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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절이란 무엇인가

친밀감을 막을 필요가 있을까

by 김세중

딸에게 남자친구가 있다. 아니, 남자친구 이상이다. 양가를 찾아가 어른들께 인사하고 결혼에 대해 허락을 받았으니 준부부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귄 지도 오래 된 모양이다. 같은 과에서 만나 벌써 10년 가까이... 내년에 식을 올리기로 했단다. 주거 비용을 줄이고자 살기는 올 봄부터 같이 살 거라니 새삼 세태의 변화에 놀라게 된다. 혼인도 않고 미리 같이 살겠다니!


어제 딸아이가 따로 나가 사는 집에서 우리 식구들과 예비사위가 함께 식사하게 되었다. 우리 식구들이라야 내외와 아들, 딸이니 예비사위까지 다섯 사람이 식사를 했다. 화제가 가족 호칭에 미치게 되었다.


얼마 전 딸애가 정식으로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남녘 지방의 남친 부모님 댁으로 갔단다. 이때가 처음은 아니었고 전에도 간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 집은 아들만 둘이었고 예비사위는 작은아들이었다. 형은 이미 결혼을 했다 하고. 그쪽 부모님도 딸아이를 마음에 들어하는 모양이었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던 듯하다.


호칭 문제란 우리 딸이 남자친구 형의 부인을 어떻게 부르느냐는 거였다. 결혼했을 경우 당연히 전통 호칭은 '형님'이다. 손위 동서니 말이다. 그런데 이 '형님'에 대해 딸아이가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여간 어색하지 않다 했다. 남친과 오래 사귀면서 이미 남친의 형, 그 배우자와 같이 스키도 타러 다니는 등 친하게 지냈다고 했다. 그동안 언니, 언니 하면서 지냈는데 결혼하면 '형님'이라 해야 한다구? 딸애는 그걸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었다. 그냥 '언니'로 지내고 싶은 눈치였다. 이에 대해 딸애 남친도 맞장구를 쳤다. '형님'이라니!


다른 전통 호칭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자 더욱 놀라는 듯했다. 시동생을 아직 결혼 안 했으면 '도련님'이라 부르고 결혼하면 '서방님'이라 해야 한다고 하니 도무지 실감이 안 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남편의 형을 '아주버님'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도 역시 먼 나라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전통 호칭과 요즘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호칭이 다른데 내 생각은 어떠냐고 딸아이와 딸애 남친이 내게 물었다. 내 입에서 술술 답이 나와야 할텐데 도무지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란 말이 딱 맞았다. 더구나 난 30여 년 전 국어연구소에 근무할 때 이른바 '표준 화법' 제정의 실무자로 참여하지 않았나. 그 표준 화법을 그대로 따르라고 말하기에 세상은 너무 변했고 그렇다고 젊은이들 취향에 마냥 박수 치고 동조할 수만도 없었다.


30여 년 전 표준 화법을 만들 때 위원이었던 분들은 거의 대부분 생존해 있지 않다. 당시에 이미 6, 70대였던 분들이니까. 그리고 30년 동안 세상이 너무 많이 변했다. 과연 표준 화법대로 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 1990년대초 당시에도 "이제 세상이 많이 변했으니까" 하면서 세상의 변화를 제법 인정하면서 세상의 변화에 맞는 표준 화법을 정한다고 했지만 지금 보면 너무 낡았다.


어떤 관계에서는 어떤 말을 쓰는 게 맞다고 정해 놓는 게 과연 의미 있는 일인지 의문이 든다. 세상은 끊임 없이 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단 하나의 말만 써야 한다고 정하는 게 옳은지 의문스럽다. 예절의 두 요소는 존중친밀감이라 생각한다. 예전 호칭의 특징은 이 둘 중에서 존중을 친밀감보다 훨씬 중요시했다는 것이다. 존중이 강하면 친밀감이 떨어지고 친밀감이 강하면 존중이 약해지는 법이다. 적절한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


전통적으로 손위 동서는 존중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에 '형님'이라 불러야 했다. '형님'이라 깍듯이 높이는데 친밀감이 느껴질 리 없다. 동서 사이에 '언니'라니 망측스럽다 할 사람들이 아직 있을지 모르겠다. 존중에는 거리감이 자연히 따라붙는다. 존중하면 거리감이 느껴진다. 동서를 '언니'라 부르면 친밀감이 느껴진다. 그걸 막을 필요가 없어 보인다.


예전엔 대가족사회라 눈치를 봐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았다. 남들 시선을 의식해 이런 저런 복잡한 호칭을 썼다. 그러다 보니 질서는 잡혔는지 모르지만 거리감이 생기면서 친밀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신세대들이 전통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호칭을 쓰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친밀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마음에 공감한다. 예절은 고정될 수 없다 본다. 친밀한 사이가 되고 싶다는데 그걸 왜 막아야 하며,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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