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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는나이 없애기

입법으로 없어지겠나

by 김세중

나이를 만 나이로 통일한다며 지난해 12월 국회가 민법을 개정했고 정부가 이를 공포했다. 오는 6월 28일부터 개정된 민법이 시행된다. 그런데 알고 보면 현행 민법이 이미 만 나이를 쓰도록 되어 있다. 1958년 2월 민법 제정 때부터 그랬다. 그러니 이번 민법 개정은 개정이라기에 너무나 민망하다. 그저 재확인, 강조에 지나지 않았다. 올 6월 28일부터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런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래도 연합뉴스 팩트체크가 이 점을 짚어 주었고 뒤이어 비즈한국, 한국경제신문에서도 같은 지적을 했다. 이미 국민 대다수가 오는 6월부터 만 나이로 통일되는 줄 잘못 알고 있지만 말이다.


'만 나이 통일' 얘기가 나온 것은 몇 년 전부터다. 2019년에 민주당 황주홍 의원이 '연령 계산 및 표시에 관한 법률'을 발의했고 2021년에는 민주당 이장섭 의원이 역시 같은 내용의 법을 발의했다. 그러나 다 입법되지 못했고 이번 민법 개정안에 흡수됐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의원들이 '세는나이', '연 나이', '만 나이'를 '만 나이'로 통일하기 위해 그같은 법률안을 냈지만 문제가 있었다. 세 가지 나이를 '만 나이'로 통일한다는 것은 '세는나이'와 '연 나이'를 쓰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는나이'는 일상에서 개인들 사이에 사적으로 사용되는 나이로서 법으로써 막을 수 없는 것인데 법률을 제정해서 '세는나이'를 없애려 했던 것이다. 입법이면 다 되는 줄 아는 입법만능주의에 빠진 데서 비롯된 일이었다.


세는나이는 법에서 쓰라고 한 바가 없다. 법과 무관하게 수백, 수천 년 전부터 써오던 것이다. 그렇다면 법으로써 세는나이를 못 쓰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국민 개개인의 일상 언어를 법으로 어떻게 막을 수 있나. 법으로 못 쓰게 할 일이 아니고 꾸준히 홍보와 계도를 통해서 줄여나갈 수는 있을 것이다.


세는나이를 이제 그만 쓰자는 데 동의하는 국민이 꽤 많다고 들었다. 조상 대대로 써오던 나이 세는 방식이지만 여론 조사 결과 세는나이는 이제 안 쓰는 게 좋다는 국민이 더 많다는 것이다. 오랜 전통과 습관 때문에 쓸 뿐이지 국제적으로 보편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법에서는 만 나이나 연 나이가 쓰이니 혼란스럽다고 느끼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세는나이를 없애자는 데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단국대 동양학연구원장유승 연구교수가 경향신문 2022년 2월 3일자에 쓴 칼럼은 한번쯤 음미해볼만하다.


[역사와 현실] 세는나이를 내버려두라 - 경향신문 (khan.co.kr)


장 교수의 의견에 100%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주장 중에서 상당 부분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음력을 폐지한 지가 129년이 되었지만 우리가 설날, 추석을 음력 없이 찾아낼 수 있나. 양력 세상이 되었어도 음력도 부분적으로 필요하다. 일사불란한 통일이란 있을 수 없다. 만 나이나 연 나이로 가더라도 세는나이를 왜 병행할 수 없나. 나이를 말하면서 앞에 "세는나이로"를 붙여 주면 혼란은 없다. 더욱이 세는나이를 법률로써 없애겠다는 건 번지수를 잘못 짚은 엉뚱한 발상이다. 세는나이가 하루 아침에 없어질 리가 없다.


만 나이로 급격히 이행하겠다는 것도 무리다. 신문은 오래 전부터 세는나이를 쓰지 않았다. 연 나이를 썼다. 만 나이를 쓰기 싫어서 연 나이를 쓴 게 아닐 것이다. 신문이 보도를 하면서 연 나이를 쓴 것은 인물의 생년월일을 일일이 다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신문기자들은 '연 나이'를 '신문 나이'라고도 한단다. 과연 앞으로 신문이 나이를 어떻게 밝힐지 궁금하다. 정부 시책에 발 맞추어 신문 나이를 버리고 만 나이를 쓸지 아니면 그냥 그대로 신문 나이, 즉 연 나이를 계속 쓸지 말이다.


'세는나이'를 이제 그만 쓰고 '만 나이'를 쓰라는 것은 무리스럽다. '세는나이'에서 '연 나이'로 옮아간 다음 차차 '만 나이'로 간다면 모르겠다. 생일을 알아야 나이를 말할 수 있다는 건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생일이 지났으니까 X살", "생일이 아직 안 지났으니까 X-1살", 이거 보통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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