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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Sep 26. 2021

봉사는 즐거워라

교회에 가서 교육 봉사를 한 지도 어느덧 반 년이 가까워 온다. 매주 토요일 오전에 고등학생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일로 일대일 대면 수업을 한다. 개인 교습이라고나 할까. 


교인도 아닌 내가 교회에서 이런 일을 하게 된 것은 그 교회의 집사인 내  친구의 권유를 받아들여서다. 그는 나의 고등학교 동창으로 내게 가진 능력을 묵혀두지 말라며 적극 권했다. 조금 망설이다 권유를 수락했고 처음엔 과연 내가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좀 걱정스러웠지만 지금껏 계속하고 있는 걸 보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거 같다.


교회가 집에서 무려 20km나 떨어져 있지만 가는 데는 불과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광역급행버스를 타고 좌석을 뒤로 약간 젖히면 마치 고속버스를 타고 여행하는 기분이다. 내리는 곳까지 서는 곳은 없다. 단 한 정거장 떨어진 곳이어서다. 논스톱으로 달려가는 기분이 상쾌하다.


이제껏 살면서 강의는 꽤 해본 편이다. 대학생이나 일반인 등을 대상으로. 수십 명이 앉아 있는 강의실에서 강의를 하노라면 수강생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열심히 경청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딴 생각이나 딴 짓을 하는 듯이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경청하는 사람 중에서도 무표정하게 듣는 이가 있는가 하면 눈을 반짝이며 듣는 이도 있다.


개중에는 내 강의를 듣고 뭔가 깨달았다 싶은 대목에서 오직 눈빛만으로도 동의를 표시하는 사람이 한둘은 있다. 그런 사람이 청중 가운데 있으면 강의하는 보람이 있다. 아, 내 말을 이해하는구나 싶어서. 무언의 교감을 느낀다.


교회에서 학생과 일대일의 국어 과외를 하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내가 힘 주어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일 때 가르치는 보람을 느낀다. 그 표정에서 내 말을 이해하는지 그렇지 못한지를 충분히 알 수 있는데 대부분 내 말을 이해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니 힘들지 않다.


그뿐이 아니다. 간혹 내가 미처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조금 부정확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그동안 열심히 듣고 있다가 바로 그런 대목에서 날카롭게 치고 들어오며 이의를 제기할 때 난 깜짝 놀란다. 아, 대충 이야기해선 안 되는구나, 조금이라도 부정확한 부분이 있어선 안 되겠구나 함을 절감한다. 내 얘기를 얼마나 귀 기울여 듣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어쨌거나 반 년 가까이 주말마다 과외를 하면서 국어 과목 공부에 도움을 주기 위해 나름 애썼다. 비록 내가 가진 지식이 많이 구닥다리겠지만. 그러나 얼마만큼 도움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공부하는 횟수가 자꾸 쌓이면서 내가 가르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배우는 것도 생겼다.


요즘 학생들은 선생님보다 IT 기기를 더 잘 다룬다고 하는데 과연 그랬다. 인터넷이나 모바일 다루는 데 능수능란하다. 어렸을 적부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컸으니 당연히 그러하리라. 수업이 끝나고 스마트폰을 가지고 이야기하다 자기가 아는 앱을 추천해주기에 당장 깔았다. 영상 편집 앱인데 중1 때부터 썼다고 했다. 굉장히 유용한 앱이었다. 


나는 학생에게 국어를 가르치지만 거꾸로 그로부터 스마트폰과 앱에 대해 배운다. 두 사람은 45년의 나이 차를 잊고 친구가 돼가고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더니 이를 실감한다. 봉사가 나를 즐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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