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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May 05. 2023

말에 대한 무관심

민법과 형법은 6법 중에서도 특히나 중요한 법률이다. 민법은 1958년에 제정되었고 형법은 1953년에 제정되었다. 형법은 2020년에 제도의 개정이 아니라 법조문에 들어 있는 어렵고 낡은 표현을 바꾸는 개정을 한 바가 있다. 민법도 그런 시도가 있었지만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해 지금도 제정 당시 그대로다. 숱한 비문과 낡은 용어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2020년에 형법은 어떻게 바뀌었나? 예컨대 형법 제87조의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자는 다음의 구별에 의하여 처단한다."는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로 바뀌었으니 '참절' 같은 생소한 표현이 사라졌고 '문란할 목적으로' 같은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처럼 바로잡혔다.


이때 '형무소'는 '교정시설'로, '광갱'은 '지하채굴시설'로, '소훼한'은 '불태운'으로 바뀌었다. '제방을 결궤하거나'는 '둑을 무너뜨리거나'로, '부조를 요하는'은 '도움이 필요한'으로 바뀌어 알기 쉬워졌다. 바람직한 개정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형법이 2020년에 상당한 개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완벽하게 바로잡지는 못했다. 다음 조문은 아직도 형법에 남아 있는 이상한 조문들이다.


제22조(긴급피난) 

①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위난을 피하지 못할 책임이 있는 자에 대하여는 전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형법은 이미 발생한 일이 범죄를 구성할 때 그 처벌에 대해 규정한 법률이다. 그런데 제22조에서 '위난을 피하지 못할  책임이 있는 자'라고 했다. 위난을 피하기 위해서 한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데 위난을 피할 수 있었는데도 피하지 못한 책임이 있을 때는 처벌한다는 뜻이다. 그럼 '피하지 못 책임'이어야지 '피하지 못 책임'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제274조는 더욱 오류가 뚜렷하다.


제274조(아동혹사)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16세 미만의 자를 그 생명 또는 신체에 위험한 업무에 사용 영업자 또는 그 종업자에게 인도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그 인도를 받 자도 같다.


'사용'이라고 했다. '사용'의 잘못임이 분명하다. 그 다음에 '인도', '인도를 받'은 잘 돼 있는데 '사용'은 잘못 쓰였다. 이 법은 1953년에 제정되었다. 7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지난 2020년 형법 개정 때도 그냥 넘어갔다. 법에 대해서는 누구나 외경심을 갖는 모양이다. 법 앞에서 약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설마 오류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아니다. 법률도 사람이 만든 것이다. 1953년은 혼란스러운 전쟁 직후였다. 충분히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바로잡으려는 자세이다. 그런 자세가 우리에게 부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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