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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을 찾아서

인왕산 자락

by 김세중

오늘날 서울에서 서촌 하면 체부동, 누하동, 누상동 등을 가리킨다. 옥인동이 포함되기도 하고. 그러나 조선시대에 서촌은 그곳이 아니었다. 서촌은 정동 일대가 서촌이었다. 조선시대의 서촌은 한양의 서쪽 지역을 일컬었고 요즘 사람들이 서촌이라 함은 경복궁의 서쪽 일대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럼 요즘 서촌은 조선시대에 뭐라 했을까. 웃대라 했다고 서울역사박물관에 걸린 지도는 가리키고 있다.


예전엔 웃대라 했고 지금은 서촌인 누하동, 누상동, 옥인동 일대를 걸었다. 이곳은 인왕산 자락이다. 누하동 하면 내 오랜 친구(엄00)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다. 그의 집 주소 번지수도 기억하고 있다. 사직공원을 지나 누하동으로 들어섰을 때 친구 집을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랜만이다 보니 금세 찾아지지 않았다. 그 사이에 새로운 건물이 여러 채 생겨서 몰라볼 정도가 됐다. 그러나 스마트폰 앱의 도움을 받아 친구의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주변 여러 채가 새로 지어져 카페나 음식점으로 바뀌었지만 친구의 집은 그대로였다. 놀랍게도 골목길에서는 집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 누군가 사람이 있는 게다. 그리고 그 사람이란 뻔하다. 친구의 부모님일 것이다.


친구는 막내였다. 위로 형이 둘, 그리고 누나가 있었다. 두 형 중 한 분은 미국에서 산 지 꽤 오래된 줄 안다. 미국에서 대학교수라 들었다. 막내인 친구도 서울을 떠나 양평에 산 지 꽤 되었고. 그래서 누하동의 그 집은 부모님만 사신다. 嚴00라 적힌 문패가 걸려 있고 대문 앞에 쓰레기가 담긴 종량제 쓰레기 봉투가 놓인 걸 보면 부모님이 살고 계심에 틀림없다. 두 분 다 계신지 한 분만 계신지는 알 수 없지만... 문을 두드려 들어가볼까도 싶었지만 수십 년 전에 뵈었을 뿐인 나를 기억하실 리 없을 테니 그만 생각을 접었다.


친구의 옛 집에서 다시 수성동 계곡으로 향했다. 인왕산으로 향한 그 길은 누상동, 누하동과 옥인동의 경계를 이룬다. 윤동주 하숙집을 지나 버스 종점에 이르렀다. 예전에 이 부근에 옥인아파트가 있었는데... 북악스카이웨이가 나오는 데까지 산책로가 나 있었다. 인왕산 자락길이다. 산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청운동까지 왔다. 현대 정주영 회장이 살았던 집 부근까지...


옥인동은 변화믈 맞고 있었다. 정말 이게 현실인가 싶은 생각이 들 만큼 그 옛날 달동네가 아직 남아 있었고 한편으로는 길을 넓히는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걷다 보니 옛날 벽수산장 있던 동네도 지났다. 벽수산장은 일제강점기 때 친일 귀족 윤덕영이 어마어마하게 지은 프랑스풍의 대저택이었다. 후일 그곳은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으로 쓰이다가 화재가 나서 철거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잘게 쪼개져서 많은 단독주택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이 사진은 언제쯤 모습일까

이제 벽수산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저 옛 사진에서만 그런 대저택이 있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다만 그 아랫동네에 박노수가옥만은 종로구립미술관으로 남아 있었다.


다시 통인시장으로 돌아왔다. 체부동에 있는 먹거리 골목보다 이곳이 더 규모가 크다. 더구나 '시장'이다. 부근에 이완용의 집이 있었고 그곳에 여간첩 김수임이 살았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예전엔 인왕산에 호랑이가 살았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송석원이 있어 선비들이 시를 읊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친일 귀족이 상상을 초월하는 호화 저택을 지었고 전후에는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이 가난한 한국을 도왔다. 서촌이 지금 번성하지만 옥인동까진 아직 미치지 못한 듯 상상도 못할 만큼 남루한 골목이 남아 있는데 지하에선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 공사가 한창이다. 역사가 켜켜이 쌓이고 있다.


2023. 1. 5. 이렇게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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