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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Nov 03. 2022

울릉도, 독도 기행

2022. 11. 1. ~ 2.

7년만에 가는 울릉도다. 기상 때문에 두 차례 연기 끝에 10월 31일 밤 11시 40분에 포항에서 출발하는 뉴씨다오펄호에 올랐다. 포항역에서 기차를 내려 택시를 타고 영일만항 크루즈터미널에 내리니 뉴씨다오펄호가 육중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미리 포항에 내려온 일행 5명과 만나서 인사를 나눈 뒤 짐을 들고 배에 올랐다. 개인 소지품 외에 큰 물통이 둘 있었다. 독도에 가서 사용할 물이다. 우린 독도에 심어놓은 나무에 물을 주기 위해 간다. 물도 그냥 물이 아니다. 맹물처럼 보이지만 물통에 든 그 물에는 식물 생장에 필요한 호르몬제가 들어 있다. 낑낑거리며 물통을 들고 배에 올랐다. 우리 일행은 6인실에 들어가 여장을 풀었다. 아래 층에 셋, 위 층에 세 침대가 있었다. 짐을 풀어 놓고 같이 식당으로 내려가 맥주를 마셨다. 월요일 밤이라 배는 승객이 많지 않았다. 가볍게 마시고 객실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월요일 밤 11시 40분에 출발한 배는 울릉도 사동항에 화요일 아침 7시께 도착했다. 7시간 이상 걸렸다. 날이 밝아 있었다. 하선하라는 방송이 나오지 않기에 우두커니 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총무에게 방 열쇠를 반납하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황급히 나가 보니 이미 승객들은 다 배에서 내린 뒤였다. 우린 허둥지둥 배에서 내렸다. 날은 환하게 밝아 있었다.


2만톤짜리 배에서 내려 근처에 정박해 있는 작은 배로 옮겨 탔다. 뉴포세이돈호라는 고기잡이배는 9.77톤짜리로 선장과 선원 한 명이 배를 부리고 승객은 우리 일행 6명뿐이다. 배에 올라 구명조끼를 입었다. 배는 독도를 향해 맹렬히 달리기 시작했다. 날씨가 맑았다. 차음 사동항이 멀어져 갔다. 하늘의 구름이 오묘한 형상을 펼치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이런 구름을 뭐라 하나. 분명 이름이 있을텐데...















다행히 해상은 고요했다. 파고는 높지 않았다. 잔잔했다. 이렇게 작은 배를 3시간 이상 타본 기억이 없다. 배멀미라곤 몰랐는데 2시간쯤 지나니 속이 거북해져 왔다. 아... 이런 게 배멀미구나 싶었다. 친구와 갑판에서 이야기하다가 슬그머니 선실 안으로 들어왔다. 이미 일행 몇은 선실에서 잠에 빠져 있었다. 대낮이지만 잘도 잔다. 난 속이 거북해서 몸을 뉘었다. 누우니 좀 나았다.


드디어 독도가 눈앞에 다가왔다. 내릴 때가 되었다. 독도는 동도와 서도로 이루어져 있다. 서도가 더 높은데 배의 접안 시설은 동도에 있다. 10여 년 전에 와보고 두 번째 오는 독도다. 그땐 잠시 배에서 내려 땅을 밟고 10분도 채 안 머물고 다시 배에 탔던 기억이 난다. 이번은 다르다. 이번엔 독도에 두세 시간 머물면서 나무에 호르몬제가 든 용액도 뿌려주고 삽목을 위한 가지 치기도 해야 한다.


배에서 내려 보니 마침 독도 관광객을 실은 배가 한 척 와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배에서 내려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10~20분뿐이다. 관광객들이 다시 배에 오르고 나니 동도 뱃전은 고요해졌다. 경찰관 몇 명과 우리 일행... 그리고 해양생태탐사를 위해 독도에 온 몇 사람뿐이었다. 그들도 미리 허가를 받고 독도에 들어왔을 것이다.


뱃전에는 독도 꼭대기와 연결된 화물용 케이블카가 내려와 있었다. 오로지 짐만 실어나르는 기구다. 우리 짐도 거기에 실었다. 물 한 통에 몇 십 리터인데 그거 두 통을 실었고 독도경비대의 짐도 함께 싣고 케이블카는 올라갔다. 우린 계단을 따라 걸어서 작업 현장으로 올라갔다. 계단길은 가파른 경사였다. 점점 서도가 잘 보이기 시작했다. 동도는 해발 98.6m, 서도는 168.5m로 서도가 더 높고 험하다.















독도 서도


케이블카가 내리는 곳에 이르니 우리 물통은 이미 내려져 있었다. 물통을 들고 나무가 심어져 있는 곳으로 갔다. 가파른 비탈에 나무가 심어져 있었고 우리는 그 나무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나무 생장에 필요한 호르몬제가 들어 있는 물이다.


여간 무겁지 않은 물통인데 그걸 들고 가파른 비탈로 올라가는 친구의 괴력에 놀랐다. 맨몸으로도 올라가기 버거운데 그 무거운 물통을 들고 올라가다니! 갖고 간 물뿌리개에 물을 옮긴 뒤 나무마다 물을 주었다. 이 척박한 땅에 육지에서 가져와 심은 나무가 힘겹게 자라고 있었다. 보리밥나무와 사철나무다.


정상 부근에서 반가운 손님과 조우했다. 개가 두 마리 있었다. 한 마리는 요란하게 컹컹 짖었고 한 마리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가만 있는 삽살개가 여간 유순하지 않았다. 그렇게 순한 개는 별로 본 기억이 없다. 동해의 외로운 섬 독도에 삽살개가 살고 있었다.


두 통의 물을 다 주고 난 뒤에는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삽목을 하기 위해 나뭇가지를 베는 일이었다. 자라고 있는 나무의 가지를 꺾어다가 울릉도로 가져가서 울릉도에서 다시 심어 나무를 키울 것이다. 가파른 비탈에서 일행은 열심히 가지를 베었다. 갖고 간 마대자루가 가득차게 가지를 벴다. 물도 다 주었고 가지도 벨 만큼 벴다.


내려오다가 전망대가 있어서 들렀다. 저 멀리 울릉도 방향으로 바다를 응시하는데 아주 희미하게 육지의 윤곽이 드러나 있었다. 울릉도였다. 이미 수 차례나 독도를 다녀간 친구가 외쳤다. 자기가 나무 관리 사업 때문에 독도에 여러 차례 왔지만 울릉도가 보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만큼 날씨가 맑았다.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직선 거리가 87km라는데 날씨가 맑으면 육안으로도 보인다. 이렇게 가까운 게 울릉도와 독도인데 일본은 독도를 일본 영토라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독도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의 섬은 오키제도로 독도에서 무려 158km나 떨어져 있다.


독도는 이미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이 칙령 제41호로 울릉군 안에 둔 역사적 근거가 있다. 일본은 그 5년 뒤인 1905년 2월 22일 독도를 시마네현 고시로 시마네현에 편입한다고 발표했다. 그걸 근거로 지금까지도 독도가 일본 영토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독도는 1950년대부터 한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다. 1953년부터 독도의용수비대라는 민간 조직이 독도를 지켰고 1956년부터는 한국 경찰이 지금껏 지키고 있다. 최근 어느 신문기자가 말했다.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말하는 것은 '여의도는 한국 땅'이라고 말하는 거나 다를 바 없는 거라고. 아무도 '여의도는 한국 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것만큼이나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70년 넘게 줄기차게 독도는 일본 땅이라 주장하고 있다. 분쟁거리가 아닌데 분쟁거리로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헛된 일일 것이다.





두어 시간의 작업을 마치고 뱃전으로 돌아왔다. 배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독도를 떠난다. 선장이 우릴 위해 배를 몰아 독도를 한 바퀴 돌아주었다. 동도와 서도를 온전히 다 볼 수 있었다. 이제 울릉도를 향해 달린다. 점점 독도가 멀어져 가고 있었다. 울릉도로 돌아올 때도 역시 바다는 잔잔했다.


일행은 선실 안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독도에서 베어 온 나뭇가지를 삽목하기 맞는 크기로 자르고 다듬는 일이었다. 가지에 나뭇잎이 서너 개만 남게 나뭇잎을 떼어냈다. 적당한 크기로 가지를 예리한 가위로 비스듬하게 잘랐다. 비스듬하게 잘라야만 심을 때 땅에 잘 박힌다. 여럿이 함께 일하니 수월하게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그래도 한 시간은 했을 것이다. 삽목할 가지는 큰 봉지에 담았다. 나머지는 쓰레기 봉투에 담고...


다시 속이 슬슬 거북해져 왔다. 안 되겠다 싶어 선실 바닥에 누웠다. 무사히 울릉도에 가주기만을 바랐다. 돌아올 때도 3시간 이상 걸렸다. 사동항이 코앞에 다가왔을 때 우린 또 한번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울릉도 섬 한 바퀴 일주를 시작했다. 방향은 시계 방향이었다. 사동항 부근에서 울릉도 남쪽을 지나 서쪽을 거쳐 북쪽으로 돌았다. 거의 한 시간 걸렸을 것이다.


현포를 지날 무렵 석양이 바다 위에 붉게 이글거렸다. 오묘한 빛깔이었다. 배가 유명한 코끼리바위를 지날 때는 다시 코끼리바위를 한 바퀴 돌았다. 우린 최상의 호강을 누렸다. 참으로 기묘한 형상을 지닌 코끼리바위였다. 삼선암도 지나고 관음도 앞을 지날 땐 이미 어둠이 깊이 내려앉았다. 죽도 앞에는 휘황한 불빛을 밝힌 오징어잡이 선단이 조업중이었다. 집어등을 켜고 있었다.


































독도에서 출발한 배는 우리를 도동항에 내려다주었다. 일과가 끝나고 배에서 내려 예약해둔 숙소로 향했다. 도동항 공터에 잡힌 오징어가 널려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숙소에 이르러 짐을 풀어 놓고 저녁을 먹기 위해 근처 식당으로 갔다. 약소 요리가 있었는데 약초를 먹여 키운 소고기라 했다. 맥주를 곁들여 고기를 한껏 먹었다. 하루의 피로가 씻기는 듯했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니 말똥말똥 잠이 안 온다. 친구와 이런저린 이야기를 자정 넘어까지 했다. 그는 식물 전문가니까 평소 궁금했던 걸 그에게 다 물어보았다. 식물의 죽음은 특정 시점이 있느냐, 무엇이 식물의 죽음을 가리키느냐 하니 뿌리라 했다. 뿌리가 마르고 활동을 정지하면 나무는 죽는 거라고 했다. 목본과 초본의 차이에 대해서도 물었고 교목과 관목의 차이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었다. 체관, 도관, 나이테... 이런 이야기도 들었는데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실컷 이야기를 나눈 뒤 잠을 청했다. 그리고 아침이 밝았다. 일어나 짐을 챙겨서 나왔다. 근처 식당에 들어가 백반을 시켜서 먹었다. 조반을 마치고는 택시를 타고 도동에서 사동으로 갔다. 전날 독도에서 잘라온 가지를 심는 일이 남았다. 농업기술센터 안의 비닐하우스에 들어가니 이미 전에 삽목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일부는 죽어 있었다. 빈 땅에다 전날 독도에서 잘라 온 나뭇가지를 심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8시 50분께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사이렌만 계속해서 울리지 안내 방송이 없다. 안내 방송은 무려 50분 뒤에서야 나왔다. 공습경보니 대피하란 내용 같았다. 그나마 스피커 성능이 시원찮아 발음이 선명하지도 않았다.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늘엔 아무 것도 없고 그저 평온하기만 한데 공습경보라니 잘 믿기지 않았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니 북한에서 미사일을 쐈음을 알았다. 공습경보가 경계경보로 바뀐 것은 공습경보가 발령된 지 5시간 뒤였다. 참 못마땅하다. 애초에 공습경보 발령은 잘못된 게 아닐까. 미사일은 울릉도 서북쪽 167km 해상에 떨어졌다 한다. 울릉도에서 까마득히 먼 곳이다. 그렇다면 처음에 경계경보가 발령됐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공습경보였나. 도무지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비닐하우스에서 삽목 작업을 마치고 현장을 떠났다. 낮 12시 40분 배가 떠나는 사동항은 비닐하우스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출항 시간은 2시간이나 남았고 마땅히 갈 데가 없어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출항 시간이 가까워졌다. 전날 포항에서 타고 온 뉴씨다오펄호에 다시 올랐다. 전날엔 밤에 달렸고 이번은 낮에 달린다. 맨 위인 9층 갑판에 올랐다. 헬기장이 있었다. 서서히 사동항이 멀어져 갔다. 울릉도여, 안녕... 배가 지나간 바다 위로 거대한 물길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12시 30분에 사동항을 떠난 배는 7시 반이 돼서 포항 영일만항에 닿았다. 7시간 걸렸다. 무사히 육지로 돌아왔다. 임무도 완수했고 독도, 울릉도를 한 바퀴 배를 타고 돌아보는 호사도 누렸다. 무엇보다 날씨가 좋았다. 독도에서 울릉도를 육안으로 확인한 것은 뜻밖의 경험이었다. 아직 못 가 본 성인봉과 나리분지는 또 다시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됐다. 울릉도에 다시 가야 할 이유다. 강릉, 묵포, 후포, 포항에서 울릉도 가는 배가 있다. 2025년이 되면 비행기를 타고 울릉도에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날이 오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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