 당장 영실로 가기로. 그래서 거기서 윗세오름까지 올라가기로. 영실에서 한라산 정상 올라가는 등산코스는 이미 오래 전에 폐쇄되었고 해발 1,700미터인 윗세오름까지만 올라갈 수 있었다.


일행 넷은 차를 몰고 1,100고지에 이른 다음 잠시 쉬었다가 영실로 향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아이젠을 장착한 뒤 뚜벅뚜벅 영실 탐방안내소로 걷기 시작했다. 1.5km 떨어진 탐방안내소까지도 은근히 멀었다. 11시까지만 입장이 허용되었고 입구를 통과한 게 그 무렵이었다. 숲속길로 들어섰다. 내 위에 놓인 다리를 몇 개 건너니 가파른 경사가 시작됐다. 아이젠이 없이는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길이었다.


눈이 끝없이 쏟아져 내렸다. 시계는 제로여서 도무지 먼 풍경을 알 수 없었다. 1시간쯤 걸었을까 길이 갑자기 평평해졌다. 탁 트인 평원이 나왔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윗세오름 대피소였다. 이미 많은 등산객들이 그곳에 와서 몸을 녹이고 있었다. 컵라면을 먹는 사람도 많았고... 우리도 준비해온 간식을 꺼내 먹은 뒤 밖으로 나오니 위쪽으론 한라산 정상이 손에 잡힐 듯했고 사방으로 설원이 펼쳐져 있었다. 이런 장관을 본 것은 몇 십 년만인가!


내려오면서 스마트폰의 카메라 셔터를 끝없이 눌러댔다. 도저히 찍지 않고는 지날 수 없는 광경들이 속속 이어졌다. 일행 세 명은 이미 저만치 앞에 내려가고 있었지만 난 누르고 또 눌렀다. 나무에 입혀진 눈의 모양이 어느 하나 같은 게 없었다. 그러다 그만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방전되었음을 발견했다. 이런 낭패가! 하지만 이제 남은 길이 멀지 않아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병풍바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거의 90도 가까운 병풍바위의 모습을 담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위에서 너무나 많은 사진과 동영상을 찍다보니 배터리가 급격히 소진됐던 거다. 아쉬움을 한껏 안고 터덜터덜 탐방안내소로 내려와야 했다.


영실 윗세오름 탐방은 경이로운 체험이었다. 봄이나 여름, 가을에는 또다른 모습이리라. 눈 쌓인 영실기암을 빠르게 스케치하고 내려왔다. 다음에 기회가 다시 온다면 오백나한의 모습도 살펴봐야지. 주차장에서 차에 다시 올라 서귀포 시내로 향했다. 서귀포올레시장에서 횟거리를 산 뒤 숙소인 구좌읍 행원리로 돌아왔다.


이튿날은 먼저 만장굴을 찾아갔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지하로 내려가니 장장 1km의 굴이 펼쳐져 있었다. 폭이 상당히 넓고 높이도 아주 높았다. 끝에 이르니 높이 쌓인 용암에 세 가지 색의 조명이 번갈아 비추고 있었다. 그 뒤로는 일반인에게는 개방이 안 되어 있었다.


거문오름은 유네스코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이었다. 지질학적 가치가 여간 높지 않은가보다. 거문오름은 그냥 가면 들어갈 수 없다. 예약된 사람만이 입장할 수 있고 그것도 시간이 정해져 있어 안내자의 인솔을 받아서 갈 수 있다. 우리는 1시에 예약을 해두었고 정확하게 1시가 되자 탐방이 시작됐다. 바로 오르막이었고 계단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숲이 빽빽한 속에 탐방로가 놓여 있었다. 마치 아마존 밀림속에 들어온 느낌처럼 깊고 깊은 산중을 걷고 또 걸었다. 이게 바로 곶자왈이란다. 곶은 숲, 자왈은 덤불, 덤불이 그득한 숲인 게다. 화산이 분출하고 용암이 이곳 일대를 뒤덮었고 그 위에 온갖 식물들이 자라났다. 


셋째날 일행은 성산일출봉과 광치기해변을 목적으로 삼았다. 성산일출봉은 폭설로 탐방로가 폐쇄되었고 부근을 거닐다가 해녀의 집 앞을 지나게 되었다. 막 바다에서 물질을 마치고 수확한 해산물을 짊어진 채 해녀가 뭍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해녀의 집에 들어가 즉석에서 막 따온 소라와 해삼을 맛볼 수 있었다. 소주 한 잔 곁들여서. 보통 해녀들은 따온 해산물을 어촌계에 넘기고 어촌계에서는 다시 식당으로 넘기는데 중간 과정 다 생략하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거래했다. 소라는 쫄깃쫄깃했고 홍해삼은 찰졌다. 


일출봉 아래 식당가에서 점심을 먹고 나왔는데 항공사에서 비행기가 결항되었다는 문자가 날아들었다. 취소하거나 변경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날 밤 비행기로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결항이라니 난감했다. 검색해보니 다음날 비행기표는 모조리 매진되었다. 이틀 뒤인 일요일 표 검색에 들어가 간신히 오후 5시 10분 비행기표를 구입할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지미봉 아래를 지났다. 세화를 지나 해변길을 달리는데 일기가 여간 변화무쌍하지 않다. 해가 쨍 했을 때 기 막힌 해변 풍경을 사진 찍고 나면 바로 하늘이 구름으로 뒤덮이곤 했다.


넷째날 우리는 제주도 서쪽의 비양도를 탐방하기로 했다.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간다. 길은 눈으로 덮여 엉금엉금 가야 했다. 가끔 길에서 노루를 발견하기도 했다. 목장을 지날 때면 몇 마리씩 모여서 서 있는 말떼도 보고... 한림항으로 가는 도중에 배가 뜨는지 확인해보니 결항이라 해서 한경면의 엉알해변으로 목적지를 바꾸었다. 출발한 지 거의 4시간만에 엉알해안에 이를 수 있었다.


먼저 수월봉에 올랐는데 해발 78m의 바닷가 수월봉에 바람이 그렇게 셀 줄은 차마 몰랐다. 몸을 가누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수월봉에서 내려와 엉알해변을 둘러보았고 차귀도 가는 배 선착장으로 옮겨가 차귀도를 가까이서 보았다. 이곳에서도 날씨는 변화무쌍했다. 쨍 하고 맑았다가 다시 흐려지고... 숙소로 돌아올 때는 드넓은 4차로 1132번 도로로 오니 쉽게 올 수 있었다.


제주도 여행 5일차인 마지막날 우리는 다랑쉬오름으로 향했다. 그곳은 비자림에서 가까웠고 역시 길에는 눈이 가득 쌓여 있어 조심조심 접근해야 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정상을 향해 난 길을 걸어오르기 시작했다. 30분만에 산 둘레길에 올라섰고 정상은 조금만 더 가면 있었다. 날이 흐려 일출봉이며 우도 등이 선명하게 보이진 않았다. 다만 다랑쉬오름의 분화구는 잘 내려다보였다. 분화구 둘레에 난 길을 한 바퀴 걸었다. 거의 한 시간 걸렸던 거 같다. 해발 382m의 다랑쉬오름에서 동쪽으로 내려다보이는 작은 오름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아끈다랑쉬오름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거문오름과 다랑쉬오름을 올랐다. 300개가 훨씬 넘는다는 제주도 오름 중에서 두 곳을 가보았다. 또다른 오름들이 궁금했다. 차에 올라 사려니숲길로 향했다. 사려니숲길 앞 1118번 도로는 무릎까지 눈이 쌓여 있었다. 간신히 차를 세우고 사려니숲길을 좀 걸어보려 했지만 아쉽게도 탐방로는 폐쇄돼 있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부근 도로 가로 대단히 울창한 밀림이 우거져 있었다.


5시 1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는 하늘로 솟구친 지 얼마 안 되어 구름 위를 날고 있었다. 닷새 내내 눈을 실컷 만끽했다. 영실 윗세오름도 올랐고 서쪽의 수월봉, 엉알해변도 보았지만 주로 동쪽의 만장굴, 거문오름, 다랑쉬오름, 성산일출봉, 광치기해변 등을 살펴보았다. 돌, 용암, 굴, 숲, 곶자왈, 감귤나무, 바람, 구름, 눈, 말, 노루, 개, 해녀... 골고루 보았다. 돌아온 지 이틀도 안 됐는데 또 가고 싶으니 이를 어쩌나.



2일



3일



4일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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