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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Nov 06. 2022

양구, 강원도의 보석

한반도섬과 꽃섬이 있는 곳

내년 6월이면 강원도는 강원특별자치도로 이름이 바뀐다. 이른바 강원특별법이 지난 10월 18일 공포되었고 내년 6월 11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특별한 강원도에서도 빛나는 곳이 있으니 양구(楊口)다. 양구는 휴전선 가까이 있는 데다 교통이 불편해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그저 가족 중에 군대 간 이가 있어 면회하러 가본 사람이면 모를까...


주말을 이용해 양구를 찾아갔다. 알고 보니 양구가 교통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양구 가는 직행버스를 타면 2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니 말이다. 10시 반 우등 버스를 타고 좌석에 몸을 누이니 12시 반이 좀 지나 양구에 닿았다.


양구읍만 해도 고즈넉했지만 이왕 양구에 온 김에 펀치볼이 있는 해안면(亥安面)을 가보고 싶었다. 양구읍에서 해안면까지 대중교통은 하루 세 번 있는 완행버스가 전부였다. 아침, 낮, 저녁 각각 한 번 있었다. 2시 40분 차가 있음을 확인하고 시간이 좀 남아 양구중앙시장도 둘러보고 양구군민공원 뒤 비봉전망타워에도 올라보았다. 비봉전망타워에서는 양구읍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버스를 타고 해안으로 향했다. 손님은 나까지 달랑 셋뿐이었다. 하루 세 번 다니는 버스인데도 손님이 이렇게 적다. 버스는 쏜살같이 달려 해안에 약 35분만에 닿았다.


DMZ펀치볼둘레길안내센터에 들러 지도를 얻어서 나왔고 부근의 양구통일관 앞을 지나 양구전쟁기념관으로 들어갔다. 1951년 한 해 동안 엄청나게 치열한 전투가 펀치볼 주변에서 벌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기념관 바닥에는 투명한 유리 아래로 탄피가 빽빽하게 놓여 있었다. 6.25 당시의 탄피일 것이다. 탄피뿐인가. 녹이 슬 대로 슨 각종 총기가 수없이 전시돼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양구 지구 전투에 프랑스군과 네덜란드군도 참전해서 많은 전사자가 나왔다는 것이다.


부근의 둘레길을 걸어보았다. 곳곳에 지뢰 주의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펀치볼은 휴전선에 바짝 붙어 있는 곳이다. 그릇처럼 가운데가 납닥하게 파져 있는 독특한 지형이라서 펀치볼이란다. 분지 둘레로 봉우리가 에워싸고 있었고 고지마다 부대로 보이는 시설물이 세워져 있었다. 그 중 하나인 을지전망대는 미리 예약을 해야만 갈 수 있으니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해안면은 휴전선 가까운 전방이기도 하지만 시래기 산지로도 유명하다. 시래기 전문 식당이 몇 보였으나 워낙 외지인이 적다 보니 문을 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양구로 가는 7시 차를 타야 했다. 시간이 남아 한 음식점에 들어갔다. 버거와 치킨을 파는 체인점이었다. 젊은 아들이 주인이고 엄마와 아버지가 아들을 돕고 있었다. 7시가 되었고 버스가 왔다. 한 동네사람이 올라타 요금을 내려 하니 운전기사는 그만두라 했다. 서로 아는 처지에 요금을 내나 안 내나... 나 같은 외지인이야 카드를 찍었지만 말이다.


양구읍으로 돌아왔다. 이제 잘 곳을 찾아야 한다. 양구읍에는 참 많은 모텔이 있었다. 군인 도시니 면회하러 온 이들이 묵어야 할 곳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난 미리 알아둔 대로 교외에 있는 찜질방으로 향했다. 택시가 잘 안 와서 걸어서 가기로 했다. 3.1km를 밤에 걸었다. 걷는 데는 이골이 나 있으니 문제 없다. 찜질방은 성업중이었다. 탕에 몸을 담갔다. 잘 관리되고 있는 깔끔한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잘 보냈다. 불가마 안은 얼마나 뜨겁던지 3분을 채 못 버텼던 거 같다.


이튿날 날이 밝아 찜질방을 나와 호숫가로 내려왔다. 말로만 듣던 한반도섬이 바로 앞에 있었다. 한반도섬은 인공섬이다. 일부러 한반도 모양으로 섬을 만들었다. 다리가 놓여 있었다. 다리를 건너 섬에 들어섰고 곳곳에 지명이 붙어 있었다. 지리산, 묘향산, 백두산...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이렇게 조용한 곳을 거닐어 보기도 참 오랜만이다. 주변은 고요했고 경치는 그저 그만이었다. 곳곳에 벤치도 있고 한 곳에는 보트 시설이 있었다. 집라인도 보였고... 이렇게 근사한 곳에 사람이 잘 보이지 않다니...


한반도섬을 나와 양구읍으로 향하는데 또 다른 섬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이번엔 꽃섬이라 했다. 과연 각종 식물이 눈을 즐겁게 했다. 어느 한곳에는 클로버 밭이 있었다. 네잎 클로버를 찾는 행운을 누려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한반도섬이 인위적인 느낌이 짙다면 꽃섬은 자연 그 자체였다.


근사한 두 섬을 보고 나서 양구읍내로 들어섰다. 터미널에 들러 4시 버스표를 산 뒤 이번엔 양구읍 부근을 둘러보았다. 군청 부근 박정희사단장공관을 찾았다. 1955년 박정희 대통령이 2사단장일 때의 공관이 보존되어 있었다. 참 자그마했다. 집 옆에는 당시에 썼던 것으로 보이는 군용 지프차가 세워져 있었다.


군청 안에서 비봉산 등산을 시작했다. 등산로가 잘 나 있었다. 해발 458m의 비봉산 정상은 일출봉이라 했다. 일출봉에 이르니 양구읍이 발 아래 펼쳐져 있었다. 저 멀리 꽃섬과 한반도섬까지 잘 보였다. 전망을 충분히 즐긴 후 하산을 시작했다. 비봉공원으로 향했다. 도중에 전망대가 있어 올라보았다. 내려오는 길에 충혼탑이 있었고 전날 갔던 비봉전망타워 옆을 지나 양구버스터미널로 돌아왔다.


양구... 강원외국어고등학교가 양구에 있다. 춘천, 원주, 강릉 같은 큰 도시에 있지 않고 말이다. 양구의 모토는 '청춘양구'이고 '양구에 오시면 10년이 젋어집니다'라 쓰인 구호가 도처에 붙어 있다. 마침 전국유소년야구대회가 양구운동장에서 열리고 있었다. 아이들의 함성이 읍내를 뒤흔들고 있었다.


이번에 번갯불에 콩 볶듯이 다녀왔기에 양구선사박물관, 양구근현대사박물관을 가보지 못했다. 더 아쉬운 것은 박수근미술관에 못 갔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미룬다. 다만 시내 한 아파트 벽에 박수근의 작품이 그려져 있었다. 양구는 박수근을 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곳 같다.


지난달 18일 동서고속철도 착공식이 열렸다. 앞으로 5년 뒤에는 고속철도가 양구역을 지난다. 서울에서 고속철도 타고 양구를 갈 수 있게 된다. 그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그날이 오기 전이라도 양구를 이따금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새로운 발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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