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어제(2023. 1. 26.) 올해 업무 보고를 하면서 보도자료를 냈다. 2023년 핵심 추진 과제의 하나로 민법과 상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라 자세히 보도자료를 읽어 보았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뜨악하기 그지없다.
현행 민법은 제정 이후 65년간 유지되어 현재의 사회.경제적 가치 및 시대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시대 변화에 맞게 민법 전면 개정을 추진하겠단다. 그러면서 예시한 것이 이렇다.
‘구거(溝渠, 민법 제229조)’, ‘몽리자(蒙利者, 민법 제233조)’, ‘승역지(承役地, 민법 제293조)’와 같은 일본식 표기 한자를 비롯해 ‘임의후견임감독인(민법 제959조의15)’과 같은 오탈자, 시대변화를 담지 못한 1958년 제정 당시의 법제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구거, 몽리자, 승역지를 예로 들었는데 이런 말은 낯설고 생소한 말이어서 알기 쉬운 말로 바꿀 수 있다면 당연히 바꾸어야 한다. 그런데 민법 전면 개정을 추진하겠다며 이런 예를 드니 민법 안에 든 제도를 시대에 맞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민법 안에 들어 있는 낡은 단어를 평이한 말로 바꾸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양자는 분명히 구분된다. 제도를 바꾸는 것은 법의 알맹이를 바꾸는 것이고 용어를 바꾸는 것은 알맹이는 그대로 유지하되 그 표현을 알기 쉽게 바꾸는 것이다. 어찌 같을 수 있나. 민법을 전면 개정하겠다는데 제도를 손 보겠다는 것인지 낡은 표현을 산뜻하게 고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법무부의 속내가 궁금하다. 보도자료라면 뜻이 분명해야 하지 않나.
국민이 접하는 정부의 숱한 보도자료는 말만 번드르르하고 구체성이 없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민법을 전면 개정하겠다고 했는데 전면 개정이란 말도 그렇다. 뭐가 전면 개정인가. 얼마큼 개정하면 전면 개정이라 하나. 정해진 게 있을 리 없다. 대체 민법의 무엇을 개정하겠다는 것인지 잘 알지 못하겠다.
법을 개정하겠다고 해 놓고 개정이 안 되어도 정부는 할 말이 있다. 국회가 통과시켜 주지 않아서 개정하려고 했는데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얼마나 편리한지 모른다. 정부가 이래서는 안 된다. 진정성 있는 행정을 해야 하고 진정성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 이번 법무부의 민법 전면 개정 발표를 믿지 않는다. 언제 한다는 것도 없다. 법 개정을 올해 완료한다는 건가. 올해는 그저 착수만 한다는 건가.
정부가 국민을 우습게 여겨서는 안 된다. 진정성, 구체성이 안 보이는 계획을 내놓는 것은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다. 국민이 너무 너그럽고 대범하다. 정부의 잘못이 있어도 꾸짖음이 없다. 국민은 뿔뿔이 흩어져 있을 뿐 모여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는 언론이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것도 한몫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언론이 양적으로만 팽창해 있지 내실이 없다. 국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 가엾은 국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