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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Oct 26. 2022

1979년 그날

10.26 43년

오늘로 박정희 대통령이 세상을 뜬 지 43년이 지났다. 43년 전 이날 저녁 그는 부하가 쏜 총에 맞고 스러졌다. 쏜 사람은 미리 계획을 세워서 거사했겠지만 박 대통령은 이런 일을 당할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예전부터 있었다.


1979년 10월 27일 아침 입주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던 대학 1학년생인 나는 주인 아저씨가 중학생 아들을 등교시키는 차를 얻어타고 학교에 가는 중이었다. 역촌동에서 나와 차가 무악재 고개를 넘었을 때 서대문형무소 앞에 군인들이 총을 들고 지키고 있었다. 평소에 못 보던 모습이었다. 전날 박 대통령의 서거로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됐던 것이다. 


아침 신문에 '박대통령 유고(有故)'란 제목이 주먹만하게 찍혀 있었고 '유고'란 말이 낯설어서 무슨 말인가 의아하게 여겼던 기억이 선명하다. 얼마 지나고서야 유고는 사망을 의미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당국이 '서거'나 '사망'이란 말을 쓰기가 차마 내키지 않았던 모양인지 생소한 '유고'란 말이 10월 27일 아침 신문을 장식했다. 


18년이나 이 나라를 통치한 집권자가 갑자기 사라지니 나라가 큰 혼란에 빠졌다. 아마 대학은 바로 휴교에 들어갔지 않았나 싶다. 그 다음해인 1980년에는 더 오래 대학이 휴교 상태였다. 3, 4월은 강의가 진행됐다. 5월 중순까지도. 그러나 5월 17일 비상계엄이 선포되면서 전국의 대학이 휴교에 들어갔고 내가 다니던 대학은 휴교가 가장 늦게 풀렸다. 아마 11월쯤에 다시 학교에 가지 않았나 싶다. 비록 4학년 마치고 대학 졸업장은 받았지만 2학년은 대부분 놀았다. 지금처럼 원격 수업이 이뤄질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다. 불량 졸업장이었다.


박 대통령이 스러졌을 때 나는 채 스무 살도 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지금 내가 박 대통령이 부하의 총에 맞아 서거했던 바로 그 나이다. 벌써 그렇게 되었다. 격동의 세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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