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나이
통일을 함부로 말해선 안 됩니다
우리나라에 나이 세는 방법이 세 가지 있고 이를 만 나이로 통일하기 위해 국회에서 민법 개정안과 행정기본법 개정안을 작년 12월 7일 통과시켰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이들 개정 법률을 12월 27일에 공포하여 시행은 2023년 6월 28일부터 됩니다. 언론을 통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내년 6월 28일부터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은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이 최근 일부 언론의 보도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연합뉴스가 '팩트체크'를 통해 상세히 밝혔고 비즈한국도 심층 보도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 나이 세는 방법이 세 가지 있는 것은 맞습니다. 집에서 세는 나이, 연 나이, 만 나이가 있습니다. 이를 만 나이로 통일하겠다는 것이 작년 국민의힘 대선 공약이었고 집권 후 이를 위해 민법과 행정기본법을 개정했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만 나이로 통일하기 위해 민법, 행정기본법을 개정한 것이 옳았을까요?
나이 세는 방법이 세 가지 있다고는 하지만 실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연 나이와 만 나이는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의 나이를 따지는 날이 그 사람의 생일을 지났으면 연 나이와 만 나이는 같습니다. 생일을 아직 지나지 않았을 경우에만 연나이가 만 나이보다 한 살 많을 뿐입니다. 그래서 연 나이와 만 나이는 하나로 묶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편 세는 나이, 즉 한국식 나이는 연 나이나 만 나이보다 한 살 또는 두 살 많습니다. 연 나이보다는 반드시 한 살 많고 만 나이보다는 한 살 또는 두 살 많습니다.
세는 나이와 연 나이, 만 나이는 사용 분야도 다릅니다. 세는 나이는 사적 영역에서 개인들끼리 쓰는 나이입니다. 이에 반해 연 나이와 만 나이는 공적 영역에서 쓰는 나이입니다. 행정, 교육, 병역, 재판 등 공공 영역에서 씁니다. 그리고 집에서 세는 나이를 쓰도록 규정한 법률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세는 나이는 유구한 전통이요 관습입니다. 세는 나이를 그만 쓰도록 하기 위해 법률을 개정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더구나 민법 자체가 만 나이를 쓰도록 1958년 제정 때부터 규정했기 때문에 민법을 개정할 이유는 더욱 없었습니다. 그러나 민법은 개정되었고 자세히 살펴보면 '만 나이'를 쓰라고 '재확인'했을 뿐 내용이 달라진 게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법령 중에는 연 나이를 쓰도록 규정한 법령이 꽤 있습니다. 법제처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2023년 1월 현재 62개라고 합니다(연합뉴스 '팩트체크). 일례로 병역법은 제11조에서 '병역의무자는 19세가 되는 해에 병역판정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19세가 되는 해'에 병역판정검사를 받으라는 말은 만 19세가 되든 되지 않았든 만 19세가 되는 해에 병역판정검사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병역판정검사를 받는 날에 19세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19세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지만 이와 관계 없이 19세가 되는 해에 병역판정검사를 받도록 한 것입니다. 이렇게 연 나이로 병역판정검사를 받게 한 것은 행정의 편의를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만 나이로 병역판정검사를 받게 한다면 병역판정검사일과 병역의무자의 생일을 따져서 생일이 지난 사람만 병역판정검사를 받게 해야 하는데 대단히 번거로울 것입니다.
그런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진정 '만 나이로 통일'을 하려면 이런 법령을 죄다 개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연 나이를 쓰도록 되어 있는 62개 법령은 그대로 두고서(물론 차차 개정하겠다고 하니 지켜봐야겠습니다) 이미 만 나이를 쓰도록 규정한 민법을 개정하다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제자리걸음을 하였을 뿐입니다.
집에서 세는 나이도 이제 그만 쓰게 하겠다면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민족의 오랜 전통이기도 하고 사용 양상을 보면 개인의 사생활에서 쓰는 나이인데 이를 막는 게 과연 바람직한 것입니까? 또한 가능한 일입니까? 개인의 사생활은 국가가 통제할 수 없고 통제해서도 안 됩니다. 물론 민족의 오랜 관습도 필요에 따라서 바꿀 필요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법률로써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강제할 방법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집에서 세는 나이와 만 나이 또는 연 나이는 사용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혼란이 없습니다. 혼란이 있다는 것은 관념적인 억측일 뿐입니다.
'만 나이 통일'을 하려면 세는 나이를 그만 쓰게 하기 전에 '연 나이'를 쓰고 있는 법령부터 '연 나이'로 개정해야 합니다. 병역법, 청소년 보호법 등 수십 개 법령에서 연 나이를 쓰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법령의 연 나이를 만 나이로 바꾸려면 이에 따르는 비용과 행정 관청의 업무량 증가를 감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통 일이 아닙니다.
세 가지 나이를 '만 나이로 통일'하는 것은 간단치 않은 일입니다. 민법, 행정기본법 개정으로 (실은 개정이라고 하기도 뭣하지만) 통일이 이뤄질 거라고 생각한다면 천만의 말씀입니다. 오산입니다. 정부 당국의 깊은 숙고를 기대합니다. '통일'은 그렇게 단순하거나 쉬운 게 아닙니다. '통일'을 함부로 말해선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