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바꿔도 될 민법을 바꾸었다
최근 나이를 계산할 때 ‘만 나이’를 쓰도록 국회가 민법을 개정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나이에 관해 법이 크게 바뀌는 것처럼 보도되었지만 법조문을 비교해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언론이 법안 내용을 세밀히 들여다보지 않고 국회가 낸 보도자료를 그저 옮기다 보니 이렇습니다. 현행 민법과 개정법률안을 비교해 봅니다.
현행 민법 제158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158조(연령의 기산점)
연령계산에는 출생일을 산입한다.
이 조항을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에서는 다음과 같이 바꾸었습니다.
제158조(나이의 계산과 표시)
나이는 출생일을 산입하여 만(滿) 나이로 계산하고, 연수(年數)로 표시한다. 다만, 1세에 이르지 아니한 경우에는 월수(月數)로 표시할 수 있다.
‘연령’을 ‘나이’로 바꾸고 ‘만 나이’라는 말과 ‘연수’라는 말을 썼습니다. 현행 민법에서는 ‘출생일을 산입한다’인데 개정법률안에서는 ‘출생일은 산입하여...’이니 출생일을 산입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이는 곧 현행 민법에서도 만 나이로 나이를 계산함을 의미합니다. ‘만 나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을 뿐 ‘출생일을 산입한다’가 곧 만 나이로 계산함을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연수로 표시한다’고 했는데 연수로 표시하지 않으면 나이를 어떻게 표시합니까? 추가된 ‘연수로 표시한다’는 없어도 그만인 말입니다.
보도만 보면 그동안은 민법에서 ‘만 나이’가 아니라 ‘연 나이’나 ‘집에서 세는 나이’로 나이를 계산하도록 했는데 이번에 민법을 개정함으로써 앞으로는 ‘만 나이’로 나이를 계산하도록 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적어도 민법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만 나이’ 사용을 정착시키려면 민법을 개정할 게 아니라 청소년보호법이나 민방위기본법 등 다른 법을 개정하거나 그밖의 다른 정책적 수단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민법은 이미 ‘만 나이’를 쓰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민법 제158조의 표현이 바뀐다고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집에서 세는 나이’ 사용이 줄어들 것 같지 않습니다.
실질적 내용이 달라진 게 없이 민법을 개정하면서 정작 명백한 오류인 비문들을 왜 국회는 바로잡지 않습니까? 무려 200 군데가 넘는 민법의 비문은 그냥 덮어 두어도 그만입니까?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안 해도 될 일을 국회가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