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밭

고마운 것들

by 김세중

돌아보면 주위에 쓸모없는 것이 거의 없다. 간혹 쓸모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도 있지만 대개 가재도구들이란 꼭 필요한 것들이다. 워낙 늘 있는 것이라 고마운 줄을 모르고 살지 사실 절실하게 필요한 것들이 어디 한둘인가. 전기가 그렇고 수도가 그렇고 가스가 그렇다. 이들 중 하나라도 없어 보라. 얼마나 불편한지 말도 못할 것이다. 이들은 대개 공급이 끊기는 일이 거의 없다 보니 고마운 줄을 잘 모를 뿐이다.


난 젓가락이 그토록 소중한 줄을 잘 몰랐다. 절실하게 젓가락의 유용함을 깨달은 적이 있는데 작년 여름 설악산에 1박 2일로 등산을 갔을 때다. 전투식량은 준비해 갔지만 정작 스푼, 젓가락을 빠뜨렸다. 동남아 사람들은 손으로 밥을 먹는다지만 우린 안 그렇다. 손으로 밥을 먹어본 적이 없다. 젓가락 안 가져온 걸 절절히 후회했다. 하는 수 없이 얼굴을 전투식량 용기에 들이대고 뺨에 밥을 묻혀 가며 비빔밥을 먹었던 쓰린 기억이 있다. 많이 흘리고 제대로 다 먹지도 못했다. 집에도 주방에 젓가락이 없어 보라. 산해진미를 차렸더라도 젓가락 없인 난감할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도마, 식칼 등도 없으면 조리가 불가능하다. 굉장히 유용한 물건들이다.


이렇게 온갖 가재도구들이 다 절실한 필요성이 있는 거지만 난 개인적으로 특별히 고마운 게 있다. 우선 의자다. 만일 집이나 사무실에 의자가 없다면 어떨까. 앉을 수 없다면 서 있거나 방바닥에 주저앉아야 한다. 그럼 컴퓨터를 어떻게 사용하나. 난감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그래서 난 의자에 한 없는 고마움을 느낀다. 침대 없인 살 수 있어도 의자 없인 하루도 못 살 것 같다.


또 고마운 게 있다. 수세식 변기다. 전기, 가스, 상수도는 공급이 끊기는 일이 거의 없지만 변기는 이따금 막히기도 한다. 딱딱한 변 때문일 것이다. 그럴 때 변기가 뻥 뚫릴 때까지의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인류가 발명해낸 것 중 최고의 발명품 열 가지를 꼽으라면 난 수세식 변기를 그 속에 넣고 싶을 정도다. 쏴~ 소리를 내며 물이 내려갈 때의 그 청량함이란!


의자와 변기를 내게 특별히 고마운 것으로 꼽았지만 사람들마다 소중한 것이 다를 수 있을 게다. 어찌 생각이 같을까. 의자가 고마워서 그런가 지하철을 타서도 빈 자리가 있으면 여간 반갑지 않다. 냉큼 가서 앉는다. 내가 앉기를 좋아하나 보다. 하지만 걷는 것도 좋아한다. 걸을 수 있게 해주는 신발도 물론 고맙다. 운동화도 그렇고 구두도 그렇고. 둘러보면 고마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라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고마우면 좋겠는데 그런지는 모르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전무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