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는 단어만 올라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한 매체에서는 '휘발윳값'이고 다른 매체에서는 '휘발유값'이다. 사람들은 보통 그냥 지나치고 말겠지만 평생 국어 문제를 다뤄 온 필자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휘발윳값'이 맞나? '휘발유값'이 맞나? 둘 다 맞나? 둘 다 맞을 리는 없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둘 다 틀렸다. '휘발유 값'이 바른 표기이다. 이는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알 수 있다. '값'이라는 말은 '빵+값', '가방+값', '이불+값', '나물+값', '컴퓨터+값', '반도체+값', '화장품값', '알루미늄+값', '마스크+값', '소모품+값', '주스+값', '코코아+값' 등에서 보듯이 가격이 매겨지는 모든 물품에 붙는다. 그리고 이런 말들은 한 단어가 아니다. 한 단어라면 국어사전에 '가방값', '이불값', '컴퓨터값', '반도체값', '주스값', '코코아값'이 오를텐데 국어사전에 그런 말은 올라 있지 않다. '가방 값'은 두 단어이고 '가방의 가격'이란 뜻이므로 '가방'과 '값'을 따로 국어사전에 올리면 되지 '가방 값'을 국어사전에 올릴 필요는 없다.
그럼 왜 신문에는 '휘발윳값'이라는 표기가 자주 등장하나? 국어사전에 '휘발윳값'이 올라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국립국어원이 펴낸 '우리말샘'에 '휘발윳값'이 올라 있다. 고려대학교 한국어대사전에도 '휘발윳값'이 올라 있다. 그리고 '휘발유를 팔고 사는 값', '휘발유를 사고파는 값'으로 각각 뜻풀이해 놓았다.
이렇게 국어사전에 올릴 필요가 없는데도 국어사전에 올라 있는 말로는 '빵값', '생선값', '반찬값' 등이 있다. '가방값', '이불값', '컴퓨터값', '반도체값' 등은 사전에 안 올라 있는데 '휘발윳값', '빵값', '생선값', '반찬값' 등을 국어사전에 왜 올려 놓았는지 참으로 알 수 없다. '휘발윳값', '빵값', '생선값'을 올렸다면 '가방값', '이불값', '컴퓨터값', '반도체값' 등 온갖 물품들에 '값'을 붙인 말을 모두 올려야 하지 않나? '휘발유+값'은 두 단어이지 한 단어가 아니다. 즉 '휘발유 값'이지 '휘발윳값'이 아니다. 두 단어의 연결은 구이다. 그럼 어떤 경우에 사이시옷을 사용하는지 보자. 사이시옷에 관한 규정은 한글 맞춤법 제30항인데 다음과 같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합성어이다. 합성어에 사이시옷을 넣으라는 것이다. 합성어가 아니고 두 단어인 경우에는 사이시옷을 넣어서는 안 된다. '휘발유 값'은 따라서 사이시옷을 넣을 자리가 아니다.
합성어는 단어와 단어가 결합해서 새 단어가 만들어진 경우로 '꽃밭', '큰아버지(백부)' 같은 경우이고 '휘발유 값'은 '휘발유의 가격'이란 뜻으로서 새로운 단어가 아니고 단순히 두 단어의 연결일 뿐이다. 합성어는 사전에 올라야 마땅하지만 두 단어의 연결은 국어사전에 올라야 할 이유가 없다. '휘발유 값'은 후자인데 국어사전에 올랐다. 잘못 오른 것이다.
합성어도 단어와 단어의 연결이고 구도 단어와 단어의 연결이다. 언뜻 보면 잘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합성어는 단어와 단어가 결합해 새 단어가 만들어지면서 의미를 보면 두 단어의 단순한 합이 아니고 뭔가 뜻이 보태지거나 변한다. 이에 반해 '물건 + 값'의 경우에는 '물건의 가격'이란 뜻 외에 다른 뜻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사전에 올리지 않는다.
'서울 휘발유값 L당 1800원 넘었다'라는 한국경제신문의 기사 제목을 보면서 반가움과 안도감 그리고 나아가 환희마저 느낀다. 아무리 국어사전에 '휘발윳값'으로 되어 있더라도 이를 따르지 않는 용기에 갈채를 보낸다. '휘발유 값'이라고 띄어쓰면 더욱 좋겠지만 한 칸이 아쉬운 신문의 특성상 붙여쓰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무지막지한 사이시옷 남용은 끔찍해서 봐주기 어렵다. 더불어 국어사전의 원칙 없는 표제어 등재에 안타까움과 통탄을 금치 못한다. 정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