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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May 08. 2023

말에 대한 무관심 3

'단행'은 무슨 뜻일까

우리나라 형법 제64조 제1항에는 '단행'이라는 꽤 생소한 말이 있다.


제64조(집행유예의 취소) ①집행유예의 선고를 받은 후 제62조 단행의 사유가 발각된 때에는 집행유예의 선고를 취소한다.


그런데 '단행'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는 일반인 또는 법조인이 과연 있을지 궁금하다. 국어사전에 단행은 네 가지가 올라 있는데 單行, 短行, 端行, 斷行이 그것이지만 그 어느 것도 위 제64조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제64조의 단행은 '但行'으로서 국어사전에 없는 말이다. 형법 제62조에 다음과 같이 '단'이란 말이 있었기  때문에 쓰인 말이다. 즉 '단'이라는 예외 조건이 있는 행이라 해서 '단행'이라 한 것이다.


제62조 (집행유예의 요건) 

①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의 형을 선고할 경우에 제51조의 사항을 참작하여 그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1년 이상 5년 이하의 기간 형의 집행을 유예할 수 있다.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어 집행을 종료한 후 또는 집행이 면제된 후로부터 5년을 경과하지 아니한 자에 대하여는 예외로 한다.

[시행 2008. 1. 1.] [법률 제7427호]


그런데 형법 제62조는 2010년에 다음과 같이 개정되었다.


제62조(집행유예의 요건) 

①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의 형을 선고할 경우에 제51조의 사항을 참작하여 그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1년 이상 5년 이하의 기간 형의 집행을 유예할 수 있다. 다만,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한 판결이 확정된 때부터 그 집행을 종료하거나 면제된 후 3년까지의 기간에 범한 죄에 대하여 형을 선고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이때 ''이 '다만'으로 바뀌었다. '단'이나 '다만'이나 뜻은 같지만 이왕이면 순우리말인 '다만'으로 바꾸었으니 잘됐다. 그렇다면 제64조에 쓰인 '단행'은 다른 표현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았을까. 일테면 '단서'나 '예외' 같은 말로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단행(但行)'은 국어사전에 없는 희한한 말인데 '단'이 조문에서 사라진 뒤에까지 '단행'이 법조문에 남았다. 이런 내력을 아는 사람이야 '단행'이 '단서'라는 뜻을 이해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제62조 단행의 사유'에서 '단행'이 무슨 뜻인지 몰라 골똘히 생각하고 헤맬 게 뻔하다. 


법조문은 판검사, 변호사 같은 법조인은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일반인도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64조를 읽고 ''제62조 단행의 사유'가 무슨 뜻인지 알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몇 사람이나 될지 무척 궁금하다. 우린 말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다고 생각한다. 법이 암호문이 돼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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