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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an 04. 2023

국어사전에 없는 말이 법률에 쓰이다니요!

형법의 낯선 단어들은 바뀌어야 합니다

국민생활의 기본법인 민법에 참으로 많은 문제가 있지만 고쳐지지 않고 아직 요지부동입니다. 그런데 범죄와 형벌에 관한 법률인 형법에도 좀체 바로잡히지 않고 있는 희한한 말들이 있습니다.     

 

형법 제98조제1항은 “적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인데 여기서 ‘간첩하거나’라는 말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간첩’이란 말은 익숙해도 ‘간첩하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간첩하다’는 국어사전에 없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형법 제98조에 나옵니다. 어찌 당황스럽지 않습니까. ‘간첩 활동을 하거나’로 고쳐야 마땅합니다.  

   

형법 제136조제2항에는 더 기가 막힌 일이 있습니다. “공무원에 대하여 그 직무상의 행위를 강요 또는 조지하거나 그 직을 사퇴하게 할 목적으로 폭행 또는 협박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에서 ‘조지하거나’라는 말이 쓰이고 있는데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아마 아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국어사전에 ‘조지하다’란 말이 없습니다.     


형법 제136조제2항의 ‘阻止하거나’는 일본 형법의 용어를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우리말로는 ‘沮止하거나’라야 합니다. 한자가 다릅니다. 국어에는 ‘막아서 못 하게 하다’라는 뜻의 ‘저지하다’라는 말이 있을 뿐 ‘조지하다’라는 말은 없습니다. 형법 제136조제2항의 ‘조지하거나’는 ‘저지하거나’의 오자일 뿐입니다.     


형법 제159조는 “시체, 유골 또는 유발(遺髮)을 오욕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인데 ‘오욕하다’는 국어사전에 있기는 합니다만 ‘명예를 더럽히고 욕되게 하다’라고 뜻풀이되어 있어서 ‘시체, 유골 또는 유발을 오욕한’과는 맞지 않습니다. 이 경우는 국어사전의 뜻풀이를 보강한다면 사용이 가능해 보이긴 합니다.     


형법 제215조는 “행사할 목적으로 타인의 자격을 모용하여 유가증권을 작성하거나 유가증권의 권리 또는 의무에 관한 사항을 기재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인데 ‘모용(冒用)하다’도 국어사전에 없는 말입니다. 일본어나 중국어에서는 쓰이는 말로 보입니다. ‘모용’은 ‘부정 사용’을 뜻하는 듯한데 마땅한 대안을 찾아서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법률은 뜻이 명확해야 합니다. 뜻이 명확하려면 최소한 국어사전에 있는 말을 써야 합니다. 국어 단어 아닌 말이 법률에 쓰이고 있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잘 믿어지지 않습니다. 올 9월이면 형법 제정 70년을 맞습니다. ‘간첩하다’, ‘조지하다’, ‘모용하다’ 같은 국어 단어 아닌 말이 사용된 형법을 정비해야 합니다. 정녕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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