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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May 04. 2023

이상한 헌법 조문


헌법은 법률과 여러모로 다르다. 법률은 국회의 의결로 제정 또는 개정되지만 헌법은 하나 더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국민이 직접 선택한다. 그만큼 헌법의 위치는 엄중하다. 그런 헌법은 수많은 사람들의 검토 끝에 만들어졌다. 현행 헌법은 1987년 10월 29일 개정되어 1988년 2월 25일에 시행되었고 벌써 35년이 지났다.


130조로 된 현행 헌법은 완벽할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문법에 어긋나는 표현이 몇 있다. 제53조 제7항에 나오는 '효력을 발생한다', 제57조에 나오는 '금액을 증가하거나'는 엄연히 문법에 어긋난다. '발생하다'는 자동사인데 목적어인 '효력을'이 있고 '증가하다' 역시 자동사인데 '금액을'이라는 목적어가 있다. '효력이 발생한다', '금액을 늘리거나'라고 했어야 한다. 헌법에 '효력을 발생한다'가 나오니까 숱한 법률에 '효력을 발생한다'가 나오고 일반인의 언어생활에까지 '효력을 발생한다'가 심심찮게 쓰이고 있다.


제66조 제3항도 마뜩지 않다.


제66조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


의무가 성실한 의무가 있고 불성실한 의무가 있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렇게 썼겠지만 '성실한 의무'는 어폐가 있다. '막중한 임무'나 '중대한 의무'는 말이 돼도 '성실한 의무'는 뜨악하다. 차라리 '성실한'을 빼고 그냥 '의무를 진다'고 하는 게 나아 보인다.


제47조도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


 제47조

국회의 정기회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매년 1회 집회되며, 국회의 임시회는 대통령 또는 국회재적의원 4분의 1 이상의 요구에 의하여 집회된다.


국어사전에 '개최되다', '소집되다' 같은 말은 올라 있지만 '집회되다'라는 말은 없다. 사전에 없을 뿐더러 실생활에서 들어본 일이 없다. 왜 헌법에 이런 말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열리며', '열린다'라고 하면 안 될까.


제86조와 제87조에서는 '군인은 현역을 면한 후가 아니면 국무총리로 임명될 수 없다.', '군인은 현역을 면한 후가 아니면 국무위원으로 임명될 수 없다.'라는 표현이 있다. 군인은 현역을 면한 후에는 군인이 아니다. 현역을 면한 후에도 군인이라면 군인 아닌 이가 얼마나 있겠나. 따라서 '군인은 현역을 면한 후가 아니면'에서 '현역을 면한 후가 아니면'은 군더더기다. 전혀 필요 없다. '군인은 국무총리로 임명될 수 없다'로 충분하고 '현역'을 굳이 넣는다면 '현역 군인은 국무총리로 임명될 수 없다'라고 하면 된다.


헌법 제119조 제2항도 문제 있다.


제119조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유지하고', '방지하며'는 뒤에 어떤 동사가 접속될 것이 요구된다. 그러나 접속되는 동사가 보이지 않는다. 의미상 '경제의 민주화'가 접속되는 듯하다. 그러나 '경제의 민주화'에서 '민주화'는 명사지 동사가 아니다. '동사 + 동사 + 명사'가 접속된 꼴이다. 동사끼리 접속돼어야 문법에 맞다.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가 아니라 '경제의 민주화를 이루기 위하여'나 '경제의 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하여'라고 해야 접속이 바르다.


문법에 맞지 않아도 무얼 말하려는 조문인지 감을 잡기 때문에 누구도 문제삼지 않아 왔다. 그러나 문법에 맞는 문장은 단번에 쉽게 이해되지만 위 문장처럼 문법에 맞지 않으면 여러 번 읽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아, 이게 이런 뜻이구나' 하고 뒤늦게야 비로소 뜻을 파악한다. 왜 그래야 하나. 문장은 문법에 맞게 써야 쉽게 단박에 이해된다. 헌법과 법률은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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