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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학업 능력

무엇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나

by 김세중

1980년대 말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있었다. 당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영화 제목은 성적 스트레스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여중생이 남긴 유서의 마지막 문구란다. 많은 관객이 영화를 보고 공감했을 것이다. 적나라한 사회 현실을 고발한 영화였으니까. 문제는 30년도 더 지난 지금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혹시 더 심해지진 않았을까 모르겠다.


어제 한 친구를 만났다. 그는 누구나 부러워할 서울법대를 나온 이다. 그는 현역 땐 떨어졌고 재수해서 서울법대에 들어갔다. 사법시험에 몇 번 떨어지고는 대기업에 들어가 회사원 생활을 하다가 퇴직해서 지금은 특별한 일 없이 노후를 맞고 있다.


서울법대를 들어갔으니 성적순으로 말하자면 대단한 성적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과연 행복한가. 본인이 행복한지 여부를 남이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본인의 느낌과 타인의 생각이 늘 일치하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가까운 친구로서 보기엔 행복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왜? 이 '왜'가 중요하다.


재수 때 종합반에서 같은 반이었고 그 후로도 수십 년간 가까운 친구로 지내왔다. 꾸준히 만남을 이어 왔다. 요즘도 물론 만난다. 그런데 만날 때마다 느낀다. 그의 정서가 불안하다는 것을. 우선 그는 상대방 이야기를 좀체 들으려 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자기 얘기를 한다. 모처럼 내 얘기를 할라치면 반드시 도중에 끊고 들어와 자기 얘기를 한다. 상대방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대화가 도무지 정상적이지 않다.


길에서 서서 이야기를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반드시 손으로 또는 몸으로 툭툭 나를 친다. 강조하고 싶은 대목에서다. 카페에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서 이야기할 때도 같다. 이야기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손으로 내 팔을 친다. 강조하고 싶은 대목에서다. 그가 치는 것이 싫어서 내 의자를 조금씩 뒤로 물린다. 한참 후에 보면 나는 그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테이블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 남들이 보면 매우 기괴한 모습일 것이다.


어제는 더욱 놀라운 일을 경험했다.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게 되었다. 거리가 너무 멀어 손이 닿지 않으니까 그의 발이 들어왔다. 발로 내 다리를 툭툭 쳤다. 강조하고 싶은 대목에서였다. 그렇게 치지 않으면 내가 자기 말을 경청하지 않을 거 같아서였을까. 이유를 알 수 없다.


본인이 행복한지 행복하지 않은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주변 사람들이 힘든데 본인이 행복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그 때문에 힘들어 하는데 본인이 행복할 리 없을 것이다.


그는 서울법대를 나온 데서 보듯 성적이 뛰어났다. 과연 아는 게 엄청 많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이 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단편적으로 아는 많은 것들을 적절하게 엮지는 못하는 것 같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멋대로 엮다 보니 본인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도무지 공감이 안 간다. 그러니 대화가 헛돈다. 더 앉아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긴다.


가까운 사람이 그를 피하고 싶은데 본인이 행복할 수 있을까. 가족,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이 같이 있고 싶어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 본다. 과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옆에 있으면 기분 좋고 행복해지는 사람이 돼야 한다. 그걸 어디서 배우나. 어디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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