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의 영역을 법으로 통제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작년 12월 8일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정부는 12월 27일에 이를 공포했습니다. 시행은 2023년 6월 28일부터 시행됩니다. 이를 언론이 크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새해 달라지는 것들이라며 2023년 상반기 시행 법령으로 만 나이를 명문화한 민법을 들고 있습니다.
새 민법이 2023년 6월 28일부터 시행되는 것은 맞습니다만 그냘부터 한국식 나이가 사라진다고요? 한국식 나이는 세는 나이를 가리키는데 태어나면 바로 1살이 되는 이 세는 나이는 민법에서 그렇게 하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민법은 1958년 2월 22일 제정되었는데 제정 당시부터 연령을 계산할 때는 출생일을 산입하라고 했습니다. 만 나이를 쓰도록 했습니다.
그럼 세는 나이는 언제 비롯되었을까요? 세는 나이는 그 시작을 알 수 없습니다. 수백 년은 족히 되었을 것이고 어쩌면 수천 년 아니 그 이상 됐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민법과는 상관 없이 오랜 역사적 전통으로 계승되어 온 것입니다. 그 뿌리 깊은 습속을 민법을 개정해서 없애겠다고요? 더구나 민법 자체가 이미 제정 때부터 만 나이를 쓰라고 되어 있는데도요?
2023년 6월 28일부터 한국식 나이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수백 년 이상 된 뿌리 깊은 습관이 그날 사라질 리가 없습니다. 이번 민법 개정은 출발부터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입니다. 입법 만능주의가 불러온 참사입니다. 정부와 국회가 앞장섰고 언론이 이에 장단을 맞추고 있습니다. 요란스런 홍보 덕에 우리 사회에서 세는 나이를 조금은 덜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루 아침에 없어질 턱은 없습니다.
음력을 폐지하고 양력을 쓰도록 한 것이 1894년 갑오개혁 때부터입니다. 곧 130년이 됩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달력에는 음력 표시가 들어 있습니다. 비록 작은 글자지만 말입니다. 뿌리 깊은 습속을 없애는 것은 법으로 강제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집에서 세는 나이도 같습니다. 정부와 국회 그리고 언론이 국민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세는 나이를 이제 쓰지 말라고요? 사생활의 영역을 법으로 통제하려 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권력과 법이 겨레의 유구한 관습과 전통을 단숨에 없앨 수 있진 않습니다. 그것은 꿈에 불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