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에 언론이 있습니까?
모 신문 인터넷판 제목이 사뭇 자극적입니다. 2023년 1월 1일, 58년 개띠가 '지공거사' 되는 날이니 말입니다. 당장 2023년 1월 1일에 무슨 일이 일어날 듯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눈길을 끌게 되고 기사 본문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도 신문은 '제목장사'를 계속합니다.
클릭해서 들어가 보아도 제목은 여전히 '58년 개띠'가 노인 되는 날입니다. 그런데 정작 기사 본문에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기사 본문은 "2023년은 1차 베이비붐 세대를 상징하는 '58년 개띠'가 65세가 되는 해다."입니다. 제목의 '날'이 본문에서는 '해'로 바뀝니다. 제목에서 '해'라고 해서는 밋밋하고 재미없으니 '날'이라고 해서 독자의 시선을 끈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제목장사가 아닙니다.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제목장사 해야지요. 기껏 써 놓은 기사를 사람들이 읽지 않는다면 소용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나이 세는 방식입니다.
기사 제목에서 나온 대로 2023년 1월 1일에 58년 개띠들은 65세가 됩니다. 이런 나이 세는 방식은 연 나이입니다. 만 나이도 아니요 집 나이는 더더욱 아닙니다. 지하철 지공거사는 연 나이를 적용합니다. 사람마다 생일이 다 다르기 때문에 만 나이를 적용하기는 대단히 번거롭습니다. 같은 개띠라도 각기 제 생일날부터 지공거사가 되니 어찌 번거롭지 않습니까. 그래서 연 나이를 적용합니다. 취학 연령이나 징병검사 등도 매한가지입니다. 만 나이를 바탕으로 하되 연 나이를 적용합니다.
우리 사회에 집 나이, 연 나이, 만 나이가 다 쓰이고 있습니다. 집 나이는 보통 집에서 쓰는 나이입니다. 사람들이 사적인 대화에서 쓰는 나이입니다. 연 나이는 보통 신문에서 쓰는 나이입니다. 신문에서는 단순히 현재의 연도에서 출생 연도를 뺀 나이를 사용합니다. 만 나이를 쓰고 싶어도 그 사람의 생일을 모르면 만 나이를 쓸 수가 없습니다. 신문에서 연 나이를 쓰는 게 충분히 이해됩니다. 유명인이야 출생일을 알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까지 생년월일을 아는 건 어렵기 때문입니다. (서양에서는 악착같이 생일을 알아내 만 나이를 쓰는데 참 대단합니다.)
만 나이는 민법에 1958년 제정 당시부터 들어가 있었고(年齡計算에는 出生日을 算入한다.) 지난 12월 8일 국회에서 더욱 이를 명문화한 민법 개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제목을 '年齡의 起算點'에서 '나이의 계산과 표시'로 바꾸고 '만 나이'라는 말만 집어 넣었을 뿐이지 사실 내용이 달라진 것은 없는 개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는 이번에 국회에서 통과된 민법이 내년 6월부터 시행되니 내년 6월부터 만 나이가 도입된다고 크게 보도했습니다. 실은 민법의 알맹이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혹세무민이 따로 없습니다. 언론이 권력을 감시해야 하는데 그저 장단이나 맞추고 있습니다. 이 나라에 언론이 있습니까? 묻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