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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an 20. 2023

글쓰기

작문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서점에 글쓰기에 관한 책이 많이 나와 있다. 글쓰기에 관한 관심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쓰기의 이란 무엇인가. 일기도 글이고 편지도 글이다. 판사의 판결문도 글이고 신문기자가 쓴 기사도 글이고 학자의 논문도 글이다. 관청이나 백화점의 안내문, 공지문도 글이다. 글의 종류가 참 많다. 이렇게 다양한 글이 있는데 두루 다 통하는 '좋은 글쓰기' 방도가 있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쉽지 않을 것이다.


오늘 한 친구가 단톡방에 올린 글을 읽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동창들에게 명절을 앞두고 설 잘 쇠라고 인사를 한 것인데 어쩌면 이다지도 글을 못 쓸 수 있는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읽고 또 읽어도 도무지 뭔 말을 하려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건 마치 한국말을 배우는 중에 있어서 아직 한국어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이 쓴 글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거의 암호 해독하는 듯이 그가 말하려고 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기를 쓰고 노력했다.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제 명절에 여자들이 음식 준비하느라 힘들어서는 안 된다는 뜻 같았다. 예전에는 사위가 처가에 와서 잘 대접받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서 사위가 처가에 가서 음식하는 게 맞다는 것이었다. 그의 생각에 동의한다. 사위가 처가에 가서 소매 걷어 부치고 일하는 게 뭐가 어떤가. '에헴' 하고 앉아서 음식 상 차려져 나오길 기다리는 건 다분히 옛날 풍습이다 싶다.


그런데 여전히 그의 단톡방 글에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명절에 "즐거운 나눔정 음식으로 형제자매가 정을 나눈다면 부모님께 복 받는 것..."이라고 하다가 "명절이라고 가족끼리 잠깐 모였다가 헤어지는 것처럼 얼굴 보는 시간이 아닌가 싶다"고 했는데 뭘 말하려는지 당최 알 수 없다. 명절에 형제자매가 모여 음식 먹으며 정을 나누는 게 좋은 일이라고 말하다가 명절에 잠깐 모여 얼굴 보고 헤어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듯이 말했기 때문이다. 명절에 형제들이 모이는 게 좋다는 건지 나쁘다는 건지...


20여 년 전 일이다. 디지털카메라가 처음 나왔을 때인데 필름이 필요 없는 카메라가 여간 신기하지 않았다. 필름을 사서 카메라에 끼워 넣지 않아도 됐으니까. 내가 최초로 장만한 디지털 카메라는 화소가 35만 화소였다. 아무리 잘 찍어도 사진은 흐릿했다. 그게 100만, 200만, 천만, 2천만이 되더니 지금은 스마트폰 카메라의 화소가 1억이 넘는다고 들었다. 얼굴의 땀구멍까지 선명히 보인다.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글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읽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글이 있는가 하면 단번에 선명하게 의미가 쏙 들어오는 글이 있다. 천차만별이다. 예전에는 한 반에 학생이 60명, 70명이었으니 작문을 시켜도 첨삭 지도가 가능하지 않았다. 그 많은 학생들이 쓴 글을 어찌 선생님이 다 봐줄 수 있나.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도시에도 20명 남짓이고 시골로 가면 전교생이 10명도 안 되는 학교도 있다. 학생보다 선생님이 더 많은 중고등학교도 있다고 한다. 


국어 교과에서 작문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 글을 잘 써야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이 원활해진다. 글을 썼는데 무슨 뜻인지 남들이 알지 못한다면 그 글이 무슨 소용 있나. 본인은 자기가 쓴 글의 의미를 아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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