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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n 02. 2021

조리의 즐거움

김밥에서 출발하다

2021년 5월은 내 인생에서 특별한 한 달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살아오면서 늘 어머니와 아내가 해주는 밥을 얻어먹고만 살아왔던 내가 이제 스스로 해먹는 사람이 됐으니 말이다. 그러니 어찌 뜻깊은 한 달이 아니겠는가.


변화의 단초는 집사람의 친정나들이였다. 지난 겨울부터 난 거의 매일 서울의 공원과 산을 순례하는 일을 해왔고 이 순례에 필요한 김밥을 집사람은 지난 겨울부터 지금껏 한 번도 안 거르고 싸주었다. 덕분에 매일같이 이어지는 공원과 산 순례는 순조롭게 이어져 왔다.


그러다 4월말 친정에 일이 있어 집사람은 십여일간 친정에 가게 되었다. 실로 난감했다. 김밥은 어떻게 하나? 아침에 김밥 파는 데가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고심 끝에 내가 직접 싸보리라 마음을 먹게 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김밥을 쌀 수 있는 사람과 못 싸는 사람으로 구분되어 태어나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싶었다.


김밥을 싸보기는커녕 늘 해주는 음식을 얻어만 먹고 살아온 내가 과연 김밥을 쌀 수 있을까?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김밥싸기는 난공불락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문을 두드리지 않을 수 없었고 처음 시도해 본 게 김에다 그냥 밥만 싸보는 것이었다. 밥솥에 있는 찰밥을 꺼내 김밥용 김에다 깐 뒤 말고 썰어보았다. 속이 안 들어 형편 없이 작게 말려져서 볼품없기가 말도 못했지만 그래도 김밥은 김밥이었다.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유튜브에 들어가 김밥 동영상을 하나둘씩 보기 시작했다. 참으로 많은 김밥 마는 방법 동영상이 유튜브에 있었다. 그 많은 걸 다 보지는 못하고 몇 가지를 보았다. 물론 그것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었다. 차이도 많았고...


애로가 적지 않았다. 속에 들어가는 재료를 만드는 것부터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당근 써는 것부터 간단치 않았다. 칼질을 해보았어야 말이지... 유튜버들은 번개처럼 당근을 썰었지만 내 칼질은 서툴기 그지없었다. 계란 지단 부치기도 처음엔 만만치 않았다. 시금치 무치기도 단순치 않았다. 소금을 넣어 끓인 물에 데치고 꺼내서 꼭 짠 다음 소금과 참기름을 넣어 버무려야 하니 말이다.


더 어려운 것은 김에다 밥을 펴는 일이었다. 얇게 펴면 펼수록 좋다는데 잘 펴져야 말이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속 재료를 얹은 다음 동그랗게 마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냥 손으로만 말아보기도 하고 김발을 사용해서 말아보기도 했다. 말아진 김을 칼로 써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밥이 잘 뭉쳐지지 않아서 잘 썰리지 않기도 했고 옆구리가 터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많은 어려움은 하루 이틀 날이 갈수록 극복되기 시작했다. 김에 밥을 펴는 일도 차츰 익숙해졌고 칼로 써는 것도 나아져 갔다. 밥을 꼭꼭 누르지 않았기에 잘 안 썰렸는데 힘 주어 마니까 팽팽해지면서 잘 썰렸다. 김밥 싸기에 도전한 지 열흘쯤 지났을 땐 김밥 만들기가 제법 익숙해져 있었다. 그간 나를 괴롭히던 몇 가지 어려움이 웬만큼 해소되었다. 김밥 만들기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김밥에 웬만큼 적응이 되니 욕심이 생겼다. 다른 음식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김밥 다음으로 시도해본 게 크림파스타였다. 이것 역시 유튜브를 보고 감을 잡았다. 면을 먼저 익히고 이어서 팬에다 마늘과 양파를 볶고 버섯이나 해물 같은 것도 넣어서 볶은 뒤 우유와 생크림을 넣어서 끓이고 끓여 놓은 면을 넣어서 마무리했다. 김밥보다 훨씬 쉽게 느껴졌다. 맨 처음에 어려운 김밥에서 훈련을 쌓은 뒤라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크림파스타를 하고 나니 리조또를 해보고 싶었고 면과 밥의 차이뿐이었다. 이어서 이것저것 거의 닥치는 대로 조리를 해보았다. 때로는 하루에 세 가지를 시도해본 적도 있었다.


김밥, 크림파스타, 리조또, 두부찌개, 해물파전, 토마토스파게티, 양파전, 부추전, 감자국, 토마토달걀볶음(토달볶), 감자스프, 감자조림, 호박전, 감자전, 어묵탕, 토마토스프, 양송이스프, 감자오믈렛, 감자샐러드, 감자치즈피자, 감자크로켓


5월 한 달 동안 해본 것들이다. 한 번만 해본 것도 있지만 대체로 각각 두세 번은 해보았다. 심지어 세 번 실패하고 네 번째에서야 그럴듯하게 만든 것도 있다. 이 모두를 독학으로 하였다. 학원 같은 데 안 다니고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하였다.


유튜브에 얼마나 많은 요리 동영상이 있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실로 많은 유튜버들이 있었다. 그리고 제각기 요리 방법이 달랐다. 물론 공통점도 있었지만... 감자전을 부칠 때 감자를 강판에 갈아야 식감이 좋다는 방송이 있는가 하면 믹서기에 갈아도 아무 차이가 없다는 방송도 있었다. 그러니 누구 말을 따라야 할지 갈피를 못 잡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유튜브가 이렇듯 사람을 당혹하게 하기도 하지만 순기능이 더 큰 것 같다. 유튜브가 아니었다면 스무 가지가 넘는 요리를 어떻게 학원 안 다니고 해볼 생각을 했겠는가. 유튜브 방송이 곧 인강 아니겠는가.


세간에 영식님, 일식씨, 이식이, 삼식놈 같은 우스개소리가 있다는 걸 안다. 내 생각엔 이런 우스개가 앞으로는 더 이상 회자되지 않을 것 같다.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이다. 요리는 여자 몫이라는 뿌리 깊은 생각이 점차 소멸해갈 테니까 말이다. 아이는 남자가 낳을 수 없지만 요리는 남자라고 못하거나 안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저 오랜 관습이 남자가 요리하는 걸 가로막아왔을 뿐...


얼마 전 지인이 '삼식이레시피'라는 걸 알려주었다. 뭔가 하고 살펴보니 은퇴하고 요리학원에 다녀 아내에게 세 끼 밥을 해주는 남자의 이야기였다. 아내로부터 세 끼 밥을 얻어먹는 남자가 아니라 아내에게 세 끼 밥을 해주는 남자 이야기였다. 그렇게까지 되진 않더라도 언제든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할 수 있고, 하는 남자가 앞으론 많아질 것 같다. 나도 그 대열에 들어서고 싶다. 아니 이미 들어섰는지도 모른다. 음식 만들기가 이렇게 즐거운 줄 예전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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