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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May 20. 2022

이런 혼돈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같은 신문인데 '휘발윳값'이라고 적기도 하고 '휘발유값'이라 적기도 한다. 독자는 이를 알고 있을까. 알면서 관대한 걸까. 알아채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는 걸까. 말을 대학에서 전공했고 졸업 후 줄곧 말을 다루는 기관에서 일했던 필자로서는 여간 의아하지 않다. 그냥 의아한 정도가 아니라 어처구니없고 분노마저 치민다. 왜 독자는 이에 대해 항의하지 않나. 왜 관계기관은 이를 바로잡고자 나서지 않나.


'휘발윳값'도 맞고 '휘발유값'도 맞을 순 없을 것이다. 만일 둘 다 맞다면 '열심히'도 맞고 '열씨미'도 맞을 것이다. '개구쟁이'도 맞고 '개구장이'도 맞을 것이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그럴 수는 없다. 아무렇게나 써도 다 맞다면 맞춤법이 무슨 소용이겠으며 표준어가 어디 있겠는가. 아무렇게나 써도 맞는데... 그러니 '휘발윳값'과 '휘발유값'도 다 맞을 수는 없다. 뭐가 틀려도 틀린 게 있다. 그럼 뭐가 맞나? 언어학을 공부한 지 40년이 훨씬 지난 필자가 보기에는 둘 다 틀렸다. 


아니, '휘발윳값'도 틀리고 '휘발유값'도 틀렸다고? 그럼 무엇이 맞단 말인가. 왜 둘 다 틀렸다는 말인가? 누구나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휘발윳값'도 틀리고 '휘발유값'도 틀렸다고 보는 이유는 띄어쓰기 때문이다. 휘발유의 가격을 뜻하는 말은 '휘발유 값'이지 '휘발유값'일 수는 없다. 만일 어떤 물건의 가격을 뜻하는 말이 한 단어라면 라면의 가격도 '라면값'이라야 하고, 구두의 가격도 '구둣값', 치마의 가격도 '치맛값', 양파의 가격도 '양팟값', 조기의 가격도 '조깃값'이어야 하겠네? 그런데 라면값, 구둣값, 치맛값, 양팟값, 조깃값이 한 단어? 이게 말이 되나?


당연히 '라면 값', '구두 값', '치마 값', '양파 값', '조기 값'이라야 한다. 이에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으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휘발유의 가격도 당연히 '휘발유 값'이지 '휘발윳값'이나 '휘발유값'은 틀렸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신문에는 '휘발윳값'과 '휘발유값'이 등장하는 걸까? 이유가 있다. 나라에서 펴낸 국어사전인 '우리말샘'에 '휘발윳값'이 단어로 올라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샘'에는 '휘발윳값'뿐 아니라 '당근값', '과잣값', '딸깃값', '우윳값'이 올라 있어 나를 아연케 한다. 왜 어떤 물건의 값에 대해서는 단어로 올려 놓고 '라면값', '구둣값', '양팟값', '조깃값' 등은 안 올려 놓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짚이는 것도 없다. 당근, 과자, 딸기, 우유 등에 특별한 자격이나 조건이 있을까?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국어사전에 '휘발윳값'이 있음을 아는 기자는 신문에 '휘발윳값'이라고 쓰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국어사전을 의심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나 '휘발윳값'이 국어사전에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기자라면 '휘발유값'이라고 기사를 쓰고 제목을 뽑는다.('휘발유 값'을 한 칸이라도 줄여 '휘발유값'이라 붙여쓸 것이다.) 그 결과 신문에 '휘발윳값', '휘발유값'이 공존하는 사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원죄는 국어사전에 있다.  왜 '당근값', '과잣값', '딸깃값', '우윳값'은 국어사전에 올려 놓고 '라면값', '구둣값', '양팟값', '조깃값' 등은 안 올려 놓았는지 답해 보라. '라면값', '구둣값', '양팟값', '조깃값' 등을 국어사전에 올릴 자신이 없다면 이미 올라 있는 '당근값', '과잣값', '딸깃값', '우윳값' 따위를 하루빨리 국어사전에서 내려야 할 것이다. '휘발윳값'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야 같은 신문에서 '휘발윳값'과 '휘발유값'이 뒤섞여 나오는 희한한 꼴을 막을 수 있다. 기자들은 죄가 없다. 국어사전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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